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전산망 화재의 영향이 해소되자, 그동안 가려져 있던 운영상의 불균형이 물량 감소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물론 아직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 계절적 요인도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져야 사람들은 외출을 줄이고 온라인 구매를 늘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계절 탓으로만 보기에는 부족하다. 화재 여파로 일부 거래처가 타 택배사로 옮겨가면서 발생한 구조적 변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실제로 주 7일 배송 체계를 운영 중인 타 택배사들은 여전히 높은 물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량이 줄자 팀장은 팀원 간의 불균형을 손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모두가 물량에 쫓겨 늦게까지 일하느라, 누가 더 많이 하거나 덜 하는지를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일찍 끝나는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팀장은 균형을 맞추겠다며 구역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 일로 나에게도 물량을 더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사실 팀 내에서 내 물량이 가장 적었지만, 그만큼 일과 삶의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래서 더 늘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물량이 줄어 수익이 떨어진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하던 이들이 앞다투어 새 구역을 받아갔다. 수익을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처음엔 힘들다며 불평하던 이들도 며칠 지나자 점차 적응했고, 어느새 안정세를 찾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물량이 줄었다고 해도, 곧 겨울이 오면 눈이나 악천후로 인해 다시 물량이 폭증할 텐데, 그때 확장된 구역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결국 그 부담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올 게 뻔했다.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사람들에게 ‘좀 도와달라’며 부탁이 이어질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계산에 동의했다. 실제로 빨간날이 되면 하루 쉬는 대신 다음날 물량이 몰려 배송 수량이 급증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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