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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Dec 31. 2020

결혼 후 크게 달라진 3가지

결혼 때문인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모르겠다.

1. 관계에 목매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주말 약속이 없으면 공허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번개(갑작스러운 모임), 소개팅, 무박 여행 등의 일정을 잡았다. 어떤 모임이든지 '꼭 가야 하는 이유'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친하니까', '심심하니까', '안 가면 미안하니까' 등이었다.

적어도 한 달 이상 주말 스케줄이 차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폭우가 쏟아지고 한파가 몰아쳐도 "만나서 실내로 바로 이동하면 되지!"라는 대안은 늘 존재했다. "술 사줄게, 건너와"라는 말 한 마디면 2시간 거리도 기꺼이 감수했을 정도다.


결혼 후에는 그런 모임 대부분이 사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약속을 만들지 않아도 될 분명한 이유 때문이다.

'남편'- 세상에서 나와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이 그것도 매일 곁에 있어준다. 그러니 스마트폰 캘린더의 빈 일정에 미련 따위 없어진 지 오래다. 아주 가까운 동네 친구와도 일주일에 두 서번을 만나다 보면 때때로  '거리 두기'가 필요함을 느끼곤 했는데,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니 그런 기준조차 무의미해진 것이다.  쌍쌍바처럼 매일 붙어 다녀도 본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비었던 가슴이 채워지고, 차가웠던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저 어제는 즐거웠고, 오늘도 이미 행복하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기대될 뿐이다.  


 2. 확고해진 경제관념


결혼 전에는 버는 족족 썼다. 아니 '쓰기 위해' 벌었다.

매년 출시되는 최신 휴대폰 예약자 명단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연초에는 반년도 더 남은 여름휴가 항공권을 대뜸 결제했으며,  틈틈이 남들 한다는 고급 스포츠 레슨도 받았다. 주말마다 잡힌 각종 모임에서 호기롭게 술값을 계산하고, 예산 없는 쇼핑도 수시로 하며,  내키는 대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도 했다. 점입가경으로 중고차까지 매입해 방방곡곡 기름값을 흘리며 돌아다녔더랬다.(나 쫌 부끄럽다..) 그런 패턴으로 한 달이 지나면 수입의 전부였던 '급여'는 디지털 기록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허무함도 잠시, '다음 달에 또 들어오는데 뭐~'라는 위안으로 똑같은 일상을 보내며 돈을 공중분해시켰다.  


미혼시절 가장 후회되는 행동 딱 한 가지를 꼽는다면 고민도 필요 없이 '그랬던' 나의 무분별한 소비습관이다. (왜 그랬을까..ㅠㅠ)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월급의 50% 저축하고,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무조건 더치페이, 여행은 국내외 출장으로 대리만족, 쇼핑은 반드시 예산 안에서 그것도 철저한 가격 비교와 한 달간의 숙려기간 후에 결제 그리고 대중교통이 발달한 서울에서 중고라도 차는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에 배우자와 가계를 합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동의 목표'가 생성된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했으니 그다음은 두 사람이 만들어갈 '미래설계'로 화살표가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가능한 한 빨리 실현시키기 위해서 계획적인 소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신기한 점은 결혼 생활의 목적지가 생기자 무분별했던 씀씀이에도 단번에 제동이 걸렸다. (매월 카드값으로 수백만 원을 지출하면서도 월 말이 되면 허덕였던 내가!!)  이제는 몇 십만 원으로도 충분히 한 달 생활이 가능하다. 심지어 여전히 동료들에게 커피와 밥을 사고,  필요한 옷가지 등 쇼핑도 하면서 말이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예산계획'에 들어있을 뿐이다.  


3. 지극해진 효심


부모님이 자녀의 결혼을 '재촉'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신기하게도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남달라 진다. '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유전자 변이라도 일으키는 모양인지 결혼 후에는 부모님만 떠올리면 애틋함이 거의 이산가족급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결혼 후 양가 부모님의 생신을 포함한 집안 주요 행사 일정을 가장 먼저 등록한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결혼 전에는 분명 '내 생일'이 연 중 최고 기념일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부모님 생신이 최우선 순위에 자리 잡았다.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곳에 가게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부모님인 것도 신기하다. '와, 엄마가 이거 보면 좋아하겠다.', '이 머플러 어머님한테 잘 어울리겠다

'이거는 아버님 취향인데~'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메우는 통에 죄책감마저 든다.


부모님 댁의 오래되고 낡은 살림살이는 또 어찌나 눈에 자주 밟히는지 정작 당신들은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시지만 이미 수명을 다한 오래되고 낡은 가전, 가구를 제 때 바꿔드리지 못하는 것이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다.


문득문득 결혼 후에 갑자기 줄어든 것 같은 엄마의 키가,,, 크지 않은 나의  손에도 들어오는 엄마의 작고 마른 어깨가,, 드라이로 한껏 부풀린 헤어 볼륨에도 위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엄마의 비어있는 정수리가,, 예전과 달리 색조가 사라진 엄마의 푸석한 얼굴이 가슴에 맺힌다..


흠..다 써놓고보니 결혼때문인지 나이를 먹어서 생긴 변화인지 헷갈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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