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오! 엄청 핵심만 딱 이야기하는 사람인가 보군!' 싶을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너무 짧아서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흔한 "어, 난데요" 조차도 없다. 통화한 목적을 알아차리기 위한 최소한의 업무 카테고리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의 업무 페이스에 맞춰 확인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사항이 떠오르면 닥치는 대로 전화해서 '단어'만 이야기하거나, 목적어가 없는 동사만 나열하기도 한다. 스무고개 하듯이 용건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1분 안에. 그와의 전화가 결코 반갑지 않은 이유다.
(벨소리)
나 : 네, 000팀 000입니다.
상사 : 뭐, 특별한 거 있어요?
나: 네?
상사 : 아니, 별거 없죠??
나: 네??
상사 : 아니 아니.. 이번 주 미팅하는데 할 말 없죠??
나 : 네????? 어떤 미팅을...??
상사: 아아.. 팀장급 미팅인데 특별히 전달사항 없죠?
나: 조금 정리해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상사: 뭐 그럴 것까지야.. 됐어요~
통화가 끝나면 한창 맛있게 먹던 밥을 단 한 수저 남겨두고 온 것처럼 영 찜찜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어쩜 이렇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을까?' 싶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할 노릇이다.
(벨소리)
나 : 네, 000팀 000입니다.
상사 : 다음 주 팀 회식 있는 거 알죠?
나 : 아네, 공지 전달받았습니다.
상사 : 다 가는 거죠?
나 : 네, 일단 빠지는 사람은 없는데요. 저 사실 코로나 때문에 조금 걱정이../
상사 : (말 자르고)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코로나 때문에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고.
(뚝)
상대의 말을 마침표까지 듣는 법도 없다. 원하지 않는 답변이라고 생각되면 아예 입틀막을 시켜버리거나 중간에 자르는 것은 다반사다. 그뿐 아니다. 하루에 몇 번씩 오가며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치며 꼬박꼬박 45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직원들에게 고개 '까딱'은커녕 오히려 차가운 눈빛으로 공개적인 무안을 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 아니라는데 내 전재산을 걸고 싶지만 그가 정작 본인의 상사 앞에서 세상 순한 양처럼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결코 '예의'를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기에 더 불쾌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눈을 보며 인사를 주고받고, 상대의 말을 함부로 끊지 않고, 불쾌함을 줄 만한 언행을 하지 않는 모두가 다 아는 '예의'를 그는 오로지 그의 상사에게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너 인성에 문제 있어???
무례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직급, 나이, 연륜 따위를 방패 삼아 밥먹듯이 무례함을 저지르는 상사들을 그것도 꽤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도 신입사원, 대리 시절까지만 해도 '내가 어리니까'라며 -실제로 어리기도 했고..- 자기 위안을 삼으며 넘어가기도 했지만 이제는 엄연히 가정도 있으며, 학생들에게 '선생님' 호칭을 듣는 와중이라 그런지 더더욱 그런 무례함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분 좋은 사람이에요.
라는 그와 제법 가깝다고 소문이 난 동료 직원의 코멘트에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좋은 사람이 무례하다고??' 누가 이런 논리를 선뜻 이해할 수 있을까?? 무례함으로 상대에게 불쾌함을 밥 먹듯이 주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무례함'은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실수로, 어쩌다 무례를 범하는 일은 없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실례'라는 정중한 표현으로 충분히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무례함은 인성 판단의 중요한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신입사원 면접에서 인성 및 태도가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인 이유이다. 물론 그럼에도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은 많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무례함을 겪는 쪽은 "방금 내게 무례했다"라고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의 무례함에 격하게 불쾌한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무례할 수 있다는 것을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무례한 쪽은 늘 무례하다.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