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인 친구들과 일한다는 것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13

by 지금을

외할아버지의 아버지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부상을 당하셨다. 해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어 상장도 받고 가족들이 전부 모여 사진도 찍기도 했다. 외가에서 막내에 가까운 나와 내 동생에겐 차례가 오지 않았지만 사촌 오빠 중 한 명은 대학을 갈 때 국가 유공자 전형으로 지원했다고 들었다. 친할아버지는 이복형제가 많은데 그 중 유일하게 친형제인 형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사는 동안 늘 형을 그리워하셨다. 어느날 할머니 꿈속에서 부처로 나타나셨다는 큰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무렵 유해가 발견되어 현충원에 안장되셨다. 그 뒤로 6월 6일에 현충원을 찾는 것은 우리 집 연례행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독립운동 하다가 다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분단국가가 되어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겨우 스무 살이었던 큰할아버지가 전장에서 스러질 일도, 그의 어린 동생이 칠십여 년간 형을 그리워할 일도 없었겠지. 해서 나는 어릴 때부터 일본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타고 났다. 나는 PD가 되면 일본인들이 푹 빠질만한 배우를 데리고 끝내주는 한국 근현대사극을 만들어서 그들을 세뇌하고 사과하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한창 욘사마 열풍이 불 때 일본인들이 '태왕사신기'를 실제 역사로 믿고 공부한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여리디 여린 인간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 구나"

그러나 얼마 안 가 내가 오히려 일본 드라마 '고쿠센' 때문에 쟈니스에 푹 빠지게 된다. 죄송합니다 조상님...물론 신화가 브랜드뉴로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쟈니스는 1년 만에 내게 아웃오브안중 되었지만 그사이 나는 쟈니스 소속들이 출연한 일본 드라마나 예능을 꽤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배반의 1년은 십여 년이 지난 뒤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일본팀과 아침 식사 시간을 어색하지 않게 보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다. 일본팀에는 아주 착하고 순한 남자 직원이 있었다. 그는 중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으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지만 아직 자금이 부족하다며 수줍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멤버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에게 나는 조금이나마 친근하게 굴기 위해 아침 식사 시간이면 주로 홀로 앉아있는 그에게 아는 일본어를 총동원해서 말을 걸곤 했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일본 국민 그룹 SMAP이었다. 너무 오래도 오리콘 차트에 머물러 있어서 일명 괴물꽃이라 불린다는 SMAP의 명곡 '世界に一つだけの花(세상에 하나뿐인 꽃)'는 모두가 따라 하기 좋은 율동이 있다. 아마 일본 전 국민이 아는 모양이었다. 그 일본인 직원 역시 들떠서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우리도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씨앗을 가져요. 그 꽃을 피우는 일에만 전념하면 돼요. 작은 꽃과 큰 꽃, 무엇하나 같은 건 없으니 NO.1이 되지 않아도 돼요. 원래 특별한 Only one

며칠 뒤 나는 또 언제나처럼 현충원을 방문할 것이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기는 여전히 힘들 것 같다. '세상에 하나뿐인 꽃'을 부르다가도 그 꽃들을 너희가 어떻게 했냐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회사의 일본팀 친구들은 정말 착한 사람들이었다. 항상 '고마워요', '미안해요'를 달고 살던 하마쨩은 이제 일본으로 가 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길을 잃어버리는 게 특기였지만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쳤던 유키는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며 울면서 한국을 떠났다. 늘 언니처럼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로 반겨주던 케코상도 이제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글로벌 스타트업을 다니다 보면 외교적으로 민감한 국가의 친구들과 부대끼며 일하게 된다. 그때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중국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채팅방에 남중국해 논쟁에 대해 차마 쓸 수 없고, 8월 15일이 되어도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는지 일본팀 친구들에게 차마 물어볼 수 없다. 국가를 떠나 그들은 나에게 좋은 동료고 진심으로 그들이 좋아서 서로 곤란해지는 말은 피하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래도 여러분을 만나서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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