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8일
초보 작가들의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주인공이 나를 닮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주인공과 작가의 거리가 최대한 멀어야 이야기를 전개할 때 좋다고 하셨다. 역시 그것뿐이었나. 내가 글을 못 쓰는 단 하나의 이유...? (아님)
나는 2019년에 에세이를 한 권 출판한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기 싫어해서 영어 단어장조차 MP3로 듣던 주제에 서른이 넘자 갑자기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면서 웬일로 너무 쉽게 그 꿈이 이루어지나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다. 생각 없는 애송이에게 오는 행운은 트리플 민초 맛만큼 싸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의 첫 책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는 얼떨결에 자신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치료를 받을 때마다 느낀 감정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다 지난 뒤에 정갈하게 정돈한 생각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그때그때의 일희일비를 썼다는 점에서 다소 흑역사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때로는 들뜨고 때로는 부푼 마음으로 다짐을 하는 2018년의 나를 다시 보기 민망해서 읽지 않은 지 꽤 되었다. 그래서 책에 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까지 썼는지도 가물가물한데, 종종 독자분들이 ‘그때 책에 쓴 여행 부분이네요.’’라고 하면 그것도 썼다니 하고 나의 기억력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다음엔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쓰고 싶었다. 가상의 이야기여야 좀 더 자유롭게 메시지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에세이는 현재를 사는 내 삶에 대한 이야기라 쓸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의 마음은 얼마나 솔직하게 쓸지 내가 선택하면 되지만, 주변인이나 주변 환경에 관해 쓰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사랑하는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면 더 어렵다. 그래서 꼭 필요해서 써야 한다면 최대한 미화하거나 축소하거나 사람들이 봐도 추측할 수 없게 뭉뚱그리려고 검열 또 검열하게 된다. 당시 내 출간을 응원하던 친구가 원고를 미리 보고 이런 피드백을 한 적이 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다 말을 안 해주는 거야? 궁금하단 말이야. 출판하게 되면 독자들은 너한테 돈을 주고 이 책을 읽잖아. 그럼 그 정도 정보는 제공받고 너한테 공감하고 싶어 할 거야. 인터넷에서 무료로 연재하는 거랑은 달라.”
화자의 트라우마나 심리적 변화를 독자들이 보기에도 자연스러운 맥락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화자가 그렇게 되기까지 겪은 일들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잘 펼쳐서 보여 주어야 한다. 내가 봐도 그런 글들이 재미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실재하는 내가 되면 주변도 모두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이 된다. 그건 마치 나 살자고 밀고를 일삼는 배신자 같아. 게다가 철저히 나의 시점일 뿐이라서 타당한지 검열하게 된다. 당연지사 글을 쓰다 숨기는 것이 많아지고 글이 막힌다. 그래서 아예 가상의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자꾸 소설 속 주인공이 나를 닮게 된다는 것이지만. 빈약한 인생 경험을 탓해야 할지 자료조사의 부족을 탓해야 할지.
"여러분, 나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내가 만든 캐릭터는 훨씬 더 용기 있게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과 나는 거리를 두세요. 그래야 캐릭터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 배우고 있는 시나리오 수업은 아주 재미있다. 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만든 캐릭터는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찌질해도 주인공답게 그리고 싶다. 그러려면 알쏭달쏭한 나의 마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꾸 닮아가는,그래서 주인공답지 못한 선택을 하는 소설 속 주인공 소호와 나도 멀어지게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