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
“내가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 중 하나를 골라 솔직히 말해줘”
오늘의 생각 글 주제는 좀 난감했다. 평소 나는 밑장 다 까고 사는 사람이라 내 사회적 가면에 대해 단번에 떠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릴 때야 교실에서 생존하기 위한 가면이 꽤 여러 개 있었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집단을 떠날 수 있게 된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있는 그대로 살게 됐다. 너무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 건 ADHD의 증상일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스스로를 의심했을 정도로, 나는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눈앞의 사람에게 말하는 건 그게 누구라도 쉽달까. (후회를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럼 나는 정말 숨겨진 얼굴이 하나도 없을까. 아주 어린아이일 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과도한 불안.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 지금이야 “내가 좀 이래”라고 잘 털어놓지만, 그 시절엔 정체 모를 마음과 행동을 무어라 정의하지 못했으므로 부모님께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지진이 나서 죽을까 봐 두려웠고, 불이 나는 것도 무섭고, 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했다. 이런 리스트가 열 가지도 넘게 있어서 매일 기도를 하고 잤다. 그래도 해소되지 않은 공포는 어린이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엄마 화장대 끝은 세 번 두드리고, 화장실 문을 세 번 두드리고, 피아노는 일곱 번 두드리기. 이런 식으로 온 집 안 가구를 두드리는 나만의 의식이 있었다. 그럼 이 지구는 비로소 안전해지는 것이다. 꽤 오래 나는 이 행동을 하다가 자라면서 잊었다. 그리고 족히 스무 해는 지나고 나서 우연히 강박증으로 고민하는 지인으로부터 내 행동이 강박증의 일종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꼬마일 때부터 그랬으니 이건 아마 나의 천성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도 나의 원형은 여전해서 비행기는커녕 택시만 타도 사고가 나진 않을까, 화장실에 혹시 몰카가 있지는 않을까, 아빠한테 화를 내놓고 이게 마지막 한 마디여서 후회하지는 않을까 따위의 상상을 숨 쉬듯이 한다. 대신 이제 어딘가를 두드리지 않아도 0.1초 만에 쓸데없는 상상들을 진압하는 어른이 됐다. 이런 인간이 멀쩡한 척 평온한 얼굴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건 칭찬할 만해.
어랏, 그렇구나. 이게 나의 가면이었다. 솔직함의 시차. 나는 나의 어두운 심리나 고충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거리낌 없다. 단, 그 소용돌이를 벗어나서 의젓한 3자의 입장이 될 수 있을 때 공유한다. 우울할 때, 두려울 때, 불안할 때, 서운할 때, 화가 날 때. 남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칠 때면 나는 홀로 가면을 쓴다.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거든. 상대에게 민폐일까 봐, 질리게 할까 봐, 미움받을까 봐 그렇다. 폭풍이 지난 후에 굳이 입을 떼는 이유는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나는 그 시간을 혼자 보낸 것이 외로웠으므로,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일지 모른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나도 그랬다고 경험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내 첫 책의 제목도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였던 걸지도 모른다. 방송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조금은 지연돼서 송출되는 생방송 음악프로처럼 조건부로 노출되는 나. 솔직한 것처럼 굴지만 완전히 솔직하지는 못한 나는 너무 오래 쓴 이 가면이 피부인 줄 알았군요. 그래도 오늘 생각해 냈다. 양파 껍질 까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