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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황 May 02. 2022

당신의 20대는 안녕하십니까?

1. 19 - 22세 약대생 

2. 23세: 상반기 유기화학 석사 6개월, 하반기 6개월 약국 근무 

3. 24세: IMF 중 미국 어학연수 4개월, 귀국 후 IMF로 구직하는 곳이 없어 11월에 국내 제약회사 입사 

4. 25세: 국내 제약회사 신입사원 근무 (임상시험 모니터링, 식약청 허가, 해외 제품 라이선스 업무) 

5. 26 - 27세: 외국계 제약회사 충청/호남 지역 영업

6. 28세: 서울아산병원 영업

7. 29세: 외국계 제약회사 Associate Brand Manager로 마케팅


30세: MBA를 위해 미국으로 감 


만약 여러분이 직원을 뽑는데 위와 같은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왔다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맞습니다. 제20대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면접 질문이 있습니다. 국내 제약회사에서 외국계 영업으로 옮기기 위해 지원한 한 회사에서는 임원들이 압박 면접이란 걸 했습니다. 그때가 25세. 


"켈리 님은 끈기가 전혀 없네요. 6개월 이상 한 게 없어요. 석사 6개월, 약국 6개월, 연수 4개월. 우리 회사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걸 어떻게 장담하죠?" 


어학연수 후 받은 900점 이상의 토익 점수도 유학을 안 간 당신 딸도 받았다며 영어 실력도 내세울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참고로, 그때가 1998년으로 900점 이상은 당시 높은 점수였다). 그들은 내게 끈기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보면 많이 어렸고 늘 자존감이 낮았던 25살의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고, 제대로 대응을 못한 채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당연히 떨어졌는데 그 후로 한 질문이 저를 몇 년간 괴롭혔습니다. 


"네가 도대체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게 뭐니?"  


돌아보면 20대의 전 늘 불안했었습니다. '이 길이 맞나'라는 방향성'너무 쉽게 포기하는 걸까?'라는 내 인내심에 대한 질문 사이에서 항상 혼란스러웠습니다.  


29살에 마케팅을 하며 알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는 걸. 


유기합성실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땐, 실험을 할 때마다 다른 합성물이 만들어내 (?) 미칠 것 같았습니다. 동일 조건과 물질로 합성을 해도 매번 결과가 달랐습니다. 이유를 모르니 장시간 실험실에서 합성을 했지만 결과는 늘 바뀌었습니다. 동기 한 명은 매번 실험 결과가 같기에 빨리 마치고 집에 가고, 그러기에 더 많은 새로운 합성을 하는 반면, 저는 같은 합성을 반복 또 반복을 했다. 답답해하시던 교수님의 시선과 늘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동기를 보며, 저 친구를 이기려면 저 친구의 몇 배 시간을 일하거나 다시 태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이 업은 포기]


국내 제약회사 개발실에서 임상시험 모니터링을 하면서는 제가 엄청 덜렁댄다는 걸 알았습니다. 환자 리포트를 보며 에러를 찾아야 하는데 같은 보고서를 볼 때마다 또 다른 에러를 발견해서,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보고서를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실험실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보고서 안에서 합성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전 꼼꼼해야 하고 디테일을 요하는 일을 잘 못하고, 대신 빨리 결정을 내리고 추진 하걸 마음 편해한다는 걸. [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포기]


국내 회사 1년 근무 후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직을 선택한 건, 회사 생활을 계속해서 성공하려면 관계, 즉 사람을 알아야겠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할만했습니다. 2년째 일이 재미없어질 무렵, 서울아산병원 담당으로 발령이 났고, 다시 1년 후 Assistant Brand Manager로 마케팅 일을 시작했습니다. 

29, 누구는 아홉수를 얘기하지만 제20대 중 가장 즐거웠던 때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가장 먼저 출근했고, 가장 늦게 퇴근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제 머릿속은 오직 일로 가득했습니다. 제품 전략을 짜고, 영업팀과 소통하며 제품을 홍보하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마케팅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남들보다 잘하는지에 확신은 없었지만,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일에 미쳤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희열을 20대 처음으로, 아니 여태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느꼈었습니다. 


그럼 왜 그 좋은 마케팅을 일 년만 하고 미국으로 MBA를 갔냐고 할 수 있지만, 30대와 40대 제 커리어에서 마케팅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마케팅, 특히 전략 마케팅 (Strategic Marketing)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20대에 일 년에 한 번씩, 때론 6개월이 한 번씩 커리어를 바꿨던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다시 깨닫습니다


제게 종종 20대 분들이 연락을 합니다. 그분들의 고민은

-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모르겠어요.

- 다른 길이 있는데 너무 빨리 결정한 건가 싶어요. 

- 너무 불안해요. 


돌아보면 대학교를 다닐 때 제가 29살에 제약회사 마케팅을 할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 했습니다. 22살의 제 시야는 29살의 시야와 크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일 때 선배들에게 어떤 직업이 있냐 물으면 딱 세 가지였습니다. 약국 약사, 병원 약사, 제약회사 직원. 선배들도 다른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더 많은 길을 제게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20대를 돌아보면 어느 한순간도 편한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를 들어가면,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럼 어떤 길을 찾아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길이라고 찾아도 다시 구직을 해야 하는 그 순간들이. 


25세에 남들 다 퇴근한 저녁 사무실에서 혼자 이력서를 쓰며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왜 난 늘 이렇게 힘들까?" 


20대는 그런 거라고,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제 주변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괜찮다고, 그건 용기가 있는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지금 듭니다. 


불안해하는 지금의 20대에게 드리고 싶은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 좋아하는 일이 뭡니까? 

- 어떤 일을 남들보다 잘하나요? 

-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나요? 


모른다고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계속 답을 찾아가다 보면 20대의 어느 날, "이제는 찾았다."라는 순간이 올 겁니다. 불안해도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그 순간은 반드시 올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0대의 어느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찬란한 20대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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