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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Jun 12. 2017

16. 갤투 장례식 "삼성이 실수로 만든 명기 갤투야"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16

스무 살의 나는 '휴대폰 판매 권매사'였다. 길바닥에서 휴대폰 좀 사라고 호객 행위를 일삼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였는데 친구들은 휴대폰에 1도 관심이 없던 내가 폰을 판다고 하자 의아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나마 있던 폰도 대학 OT 때 잃어버려서 엄마가 구해준 중고폰을 대충 들고 다니는 애였기 때문이다. 여튼 폰에 무지했던 나는 얼떨결에 폰을 팔기 시작했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에 알게 되었다. 그때의 스마트폰은 지금과 달리 나이 지긋한 부모님들이 사용하시기 편하도록 기능을 최소화시킨, 일명 효도폰을 뜻했다. 초특급 간단한 폰을 의미했던 스마트폰이 4년 뒤에는 반대로 어마어마한 기능을 탑재한 휴대폰을 칭하는 말이 될 줄이야.

'요즘 쟤네 왜 자꾸 효도폰 얘기야?'

고로 스무 살의 기억 때문에 나는 친구들이 한창 스마트폰 타령을 할 때도 심드렁했다.


뒤늦게서야 그들이 말하는 스마트폰이 뉘신 지 알게 되었지만 기계치였던 나는 딱히 새로운 기계를 배울 열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공기업 방송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삶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사서 프라이빗하게 덕질을 하자.'

인턴데다 입사 초반이라 할 일도 없는데 컴퓨터 모니터가 너무 커서 딴짓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은 갤럭시2를 막 출시한 상태였다. 나는 주저 없이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갤럭시2를 예약했다. 그렇게 갤투는 내 인생 최초의 스마트폰이 되었다. 갤투 덕분에 나는 드디어 유료 문자 메시지에서 벗어나 카카오톡도 쓸 수 있고 팀장님 눈을 피해 마음껏 월급루팡을 했으며 뷰티 모드로 셀카도 찍게 되었다.


삼성 휴대폰의 엄청난 생존력에 대해서는 애니콜 시절부터 익히 체감하고 있었으나 갤투는 어나더 클래스였다. 술에 취해 꽐라가 된 내가 아무리 시멘트 바닥에 내리꽂아도 그는 말짱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PD 시험 최종합격을 확인할 때도, 탈락이라는 글자를 보고 우울해할 때도, 다시 일어나 떨리는 필기 시험장을 향할 때도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거대한 운명이 나의 인생 항로를 스타트업 마케터로 틀어 버리는 그 순간에도 그는 나와 함께였다. 몇 번이고 HR 매니저의 전화를 연결해 주었지. 그때 한 번만 안 받았어도 지금쯤 나는...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그를 퇴물이라 놀려도 최대한 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 노쇠한 그가 이상 증세를 보일 때마다 공장 초기화로 그를 소생시켰다. 하지만 메르스가 창궐하던 그 어느 날 나의 갤투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나 기적처럼 살아났던 그였는데 그 날은 유난히 고열 증세를 보이더니 끝내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나는 의외로 담담하게 갤투와의 마지막을 인지하고 갤럭시6를 사러 갔다. 그리고 대리점 문을 연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가장 비싼 가격과 불합리한 약정으로 갤식이의 주인이 되었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따라온 IT 커뮤니티 담당 직원이 말하길 나의 호구력이 너무도 커서 자신조차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금색으로 빛나는 새 폰을 들고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까만 갤투가 보였다. 4년이나 동고동락했는데 이토록 빨리 갤식이로 환승한 것이 조금 미안해졌다. 그래도 너를 잊지 않을게! 나는 회사 직원들에게 내일 갤투의 장례식을 치를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장례식은 언제 시작이냐고 관심을 보이던 동료들이 주방에 삼삼오오 모였다.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회사 직원들이 염을 해야 한다며 나의 갤투를 닦는 중.
사무실에 기거 중이던 거의 모든 피규어들이 동원되었다.
짜가라 스스로 설 수 없는 피규어 둘을 옆에 눕게 했더니 순장 의혹이 제기되었다.
회사에서 지원해준 조문객 간식 로아커. 신규 입사자들이 최소 6킬로씩 찌게 만든 주범.
마케팅팀의 방명록. 글로벌 회사답게 다양한 언어로 쓰였다.
프러덕팀의 방명록. 새로 산 갤식이로 테스트하게 해줄 테니 써달라고 (협박)한 결과.

요란 법석한 장례식이었다. 다들 4년이면 천수를 누리다 갔다며 호상이라 말했다. 시끄러운 와중에 나는 꿋꿋이 추도문을 읽었다.

안녕 삼성이 실수로 만든 명기 갤투야.

너는 서툴렀던 나의 첫 사회생활을 외롭지 않게 해주었고, 수많은 셀카 사기를 칠 수 있도록 했지. 게다가 마지막 가는 날까지 가장 내가 위기인 순간에 떠나 끊임없이 돈을 벌게끔 동기를 부여해줘서 참 고맙구나. 2년 약정 동안 앞으로 더 열심히 벌게.

지난 1년간은 수 없는 공장 초기화로 너를 소생시켰지만 어제는 너의 배터리가 고열 증세를 보이며 끝내 눈을 뜨지 않더구나. 프러덕트팀의 멸시를 받으며 테스트 당했던 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럼 안녕.
넌 내 인생 최고의 휴대폰이었어.

실제로 당시 나는 극한의 위기 봉착으로 회사를 때려치울까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예기치 못하게 새로운 약정의 노예가 되는 바람에 퇴사 의지를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 (갤투가 조금만 더 오래 살다 갔다면 나는...)갤투의 장례식은 이렇게 여러 동료의 도움으로 성대히 끝났다.


이틀 전 갤식이의 2년 약정이 끝났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몇 개의 휴대폰을 더 새로 만나고, 몇 개의 회사를 새로 만나게 될까. 그사이 얼마나 많은 이별이 있고, 그 앞에서 어른답게 굴 수 있을까.


나는 첫 스마트폰과 헤어질 땐 괴랄한 장례식을 치렀고 첫 스타트업 회사와 헤어지고서는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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