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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친구는 다 어디로 사라졌나?

인간관계에서 호구 잡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

by 미그레이

친구 사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웠던 때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몇 분도 안돼 둘도 없는 친구처럼 사진을 찍었고,

몇 시간 만에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심지어 몇 일도 안돼 다음 만남까지 기약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 동아리, 해외연수, 학원, 각종 동호회와 모임 등을 거칠 때마다

휴대폰 속의 친구들은 스크롤 몇 번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쌓여갔다.

휴대폰에 등록된 전화번호 개수는 "그 자체"만으로 내가 인싸임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특별한 기준이랄 건 없었다.

쟤도, 얘도 할 것 없이 기회가 되어 모임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말이 조금 통한다 싶으면 지체 없이 마음의 문을 열어젖혔다.

'오늘부터 우리는 특별한 관계'라는 암묵적인 싸인이 형성되면 그 이후에는 급가속의 연속이었다.

서로의 아픈 가정사부터 부끄러운 속내까지도 서슴없이 오픈하고,

기쁜 일, 슬픈 일은 제일 먼저 공유하기도 하며 짧은 기간 안에 죽마고우가 되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그 많던 친구들

아니,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99%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현재 연락처에 남은 지인은 스크롤이 필요 없을 만큼 세상 단출 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이 상태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인간관계의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두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결혼, 두 번째도 결혼이다.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후로 나눌 수 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결혼으로 들뜨고 행복한 내 기분에 이유 없이 초를 치는 지인들이 첫 번째 제거(?) 대상이 되었다.

분명 나는 그대들의 앞선 결혼에 누구보다 좋아하고 축하하고, 적지 않은 액수의 축의금까지 선뜻 납부?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의 결혼 소식에는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OUT'


마음으로 외쳤다.

친구의 기쁜 소식에 기뻐하는 시늉조차 못하는 친구? 그런 친구가 세상에 어딨어.


또 웨딩사진과 주얼리 업체를 운영하던 오랜 지인은 나의 결혼 소식에

결혼 축하보다 '친하니까 알아서 잘해줄게'라는 말로 비용 견적을 내느라 급급했다.


'OUT'


속상했지만 과감하게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결혼식 심지어 가족 결혼식까지 참석해 축의금과 선물로 진심을 표했던

나는 그저 호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누구는 썼다 지우고, 누구는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나의 진심과 더불어 나에 대한 상대의 진심을 교차하며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이 사람과 앞으로도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가?"


라는 나름의 심플한 기준은 꽤 효과적이었다.


물론 그 순간 과거 무분별하게 살포(?)했던 중고차 한 대 값의 경조사비 본전이 피눈물 나게 아까웠지만

순도 100%의 '내가' 행복한 결혼식을 위해 다음 생을 기약하기로 했다.


150명에서 100명, 100명에서 80명, 80명에서 30~40명 안팎으로 십 수년간의 관계가 삽시간 정리됐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

마음을 고쳐먹게 만드는 이들도 있었다.


가깝게는 결혼식 당일에 본색(?)을 드러낸 사람들이었다.

좌석마다 이름표가 있는 스몰웨딩이기 때문에 결혼식 참석여부가 매우 중요했더랬다.

그런 내게 바로 전날까지도 참석을 호언장담하고는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불참한 사람들이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심정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내 마음을 어지렵혔다.


이 밖에도 참 강렬한(?) 방식으로 부정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 지인은 내 결혼식에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비싼 새 옷까지 샀다며 몇 주 전부터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작 당일에는 미용실까지 다녀오느라 본식이 끝난 이후에야 헐레벌떡 식장에 도착했다.


또, 사회를 부탁했던 한 지인은

결혼식 몇 주 전에 좋은 식당에서 남편과 정중히 대접하고,

식 당일에 금일봉과 와인선물 그리고 신혼 여행길에서 조차 잊지 않고 장문의 메시지로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한 나에게 단번에 '그렇게 고마우면 소고기를 사라'라고 회신해 왔다.

