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건 Nov 08. 2022

사랑할까, 먹을까를 읽고

황윤 지음

한 줄 서평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치맥을 그렇게 먹으면서 닭을 죽이면 불쌍하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이 악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불쌍하지만 너희들은 먹거리 음식이란다라고 놀리는 것 같다.  

   

소나 돼지 닭은 살아 있는 생명이며 개와 고양이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왜 그들은 차별될까? 예전부터 그래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그들의 존재가 보이지 않아서 관심이 부족해서 그렇게 것일까 

    

어찌 되었든 채식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다. 그동안은 사실 채식주의자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저 먹고살기 바쁜데 그런 여유까지 부리는 게 꼴사납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저런 에세이 책들을 읽어보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글을 읽을 때면 왜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대게는 보통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동물에 정이 많아져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런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주된 이유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세이를 책으로 낸 사람들은 독서량이 일반적인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다. 즉 육식이 얼마나 몸에 해롭고 채식이 얼마나 좋은지 알기 때문에 전향한 것이다. 분명할 것이다. 왜냐면 나도 이 책을 읽고 육식의 해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햄버거는 시간 대비 효율이 엄청나게 좋은 음식이라고만 생각했다.

배도 부르고 힘도 나고 맛도 있으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빨리 음식을 먹고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질 겨를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몸에 해롭다고 할 지라도 전 세계인이 먹는 음식인데 문제가 생길 확률이 낮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너도 나도 다 먹는데 나만 먹지 않는다면 사회생활에도 어느 정도의 지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금은 좀 수평적으로 완화되었다고 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저는 채식주의자라서 고기는 먹지 않습니다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생각을 철회하게 된 이유는 이 책에서 동물에 대한 애정과 건강에 관한 내용을 언급할 때였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한 고깃집 주인이 저희 집 고기는 수퇘지의 성기를 제거한 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 사실 나도 그때는 “아 그럼 냄새가 안 나서 먹는데 부담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지한 건 악한 거라는 말이 생각났다.

충격적인 건 현재 국내에 있는 수퇘지들은 거의 그 냄새 때문에 대부분 제거된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사실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했다. 단지 사람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인간의 근거 없는 욕심으로 인해 수퇘지들은 생후 5일 만에 제거된다고 한다. 그것도 무마취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유는 마취제가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로 수술받고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하니 굉장히 씁쓸했다. 마치 병아리는 수탉이면 모두 살처분된다는 얘기하고 비슷했다. 

저자가 이름 붙여준 돈수라는 돼지가 있는데 도축장에 실려 보낼 때 나도 마음이 아팠다.

돼지는 침팬지보다도 똑똑하다던데 너무 불쌍했다. 자기가 죽으러 가게 된다는 걸 알까 싶었다. 더 충격적인 건 돼지를 죽일 때 전기충격기를 쓰는데 기절을 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근데 이게 전압을 낮게 쓴다고 한다. 이유는 고기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래도 그 돈수라는 돼지는 농장에서 뛰어놀고 햇빛이라도 좀 봤으니 다행이라고 한다. 공장 축사에 있는 돼지들은 평생 빛 한번 못 보고 죽는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돼지고기를 찍어내는 공장이니 돼지의 삶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닭도 마찬가지다. 닭은 더 심한 것 같다. 

    

이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내 몸의 건강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좁은 공간에서 키워진 돼지나 닭은 위생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고 세척을 했다 하더라도 몸의 나쁜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항체들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 한다. 정신병에도 걸리고 털도 빠지고 병에 걸린다고 한다. 구제역 돼지 신종플루가 그랬고 조류독감도 마찬가지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해서 좁은 공간에서 키우려면 살충제가 필요한데 그걸 뿌린 걸 먹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성장 속도를 올리기 위해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먹인다고 한다. 원래 돼지는 옥수수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인공사료의 폐해를 인간이 겪게 되는 것이다.

무슨 동물에게 주사도 놓는데 그걸 결국 인간이 먹게 되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수많은 질병들은 모두 육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전에 풀만 먹고 살 때는 이 정도로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나도 한식은 거의 풀떼기가 많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다. 근데 서구적인 식습관에서 벗어나면 오늘날의 많은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대뜸 한식의 소중함을 느꼈다. 

    

고기가 맛이 기가 막힌 만큼 불편한 진실들을 알게 되니 거부감이 느껴진다. 나도 그냥 한 사회의 인간인지라 저자가 농장에서 준 고기를 어떻게 처분했는지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먹을 수는 없어서 먹기는 먹었지만 본인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이게 왜 궁금했는지 모르겠다. 그토록 책 내용에 공감했는데 막상 다시 현실과 마주하니 쉽지가 않다.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당장에 먹을 게 없다. 물론 저자처럼 여러 음식들을 찾아봐야겠지만 아직 갈길이 먼 것만은 분명한 사실 같다. 당장에 축구모임을 하더라도 모임 장소가 고깃집인데 안 먹을까 없었다. 물론 이전처럼 많이 먹지는 못했다.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이런 공장식 축사 행태는 우리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거라 사람들의 의식변화가 있지 않고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진행된다고 하니 씁쓸했다. 고기를 덜 먹어야만 사육량을 줄일 수 있으며 우리 몸에도 좋다는 사실을 분명히 들어도 어렵기만 하다. 이게 저자가 말한 딜레마 일 것이다. 서평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 딜레마에 빠져들어 버렸다. 애초에 저자가 의도한 바라고도 했다. 그런 식으로 한두 명씩 의식개선을 한다면 세상이 변한다는 논리다.  

   

분명히 지금도 그로 인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채식주의자가 옳다는 세상이 올 것이라 한다. 분명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한편으로는 채식요리를 기가 막히게 해 줬다면 어땠을까 하고 고민도 해봤다. 애초에 우리 문화가 고기에 익숙한 게 아니고 맛있는 채식 요리를 먹는 세상이었다면 동물에게 그런 악행을 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예전에 군대에서 채식주의를 하는 장교가 생각났다. 그때는 그분이 왜 그런 생각을 할까 하고 이해를 못 했다. 그분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고 두부요리를 찾으러 다니는 게 싫었다. 따뜻한 불 앞에서 고기에 소주를 마시지 못하다니 아쉬웠다. 그래서 그때는 싫었다. 근데 그분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하고 대학을 남들보다 3년은 일찍 들어간 수재였다. 역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럼 그때 좀 더 설명 좀 해주었으면 어떨까 싶었다. 단지 고기를 소화를 못한다는 이야기 말고 채식을 하게 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이다.     


아마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대로 채식주의자를 혐오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세상에는 자기뜻대로 사는 사람이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채식은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오해했다.      


돼지가 개처럼 인간들과 친해지고 부디 넓은 농장에서 뛰어노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돼지는 엄청 깨끗하다고 한다. 음식화 하기 위한 편견이라고 한다.     


끝.


작가의 이전글 위대한 생각의 힘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