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전한 연이은 세 명의 사표 제출로 일순간 어지러워진 내부 공기 탓도 있지만 그 보다 예비 퇴사자들이 보여준 꽤나 "경이로운" 퇴사 과정 때문이다.
퇴사를 하기로 했다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유종의 미는 근무기간이나 업무 성과에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경험상 사표 제출 시점부터 마지막 근무일까지의 퇴사 준비자가 보여주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차피 그만 둘 회사',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으로 그간의 본인에 대한 조직 내 부정적인 평가나 이미지를 완화시킬 수도 있는 '골든타임'을 되려 악화시키는데 주력하곤 한다. 그야말로 공든 탑 무너뜨리기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그건 몇십 분 이내에 당락이 좌우되는 신입사원 면접에서나 의미가 있는 말이다. 동종 업계의 경력사원에게는 조직에서의 마지막 인상을 어떻게 남겼는가가 그 사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사람의 기억력이 생각보다 훌륭하지 못하며 상대에 대한 가장 최근 기억이 그 사람이 보여준 가장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무기간 동안 자초했던 크고 작은 갈등은 마지막 태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또는 그 반대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최근의 그들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빈틈없는 사회생활 하수임을공증하고야 말았다.
1. 의지없는 업무태도
퇴사까지 몇 주가 남은 상황이었지만 마치 공식적인 휴가를 받은 것 마냥 출근 후 퇴근까지 작심한 듯 일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은 기간 열심히 해봐야 회사만 좋은 일이라는 신념(?)을 가진 듯 보였다. 동료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와중에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즐기는가 하면, 11시 30분부터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도 했다. 그 어떤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에티켓도 그동안 지켜왔던 조직의 규칙에 대한 예의도 보이지 않았다.
2. 무성의한 인수인계서
정 떨어진 회사라고는 해도 인수인계서는 퇴사자의 마지막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회자될 본인의 얼굴이기도 하다. 무성의한 인수인계서는 예상외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중에 가장 큰 메시지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말로 훌륭히 업무를 소화한 사람 중에 내실 없는 인수인계서를 남기는 경우를 적어도 십수 년의 사회생활 중 나는 본 적이 없다. 본인 일에 열정을 다한 사람에게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3. 끊임없는 뒷 말
문제의 해결이나 개선 방법을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면 회사에 느낀 개인적인 불만은 공식적인 퇴사 사유에 철저하게 숨기는 것이 좋다. 곧 떠난다는 들뜬 마음에 여기저기 불편한 속내를 마치 절대적인 진실인 것처럼 성토한 최후는 '끝까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각인뿐이다. 이미 맘 떠난 사람이 뱉어내는 막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은 그 사람과 같은 마음을 먹고 있는 퇴사 준비자뿐이다. 솔직한 근무 리뷰는 직원 이메일 계정이 완전히 삭제된 이후에 다른 회사의 동료와 함께 나눠도 늦지 않다.
4. 무례한 마지막 인사
"저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라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 인사가 그 직원의 마지막 인사였다는 사실을 다음날 알게 되었다. 출근을 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직원이 전화를 하자 "저 어제가 마지막 출근일이었는데요"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심지어 팀장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회사와의 사전 조율이나 상의도 없이 본인 혼자 퇴사일을 정해두고 남은 연차를 죄다 끌어와 간헐적인 출근을 하더니 급기야 맘먹은 날짜에 그것도 누구에게도 고지하지 않은 채 짐을 챙겨 나간 것이다. 그래도 해당 분야의 경력직으로 입사 해 1년을 근무한 완숙한 사회인이라는 사람이 보인 행태다. 근 5년 만에 가장 충격적인 이벤트였달까.
이로서 그들이 1년간 회사 내에서 나름 투입했던 시간과 노력은 비극의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돼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남겨놓은 강렬하지만 아주 골 때렸던 마지막 퇴사 퍼레이드는 두고두고 회자가 될 것이 분명하고 운이 나쁘다면 아니 매우 높은 확률로 그들의 다음 이직 장소에까지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메시지에 힘이 있으려면 메신저의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 회사 안에서 메신저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책임을 다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꽤 많은 품이 든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본인도 인지하는 못하는 사이 본인의 말에 영향력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그때가 비로소 '권리'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들에게 권리는 책임을 늘 앞서는 것이었다.
월급은 받지만 실적 부담은 싫으며, 조직에 속해있지만 지시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팀워크가 필요한 순간에 대뜸 휴가를 쓰거나, 정시 퇴근은 어기는 법이 없지만 점심시간은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하며, 성과 미달임에도 인센티브가 적다며 불평을 하고, 퇴직금 지급 시기는 집요하게 따지면서 인수인계서는 못 적겠다는 고약함을 과연 어디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들이 헤집어 놓은 냇물에서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또 다른 팀원이 예상대로 '"힘들어요"라고 하소연한다. 그 말에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과연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도 이미 '꼰대'가 되었다는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