(더 이상 얼마나 더 감사를 표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축의금도 내지 않았고, 당시 내가 소개한 여인과 행복하게 교제 중이었으며,

(훗날)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 둘 다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가깝다'는 의미는 나의 결혼식에 제 때 도착해서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 줄 정도,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 베푼 호의에 기꺼이 '그쯤이야'라고 답해줄 수 있는 정도였다.

입장 바꿔 나는 얼마든지 그랬었으니까.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결혼 이후였다.


결혼 이후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는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유일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가족이 생겼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잘 이해해 주며, 나와 가장 대화가 잘 통하고,

나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이다.


그를 만난 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그거.

스스로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고 있는 일종의 메타인지이다.


'나는 다크 초콜릿 한 조각을 식후 디저트로 먹는 걸 좋아해'

'나는 에스프레소에 약간의 우유를 가미해 마시는 걸 좋아해'

'시나리오 구성이 탄탄하고 연출력이 돋보이는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

'패턴이나 색상은 심플해도 소재감이나 핏이 좋은 옷을 즐겨 입어'

...


남편은 취향이 선. 명. 한 사람이었다.

물어보니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도 골라서 사귀었고, 그 친구들과 한결같은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나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이 거나 저거나, 여기나 저기나, 얘나 쟤나.. 하는 희미한 경계선 안에서

닥치는 대로 만났고, 닥치는 대로 먹었고, 닥치는 대로 소비했다.

경험의 양은 늘어나는데 경험으로 채워지는 게 없다는 공허함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토록 매일같이 라테 한 잔 싹을 십여 년 동안 마셨음에도

좋아하는 원두 취향, 커피 브랜드 하나 말하지 못하는 과거의 내 삶이

참으로 볼품없고 따분했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것이다.


무작정 남편의 취향을 따라가 보았다.

그러한 확고한 취향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했고, 나도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씩 내 취향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말보다는 글쓰는 것이 더 편하고, 육류보다는 해산물을, 주류 중에서는 천천히 조금씩 취할 수 있는 위스키를, 음악은 사운드가 부드럽고 그루브 한 템포를, 긴 머리와 원피스보다는 짧은 단발에 와이드 슬랙스' 나를 더 나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걸 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나'


취향은 곧 삶의 방향이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취향'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고, 또 그렇지 않은지를 난생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왜 안 해봤을까?)


결혼 전에는 그저 주말을, 휴일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지독한 외로움이

내가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지에 대한 판단기능을 통째로 마비시켜 버렸다.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원래 만나던 사이'라는 미명 하에 그저 그런 관계 또는 만나고 나면

진이 빠지거나 혹은 불쾌해지거나 혹은 괜히 호구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관계를 반복하며

(돌이켜보면) 너무나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호감을 느끼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 즉 사람에 대한 취향이 분명하게 정해졌다.


'자기 삶에 긍정적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

'자기 분야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유능함을 추구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반대로 망설임 없이 손절을 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꿈과 미래 가능성을 멋대로 평가하는 사람'

'타인의 선택과 도전 그리고 성취를 멋대로 폄하하는 사람'

'타인의 영역에 멋대로 침범하는 사람'

'타인의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


불행히도, 과거의 나는 후자의 그룹과 숱한 인연을 맺어왔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선뜻 인연을 맺고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할애할 만큼

당시의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나약했고, 최고로 못났었다.


물론 그중 극히 일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 주었기에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대다수는 그러한 나약함을 이용하기만 했다.


모든 건 나로부터 비롯되었던 거다.


자기 취향이 분명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어떨 때에 가장 행복해지는지를 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어떤 선택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의 상황이 열악하고 힘들더라도 자기 자신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는 순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똑같이 생각하기 쉽다.

그 안에서 진정한 관계를 솎아내려면 참으로 영양가 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들고 싶다면,

제일 먼저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좋은 취향'을 만들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좋은 취향'은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자기 선택에 확신을 가지게 해주며

동시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까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는 나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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