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 김치는 필수라지만, 보관도 제대로 못 하고 결국 버리게 되는 내 입장에서는 그 집착이 유난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특히 택배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으로 굳어졌다. 한 집에 2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김치 박스가 여섯 개씩 들어오는 날이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단순하다. 도대체 이걸 누가 다 먹는 걸까.
문제는 언제나 무게다. 20에서 25킬로그램에 달하는 박스는 충격 한 번만 받아도 터지거나 국물이 새기 십상이다. 김치가 터진 박스를 마주할 때면 한숨부터 나온다. 냄새, 얼룩, 뒤처리까지 모든 게 난감해진다. 적당히 나눠 담으면 훨씬 안전할 텐데, 배송 현장을 모르는 쪽에서는 그저 많이, 꽉꽉 담는 쪽을 택한다. 물론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박스를 나누면 택배비가 늘어나고, 그만큼 번거로워진다. 배추가 워낙 크니 눌러 담을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김치 박스와 씨름하다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팔은 점점 말을 듣지 않고, 이제는 도저히 들 힘이 없어 수레에 싣고 밀기 바쁘다. 경사로에서 수레가 미끄러질 때면 온몸이 앞으로 쏠리고, 무게에 짓눌린 자세로 비틀거리다 보면 내가 김치를 나르는 사람인지, 김치에 끌려다니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속으로 ‘대체 김치를 왜 이렇게 많이 먹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옆 동료가 마치 내 마음을 훔쳐본 것처럼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김치 같은 건 그냥 좀 사 먹으면 되잖아. 왜 이렇게 직접 못 보내서 안달일까.”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불평은 나눌수록 묘하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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