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28
그러니까 P사는 우리에게 꿈의 직장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회사지만 당시만 해도 대내외적으로 P사는 우리 회사의 라이벌이었다. 사실 서비스의 정체성이나 비지니스 모델은 그때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다니는 지인, 유저는 물론 면접자들조차 두 회사가 비슷하다고 착각하곤 했다.
"아, 거기? P사 같은 거잖아"
슬프게도 먼저 이름이 나오는 것은 P사였지만.
우리는 인식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외부인들은 우리와 P사가 비슷한 사업을 한다고 착각했다. 물론 그들이 오해한 건 P사가 아니라 우리였다. 대부분은 P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몰랐던 모양이다. P사가 브랜드 마케팅을 잘해서일까, 우리의 사업이 이해하기 어려워서일까.
분명한 것은 두 회사의 마케팅 방식이 굉장히 달랐다는 것이다. 그해 P사는 대대적으로 TV 광고를 시작했다. 덕분에 10대는 물론 20대라면 대부분 P사의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무근본 병맛 마케팅에 능했다. 우리 회사는 좀 달랐다. 대표님은 B급 정서나 키치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이셨다. 약한 욕설이 들어있는 짤방만 써도 자성의 목소리가 오가는 곳이었으니까.
이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 회사가 어떤 고결한 사명과 비전을 가졌는지 우리끼리 백날 되새겨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실제로는 네모라도 대중이 세모라고 정의하면 우리는 세모가 맞다. 네모가 되고 싶으면 네모로 제대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허나 우아하고 품격있고 고급지면서도 남들이 관심 가질만한 웃긴 걸 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어리고 경험도 적었던 나와 동료들은 슬슬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시작했다.
'P사는 이것도 하던데 우리도 하지. P사 이번에 누구 섭외했던데 우리도 하지. 나도 OOO 섭외할 수 있으면 끝내주는 기획할 수 있는데. 우리도 판만 깔아주면 아이디어 있는데. 부럽다.'
발만 동동 굴렀을 뿐이다. 창의력은 사방의 벽에 막히고 시의성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P사는 우리 어린이들의 꿈의 회사가 되었다.
때마침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동료들 사이에서 회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얼른 이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우리는 농담조로 'P사에 가자!'고 말하곤 했다.
"전 여기 오느라 힘을 다 쏟았다고요. 여기서 오래 있어야 하는데!"
이력서 쓰는데 질린 동기는 이직해야 한다는 여론에 절규했다. 나는 애초에 나를 불러줄 곳 따위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갈 데도 없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 있어야지 뭐 어쩌겠어.
그때 놀라운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P사 CCO입니다.
저희와 색과 결이 잘 맞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