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뺨의 주근깨처럼 내 콤플렉스는 티가 난다.

2026년 2월 11일

by 지금을

이제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와는 모 방송국의 최종 면접에서 만났다. 조별로 정해진 시간 안에 영상을 하나 제작하고 나면, 국장님과의 개별 면접이 진행되는 프로세스였다. 사실 난 이미 다 해본 것들이었다. 그 방송국의 최종 면접이 두 번째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붙고 싶었다.


면접관의 감시 아래 종일 진 빠지게 뛰어다니고 대기하다 보면 서로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녀는 1년 넘게 해당 방송국 타 채널에서 FD 생활을 했다고 했다. 관련된 일화도 많았다. 노잼 모범생처럼 보이는 나와 달리 그녀가 현장에서 노련한 스태프로 일하는 모습은 너무도 잘 상상되어서 조금 부러웠다.


내가 2년 연속 지원한 곳은 음악 채널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건 아니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지원한 거였다. 일 년 전 탈락한 면접에서 “음악은 좋아하냐”라는 국장님의 질문에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빠르게 관심이 식던 그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멜론 1위 가수가 어때서? 내가 대중 그 자체인데.‘


절치부심한 나는 이듬해 국장님의 과거를 탈탈 털어 그가 록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수집했다. 이번에는 꼭 국장님 취향에 맞춘다는 독기로 ’스키드 로우’라는 밴드를 좋아하는 콘셉트를 잡았다. 노래 제목도 멤버 이름도 달달 외웠지. 하지만 국장님은 내가 면접장에 들어가자 ‘어? 버스커버스커!‘ 하고는 나를 기억해 냈다. 덕분에 꿋꿋이 거짓말하려던 나의 엉성한 록 덕후 설계는 망했고 면접도 망했다. 사실 첫해도 다음 해도 국장님 음악 취향을 못 맞춰서 떨어진 건 아닐 것이다. 나는 나를 더 잘 알고, 나만의 견고한 세계가 있어야 했다. 뭣도 없는 나는 집에 엉엉 울면서 갔다.


그녀의 합격 소식은 아마 조별 단톡방에서 들었던 것 같다. ’역시 나도 공채 준비만 하지 말고 FD를 하면서 인맥을 쌓을걸 그랬나?‘ 내 음악 취향이 멜론 1위 가수라 떨어진 게 아니듯, 그녀의 합격 비결은 FD 경력이 다가 아닐 텐데 난 괜히 그런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그 채널에서 FD 공고가 뜨면 바로 지원했다. ‘절대 안 진다! 공채가 아니라도 어떻게든 꿈을 이루고야 말겠어!’


서류 합격 후 면접을 보러 다시 로비에 도착했을 때, 운명의 장난처럼 정규직 사원증 목걸이를 건 그녀가 나를 픽업하러 나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가 포기할 때까지 나를 농락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래. 수치를 삼키며 그녀가 면접이라도 제발 들어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녀는 아무 사심 없는 얼굴로 결국 메인 PD 옆에 자리를 잡았던가. 분명한 건 그때 나는 나를 원망했다. 처음 최종 면접 갔을 때 잘했으면 내가 선배였을 건데, 동기조차 되지 못하고 비정규직 FD 시험을 그녀 앞에서 치르고 있다니 한심해. 멍청해. 시간을 너무너무 돌리고 싶었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간절했다.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오고 싶었는데, 힘든 전형을 거치고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는데. 내가 뭘 잘했어야 결과가 바뀌었을까. 손에 거의 잡힐 것 같았던 꿈. 난 결국 그 FD 면접에도 떨어졌다.


이후 몇 년간 카톡 프사에서 그녀가 PD로 일하는 사진이 뜨는 걸 봤다. 부럽다. 꿈을 이룬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테고, 나는 더 이상 불확실한 시험을 전전하며 내 미래를 의심하는 어린애가 아닌데,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 승진, 복지, 경력. 대단한 건 아니지만 쉬지 않고 쌓아온 것 같은데 두 뺨의 주근깨처럼 내 콤플렉스는 티가 난다. 작사가로 성공하면, 작가로 성공하면 이 후회는 사라질 수 있을까. 질투가 나는데 그녀가 미운 게 아니라 내가 미워. 그 옛날에도. 지금도. ‘그래서 넌 안 된 거야’라는 목소리가 사라지질 않는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선수 치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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