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앱 다운로드를 위해서라면 메르스도 뚫고 UMF로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22

by 지금을

그해 여름은 메르스로 시끌시끌했다.


5월 20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남성이 첫 메르스 환자로 확인된 이후 무려 186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한 스타트업은 과감히 재택근무를 도입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마스크 쓰고 열심히 출근했다. 게다가 우리는 6월 12일, 13일 양일간 UMF에서 부스를 열기로 되어 있었다. 집순이인 나는 UMF란 단어를 살면서 살면서 처음 들었다만 회사 사람들은 굉장히 흥분 중이었다. UMF는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의 약자로 세계 최대 규모의 EDM 페스티벌이다. 그해에는 12만 명 정도의 인원이 몰릴 예정이었다. 타깃연령층도 맞아서 회사는 UMF가 우리 앱을 홍보할 좋은 장소라 생각한 모양이다. 예산이 많지 않아 삐까뻔쩍한 대형 부스를 설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페스티벌 덕후인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로 나름 팔찌도 만들고, 미스트도 만들고, 에코백도 만들며 예쁘게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던 중 메르스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것이다.


공연 특성상 수만 명이 접촉할 수밖에 없는데 전염병 창궐이라니. UMF가 울트라 메르스 페스티벌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기사가 쏟아졌다. 혹시나 공연을 취소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주최 측은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목숨 걸고 부스 홍보에 나가야 할 판이었다. 건강염려증인 나는 사무실 안에서 일하겠다고 버텼다.

"며칠 뒤에 나 생일이라고! 20대 마지막 생일이라고!! 살고 싶다고!!!"

물론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홍보에 동원되지 않기로 했다.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고 열심히 앱 다운로드 홍보를 하는 동료들의 사진이 회사 페북 그룹에 올라올 때도 나는 칼퇴하고 마스크 쓰고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잠실 종합 경기장이요.


그런데 나는 왜 몇 분 뒤 UMF로 향하게 되었나. 점심시간쯤 본부장님이 파마머리를 흩날리며 사무실에 들어오신 것을 보고 나는 떠올렸다. 내가 오늘 그녀에게 먹어야 할 욕이 있다는 것을. 나는 후발대로 출발 예정이었던 페스티벌 덕후 디자이너를 붙들고 말했다.

"갈 때 나 꼭 데려가라"

현장에 있는 담당자에게 가도 되냐고 슬랙을 보내자 얼마든지 오시라고 표를 드리겠다는 답이 왔다. 나는 디자이너를 따라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빠져나와 택시에 몸을 실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로 갈아입은 나는 한 무더기의 에코백과 팔찌를 받았다. 휴대폰 가판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에 호객행위는 자신 있었다.

"앱 다운로드 받고 선물 받아가세요"

당시 우리 회사에는 미국 유학 생활을 오래 한 인턴 친구가 있었다.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 와서 인턴 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그는 누가 봐도 '미식축구를 즐기는 교포입니다' 라는 피지컬을 하고 있다. (사실은 야구를 엄청 좋아한다) 우리가 나눠주는 팔찌를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는 CTR 80프로 수준으로 멈춰 서는 것을 보고 역시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바를 엄청 열심히 하시네요! 열심히 하면 돈 더 받나요?"

네, 알바가 아니라 저희가 사활을 걸고 살려야 하는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무튼 앱 다운로드를 하나라도 더 받게 하려고 우리는 마스크를 낀 채 뛰고 또 뛰었다. 나는 오후부터 시작했지만 오전부터 나와 있던 동료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꼭 성공하자.


진짜 고난은 홍보 부스가 종료되고 시작되었다. 땀에 쩔은 나는 정말이지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귀여운 동기는 이런 곳에 처음 와봤다며 꼭 공연을 보고 가고 싶다고 졸랐다.

"나중에 할머니 되면 손주들한테 할매 이런데도 가본 적 있다고 자랑하고 싶단 말이에요. 같이 가달란 말이에요 엉엉엉"

저질 체력의 집순이는 모든 기력이 소진되었지만 동기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공연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딱 한 시간만 있다가 가야지.


그리고 그 짧은 한시간 사이 동기는 흥에 겨워 나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춤을 추었고, 결국에는 혼자 저 멀리 나자빠져서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중에 손주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할머니를 몹시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집에 좀 가자.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날 UMF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준 팔찌를 손목에 하고 다녔다. 회사 로고가 박힌 빨간 팔찌였다. 다행히 메르스는 잠잠해졌다. 대신 스타트업 라이프는 좀처럼 잠잠해질 줄 몰랐다. 나를 폭풍 속에서 지켜주는 것 같던 팔찌도 어느 순간 내 손목에서 사라졌다.


그간 내가 배운 것은 영원한 행복은 없다는 것이고,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은 영원한 고통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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