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스타트업 직원은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27

by 지금을

한날한시에 같은 직무로 입사했지만 동기와 나는 가고자 하는 길이 달랐다. 야무진 동기는 이 각박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처럼 작은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뭐든지 다 배워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나는 입사 당시 내게 처음 주어진 롤이 PD스럽고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것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스페셜리스트를, 동기는 제너럴리스트를 꿈꿨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참여하고 싶다고 제일 먼저 손을 드는 것은 동기였고, 강제로 동원되는 그 순간까지 딴청을 부리다 결국 끌려가는 것이 나였다.

모든 기력을 언론고시에 소진한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걸 원했고, 피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피하고자 했다.

명함 속에서도 우리의 상반된 가치관이 극명히 드러났다. 동기는 다른 마케팅 팀원들을 따라 직함을 '마케팅 매니저'로 새겼지만 나는 꿋꿋이 '콘텐츠 스페셜리스트'로 신청했다. 채용 공고에 콘텐츠 스페셜리스트를 모집한다고 명시한 것을 빌미로 마케팅에 대한 건 가능한 한 못 본 척 할 요량이었다. 마케팅의 ㅁ도 모르는 내가 마케팅 매니저스러운 일을 하게 될 리 없어...


쌍둥이 같은 업무로 들어왔던 동기와 나의 커리어 패스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프로베이션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해 우리 회사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여름 인턴십을 진행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인턴십 최종 인원을 30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원자만 300명이 넘었다. 700페이지의 서류를 읽으며 점수를 매기느라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인턴십이 시작되면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인턴들과 함께 지내며 멘토가 되어야 한다. 내 일은 도대체 언제 하지?


마침 인턴십을 기획한 콘텐츠팀 리더가 나를 불러서 말했다.

"스타랑 매니저가 있잖아요. 제가 볼 때 애나 님은 스타같은 사람이에요. 매니저는 뒤에서 남이 잘하게끔 도와주는 사람인데 애나 님은 그것보다는 스스로 빛나는 게 잘 맞는 사람 같아요."

에둘렀지만 는 나를 제외하고 동기에게만 인턴십 프로젝트 리딩을 맡기겠다는 이야기였다. 서운해할까 봐 미리 불러서 말한 모양이지만 나는 수많은 일 중에 하나라도 끼지 않을 수 있다는 기쁨에 쾌재를 불렀다.


안돼 쟤가 콘텐츠 봐줘야 해


슬프게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본부장님의 한마디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턴십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애나님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부탁드릴게요 몇 팀만 멘토 해주시면 되고 면접도 들어오고 싶은 팀만 들어오셔도 돼요. 절대 리소스 많이 들지 않도록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콘텐츠팀 리더는 잔뜩 미안한 얼굴로 다시 찾아와했다. 그렇게 나는 좋든 싫든 곁다리로 인턴십을 돕게 되었다.


때는 투자를 위해 높은 넘버 달성이 필요한 여름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회사의 마케팅팀은 콘텐츠, 커뮤니티, UA 총 3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중 인턴십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맡은 것은 콘텐츠, 커뮤니티팀. UA팀은 다른 두 팀과 달리 인턴십 사무실에 상주하지는 않았고, 가끔 필요할 때만 들러서 멘토링을 해주곤 했다.


콘텐츠, 커뮤니티, UA팀별로 성장 총괄 디렉터가 제시한 KPI가 달랐는데 그 중 UA팀의 KPI는 투자를 위해 반드시 깨야 할 수치였다. 하지만 확연히 높아진 목표를 UA팀만 감당하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콘텐츠팀 리더는 회사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매우 큰 사람이었다.

"아기 새를 둥지에서 날려 보내는 그런 마음이네요. UA팀 리더가 똑똑하니까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가서 MAU와 DAU를 부탁해요."

