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켈리황 May 10. 2022

당연한 건 없다?

3월 말에 남양주로 이사를 왔다. 전입 신고를 할 때 전 집주인이 아직 거주하고 있다는 걸 주민센터에서 알려줬다. 나는....... 당연히 집주인이 거주지 변경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잔금을 치르고 거래를 마쳤다. 


그러다 매월 전주인의 건강보험청구서가 우리 집으로 배달된다는 걸 알았다.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그 전 거주인들이 우편물이 오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이번에도 난 당연히, 아무 의심 없이 '그 사람, 참 주소 아직 이전 안 했나 봐.'라고 넘어갔다. 


지난주 전 매도인의 건강보험료 청구서가 또 온 걸 보고,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가만, 건강보험료는 중요한 청구서인데. 그럼 반드시 그 사람이 거주하는 곳으로 보내야 할 텐데.'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뿔싸, 이 사람 아직도 여기 거주하는 걸로 돼있는 거 아냐?'


정신없이 부동산에 연락을 해 보니, 이 사람 거주지 변경을 여태까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 거주지를 변경했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난 왜 처음 이상하다 생각했을 때 말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알아서 할 거라 믿었던 내 오판이었다. 


문득 직장에서의 일들도 떠올랐다. 알아서 하겠지 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문제는 인식했을 때 바로 처리해야지, 담당자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지나쳤을 때 문제가 커진 상태로 터진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있다. 앞집 택배가 요 며칠째 내용물은 없이 상자만 밖에 널브러져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 앞집에서 또 부스럭 소리가 난다. 어떤 여자가 또 내용물만 빼놓고, 상자를 그냥 던져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내 마음은 또 두 갈래로 나뉜다. 

- 집주인일 거야. 알아서 하겠지.

- 도둑이면 어떡해. 조만간 내 택배도 없어지면? 


당연한 건 없다고 다시 마음을 잡고 쪽지를 써본다. 혹시 택배 분실이 있느냐고, 도울 게 있냐고. 


쪽지를 들고 앞집 문 앞에 섰다. 쪽지를 넣으려니 도대체 빈틈이 없다. 숨을 내쉰 후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앞집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혹시 택배 분실하지 않으셨어요? 문 앞에 상자만 나와있어 걱정돼서요." 

"아니요. 상자 나중에 다 치울 거예요." 


문을 열어볼 만도 할 텐데,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앞집 여자가 괜히 미워졌다가 괜한 걱정이었네 머쓱해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잘했어. 당연하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용기 냈잖아.' 


앞집 여자에게는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르는 나만의 용기를 또 한 번 냈음에 스스로 만족한다. 

또 결심한다. 앞으로도 뭔가 이상하면 그때그때 해결하겠노라고. 당연한 건 없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20대는 안녕하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