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자리, 사람
이동이 확정되었다. 내가 떠나는 곳은 오래된 다세대와 빌라들이 섞여 있고, 계단이 많은 곳이었다. 그곳을 벗어나 이제는 막 입주가 시작된 신축 아파트 단지로 간다. 배송 동선은 짧고 단순하며,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니 눈과 비를 피할 수 있고, 계단을 오르내릴 일도 없어진다.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동안 실장과 팀장, 팀원들과 조화를 맞췄고, 지원 업무도 도맡아 해왔다. 배송 지역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나중에 자리가 나면 옮겨주겠다’는 말만 믿고 버텨온 시간이었다. 결정적인 보장 없이, 오직 말 한마디에 기대어 지냈다는 게 때로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약속이 지켜졌다. 그렇게 나는 마침내 이곳에 입성하게 되었다.
날짜는 정해졌고, 내 이동은 이미 공식적으로 공표되었다. 이제 남은 건 차량만 정탑에서 저탑으로 바꾸는 일. 이 절차가 끝나고 한달후면 나는 드디어 새로운 배송지로 옮기게 된다.
대부분의 택배 인력들은 이와 비슷한 시기를 거친다. 기존 기사가 떠나면 그 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어려운 지역은 늘 신입의 몫이 되어왔다. 처음엔 그 구조가 불공정하다고 느꼈고, 울분도 토했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 그 차례가 내게 오자 나 역시 태세를 바꿔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부조리하다고 여겼던 시스템 안에서, 나 또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이제 나와 같은 신입이 들어와 자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면, 나도 결국 그들에게 똑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나도 그 시기를 견뎌 지금 이 자리에 온 유경험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말이 신입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겠지만, 상관없다. 그건 이제 내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조를 이해했고, 그 안의 사람이 되었다는 자각과 함께, 나 역시 이 체제를 지키고 굳건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엔 수평적인 관계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보이지 않던 위계와 흐름이 존재했고, 그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나도 언젠가 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런 내 다짐을 눈치챈 걸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자신을 향한 합리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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