해서 자신의 팀원인 나를 'V3070'이라는 괴상한 프로젝트에 아낌없이 넘겼다. 덕분에 인턴십 사무실을 금세 탈출할 수 있었다만 매니저로서의 삶은 진정 내 길이 아니였던 걸까.

여름 내내 인턴십 진행하느라 고생한 멘토들의 귀여운 다리. 나만 탈출해서 미안하닭.

이후 나는 정말 스타처럼 회사에 다닌 것 같다. 팀까지 옮기게 되어서 더 이상 콘텐츠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시작한 퍼포먼스 마케터도 업무 자유도가 높았다. 회사가 정해놓은 예산 안에서 원하는 넘버만 맞추면 대표님의 컨펌도 필요 없었다. 예산 운용, 크리에이티브 제작, 전략 같은 세부적인 것들은 다 알아서 하면 된다. 혼자 열심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결과를 토대로 개선하니 실제로 숫자가 오르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KPI를 달성했을 때 오는 쾌감도 있었다.

이제보니 내 깜냥으로 관리하기엔 너무도 거대했던 여름 인턴십 친구들. 미안한 점이 많다.

내가 숫자와 놀고 있던 사이 동기는 인턴 친구들과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그녀는 그들이 최대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온 힘을 쏟았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감동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수료식에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동기를 보고 있노라니 찡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울먹울먹하던 인턴들의 소감에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아아. 저런 기쁨이구나.


퍼포먼스 마케팅은 처음이었으니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도중에 팀에 합류해서 정신없이 숫자만 올리고 있던 내가 뭘 모르는지는 나도 모르고 리더도 몰랐다. 그냥 하루하루 목표를 달성하느라 바빴고, 생각보다 순항이라 다들 안심하는 사이 나는 방치되었다. 하지만 나는 최고로 잘 하고 싶었다. '잘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서비스가 흥하고, 그럼 엑싯도 할 수 있겠지, 적어도 망하지는 않겠지?' 어제보다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효율을 내고 싶다는 갸륵한 애사심으로 나는 노트에 숫자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hwp로 지원서를 낸 언론고시생은 구글 시트라는 신세계를 한참 뒤에야 활용하게 된다
한동안 나는 CPM과 CPC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CTR과 구글 쇼트너만 보고 감으로(눙물)
중복 방문자가 많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는데...

로우 데이터를 뽑고 분석하는 법을 배운 것은 나중의 일이다. 훗날 하버드 대학을 나온 회사의 천재 전략가님에게 데이터 세션을 듣기 전까지 나는 노트가 마르고 닳도록 미련하게 모든 것을 기록했다. 신문물을 접하고 나서는 좀 더 과학적이고 발전적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내가 쓴 광고비와 그 결과가 나에게 가장 큰 공부고 재산이고 인사이트였다. 뜯어볼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는데. 콘텐츠 스페셜리스트'만' 되겠다고 부르짖던 나는 이제 퍼포먼스 마케팅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자 한다.


동기는 어떻게 되었냐고? 일이 없는 것을 한시도 참지 못하는 그녀는 열심히 "일 주세요"를 외치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두각을 드러냈다. 똑 부러진 그녀는 회사에 깔린 많은 기회를 그냥 놓치지 않았고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경험해 나갔다. 그렇게 명함 뿌릴 일이 거의 없는 나와는 전혀 다른 커리어와 인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어떤 것을 추구해야 옳은 것일까. 어느 쪽이 우리의 앞날에 더 유리한 길일까. 아직 3년 차인 내가 확언하기는 이르지만 나는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그냥 취향 차이라 생각한다. 더 중요한 건 뭐가 되었든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꼭 좋아서 가슴 뛰는 일이어야만 최고로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을 만큼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면, 내 정신이 토하지 않고 버틸만 하다면 우리는 선택해도 된다. 결국엔 스스로의 선택에 승부욕을 가지고 성실히 한 자가 이긴다. 견딜 수 있다면 해낼 수 있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영향력이 중요하고 기회가 많은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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