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12
회사에는 워낙 고스펙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성장 총괄 디렉터는 엄청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수기 앞에서 처음 본 그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뒤에 서 있던 본부장님이 바로 한마디 하셨다.
"얘가 이렇게 보여도 애가 둘이야."
야생의 신입이 정보1을 흡수했습니다. 그 뒤로 한동안 그는 나의 뇌에 '어려 보이지만 아이가 둘인 사람'으로 저장되었다. 사실 성장 총괄 디렉터라는 명칭도 먼 훗날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는 바람에 급조한 것이다. 당시에는 그를 칭할 마땅한 수식어가 없었다. 수많은 'OO님'들 속에서 누가 개발자고 기획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어려 보이지만 아이가 둘인 님'의 어마무시한 백그라운드도 뒤늦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단체 메일이 도착했다. Monthly KPI Rivew 미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KPI(핵심성과지표) : 회사의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심적으로 관리해야 할 요소들의 성과지표
일단 KPI라는 단어부터 낯설었던 나는 머리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다행히 모르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자리는 나와 입사일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성장 총괄 디렉터가 입사 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첫 미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용어가 익숙지 않을 직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친절히 쉬운 말 번역을 시도했다.
MAU (많은 방문)
DAU (자주 방문)
MAU는 Monthly Active User의 약자로 한 달 동안 우리 서비스를 이용한 순수한 사용자 수를 말한다. DAU는 Daily Active User의 약자로 하루 동안 우리 서비스를 이용한 사용자 수이다. 지금이야 단순히 방문 유저 수만 보는 MAU나 DAU보다는 유저의 금전적 가치를 따지는 LTV, ARPU, In-app Purchase 등의 지표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일단 어떤 유저든 많이 모으고 보자'가 많은 스타트업들의 1차 목표였다. 바야흐로 MAU와 DAU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성장 총괄 디렉터는 직원 모두에게 MAU와 DAU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목표치 달성을 위해 함께 나아가길 바랐다. DAU보다 MAU가 수가 훨씬 크니 '많은 방문'으로 외우게 하려고 했던 걸까? DAU는 매일 방문이니까 '자주 방문'인 걸까? 명명에 대한 그의 정확한 의도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나는 숫자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콘텐츠팀 소속이었다. 해서 매번 MAU와 DAU 개념도, 목표 수치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 뒤로도 몇 달은 더 그의 피피티에 큰 글씨로 '많은 방문'과 '자주 방문'이 적혀 있었지만 외우지 않고자 하는 문과생의 뇌가 더 강했다.
'나는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보는 사람이라고!'
슬프게도 그가 이제는 다들 외웠을 것으로 판단하고 피피티에서 '많은 방문'과 '자주 방문' 글자를 뺄 때쯤 나는 모든 가치가 숫자로 표현되는 UA(User Acquisition)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마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희미하게 MAU와 DAU를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전생에 나의 전부였소. 세상은 0과 1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지 그렇고 말고.
눈물을 닦고 다시 첫날의 Monthly KPI review 미팅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에게 MAU와 DAU의 개념을 설명하고 분기별로 각각 어떤 숫자를 목표로 하는지 브리핑한 성장 총괄 디렉터는 그다음으로 우리가 어떤 커뮤니티를 주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지 설명했다. 놀랍게도 나는 성장 총괄 디렉터가 목이 터져라고 강조한 탑 10 커뮤니티 목록을 그때나 지금이나 기억하지 못하는 망나니지만 한 가지만은 선명히 기억난다. 색깔별로 그려진 그의 그래프에서 나의 담당 커뮤니티는 좀처럼 수면 위로 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게다가 색도 회색이라 더 참담했다.
우리 서비스에는 3,000여 개가 넘는 관심사 커뮤니티가 있다. 그중 나는 주로 한국 방송연예와 관련된 커뮤니티를 담당하고 있었고 동기는 뷰티와 패션 위주의 커뮤니티를 맡았다. 당시 우리 서비스는 패션 쪽으로 꽤 유명해 팔로워가 50만을 훌쩍 넘었는데 한국 연예 쪽은 전혀 활성화되지 않아 팔로워가 5만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더 해야 매달 만나는 성장 총괄 디렉터의 피피티 속에서 내 커뮤니티도 그래프 위로 튀어나올 수 있는지 몰라서 늘 답답했다. 한껏 노력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KPI 미팅에 들어가 보면 여지없이 그래팍 바닥을 기고 있던 나의 회색 선. 머지않은 미래에 그 회색 선도 수면 위를 빼꼼히 나오다 못해 치솟는 순간이 오지만 한 치 앞을 몰랐던 그때의 나는 참 KPI 미팅이 절망스러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