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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Jun 02. 2017

15. 연휴 근무로 낳은 13명의 아들 세븐틴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15

그 해는 유난히 연휴의 씨가 말라 5월 연휴가 추석 전 마지막 빨간 날인 때였다. 3개월간 오만 청승을 다 떨게 만든 프로베이션도 통과했으니 당분간 없을 이 연휴를 푹 쉬며 즐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휴 첫날 아침부터 본부장님이 친히 보내주신 카톡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해졌다.


당시 본부장님은 나를 회사의 엔터테인먼트 부문 공식 에디터로, 동기를 패션/뷰티 부문 공식 에디터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 하지만 우리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에디터가 아닌 유저들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공간이었다. 해서 공식 에디터를 출범시킨다는 뜻을 대표님께 관철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표님과 본부장님이 위태한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나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와 지속적으로 미팅을 진행했다.


첫 미팅 날, 플레디스 대표님은 뉴이스트 싸인 CD를 잔뜩 들고 우리 사무실에 방문하셨다.

"뉴이스트 알아요. 하나같이 다 잘생기고 무대에서도 멋지고"

그들을 인터넷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내가 예의 멘트를 하자 대표님은 내심 뿌듯해하면서도 점잖게 웃으셨다.

"신화 팬이시면 다음에 콘서트 VIP 티켓 드릴게요"

라는 대표님 말 때문에 바로 뉴이스트고 뭐고 까맣게 잊었지만. 그땐 몰랐다. 몇 년 프로듀스 101 시즌2를 보다가 뉴이스트에게 설레게 될 줄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결코 뉴이스트 싸인 CD를 선심 쓰듯이 사무실에 뿌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더리움도 살 거야(제일 중요)


플레디스 곧 데뷔 예정인 남자 연습생들을 데리고 우리 서비스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했다. 역시 유이나 나나로 시작할 순 없는 것이구나 낙담하던 나는 연습생들의 프로필 사진을 본 뒤 바로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된다. 대박이다. 얘네 데뷔 전에 잡아야 해.' 하지만 그들이 찍은 데뷔 리얼리티 첫 방이 다가오는데도 대표님 컨펌은 날 기미가 안 보였다. 본부장님마저 별말씀 없으셨다. 이번 프로젝트는 물 건너가나 싶었는데

"니 메일주소 넘겼으니까 자료 갔을 거야. 그리고 대표님한테 니 명함 ID로 활동 시작하겠다고 메일 보내"

아침부터 영롱한 카톡 알람과 함께 세븐틴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마침 대표님은 미국에 가 계셨다. 나는 허락해주시옵소서 하고 메일만 보낸 채 일을 시작했다. 푸르른 5월의 아름다움을 볼 새 없이 침대 위에 앉아서 콘텐츠를 만들었지. 일명 '메로나 감옥'이라 불리는 플레디스 초록색 연습실 영상을 얼마나 많이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본부장님은 종종 나의 진행 상태를 체크하며 넌 이제 세븐틴 엄마니까 잘하라고 다독였다. 전 아직 20대인데 아들만 열셋이라니. 그래도 그 말이 효험이 있었는지 나는 정말 엄마라도 된 양 "승관이가 콘텐츠 보고 좋아했어요" 라는 말 한마디에 힘든 걸 다 씻어냈다. 비록 엄마는 주말 출근으로 쩔어 있었지만 데뷔 쇼케이스에서 본 너희들은 정말 반짝반짝 빛나더라고.


결론만 말하자면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끝났다. 미국에서 돌아오신 대표님이 뒤늦게 메일을 보고 노발대발하셨고, 내부에서 합의가 늦춰지는 동안 세븐틴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슈퍼스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고생한 것에 비해 멋진 엔딩은 아니지만 아들들이라도 성공했으니 만족한.  그리고 번외로...  


꼬맹이? 아 사무엘은 키가 너무 안 커서요. 계속 안 클 것 같더라고요


첫 미팅 때 나는 연습생들 영상 열심히 보고 온 티를 내려고 플레디스 대표님에게 짐짓 아는 척 꼬맹이 한 명은 어디 갔는지 었다. 현재 나는 대표님의 예상과 달리 훌쩍 커버린 그 꼬맹이를 열렬히 응원 중이다. 영원히 안 클 것 같던 꼬맹이는 쑥쑥 커서 뉴이스트와 나란히 프로듀스 101 시즌2에 나왔다. 사람 일 참 모른다. 예, 국민 프로듀서님들 이 글 보시면 사무엘 투표 좀 해주시란 이야기입니다 (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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