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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Sep 01. 2023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쇼맨과 환상의 여자'

"가미오의 독특한 정의관: 마술사의 통찰과 판단"

"블랙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은 전직 마술사인 가미오를 중심으로 여러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미오의 뛰어난 통찰력과 기교다. 그는 마술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때로는 그 지식을 이용해 사기꾼을 물리치거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가미오는 표면상으로는 냉소적이고 빈정거릴 수 있는 성격을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뚜렷한 정의감이 존재한다. 이러한 면모는 작품 내에서 여러 차례 빛을 발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여성을 위해 약을 탄 술을 바꿔치기하는 에피소드이다. 이 장면은 단순히 '가미오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실에서도 여성이 술에 약을 타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범죄의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러한 사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 아쉽게 느꼈던 부분도 있다. 소설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성별 간의 관계나 문제가 단순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 캐릭터들은 주로 피해자나 구조대상으로 나오고, 남성 캐릭터들은 그들을 괴롭히거나 이용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좋은 남자 vs 나쁜 남자'의 이분법적 틀에 빠지기 쉬워,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 관계를 다루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다음으로, 가미오의 정의감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남을 도와주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인 가치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즉, 그의 행동에는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개입되는 순간부터 그 정의가 어떻게 펼쳐져야 할지, 또 그로 인한 결과가 어떨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이루어진다.


작품을 전반적으로 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미오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정의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테마를 다루기 위해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형식을 적극 활용하고, 그 결과로 굉장히 읽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작품은 법과 정의,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탐구하고 있어,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을 넘어서 사회적, 윤리적인 논의를 자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미오가 법적인 수단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판단으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법이라는 공동체의 규범을 뛰어넘는 개인의 판단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미시적, 매크로적 문제들은 소설을 통해 복합적으로 다루어지며,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다.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소설 내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거나 피해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다루는 성별 이슈는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점들은 작품 전체의 품격을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구축 능력은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뛰어난 플롯, 깊이 있는 캐릭터, 그리고 사회적·윤리적 고찰을 통해 미스터리 장르를 한 단계 높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미오라는 캐릭터를 통해 미스터리 소설이 단순한 '누가 범인인가'를 넘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까지의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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