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햅번 주연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와 관련한 나의 에피소드
검정 롱드레스인데 그 드레스는 매우 차분히 아래로 떨어지는 에이치라인 스커트고 목라인이 훤희 드러난 그리고 가느다란 팔뚝이 그냥 마구 지켜주고 싶게끔 다 터진 민소매. 드레스가 올 검정색이지만 사랑스러움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런 분위기를 뿜어낼 수 있는 단연 최고의 배우 오드리햅번이 이른 새벽 아침 티파니 보석점을 바라보며 베이글과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1962년 개봉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극 중간에 오드리햅번이 통기타를 치면서 문리버~를 외친다.
Moon River , wider than a mile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Wherever you're going, I'm going your way
매우 몽환적이고 꿈속을 헤맬 것 같은 가사. 부르면서도 뭔소린가 할 듯한데 극중 오드리햅번의 얼굴을 보면 다 이해가 된다. 자신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을 느낄수가 있다.
이 영화를 지금까지 살면서 거짓말하지 않고 100번정도 본 것 같다. 그냥 처음부터 흘러나오는 잔잔한 이 노래가 너무 좋고 그 와중에 검정드레스에 검정 햇~(챙이 넓은 모자)를 쓴 오드리 햅번이 남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는 그 모습이 마치 나같아서. 나도 저렇게 우아해지고 싶다. 라는 느낌.
근데 그 보석점은 왜 하필 티파니일까. 티파니가 어디에 붙어있는 보석점인지 알지도 못했던 시절. 나는 그냥 극중 오드리햅번이 "티파니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사람들이 설레는 표정을 짓는다"라고 했던 것 같다... 여튼 그 멘트에 나도 모를 돌파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티파니 같이 나를 안정시켜줄 뭔가가 필요하다라고.
'티파니에서아침을' 영화가 나에게 그 '티파니' 였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시도때도 없이 봤고 내 영향을 받은 내 딸은 여전히 이 영화의 노랫소리와 오드리햅번이 나오면 머리를 양옆으로 왔다갔다하며 감상에 젖는다. 그냥 좋단다. 우리 딸아이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거즘 5년 간 이 영화를 밥먹듯이 틀어줬으니 주입식 교육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의 소재는 평범하지 않다. 시골에서 애가 있는 남자와 한번 결혼했던 여자가 그를 피해 도망쳤고(사정은 돈, 자신의 남동생이 얽힘) 이름도 바꿨다. 무명의 방송인인지 배우인지 모를 삶을 이어가며 미모를 이용해 재력가의 돈을 내맘대로 쓰는 정서에 좋지 않은 소재. 삶에 그리 큰 미련도 정도 없는 그는 키우는 고양이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고 캣~이라고 부른다. 짐 정리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애정을 주고 싶지 않아하는 그는 가짜인생을 사는 듯하다. 돈이 전부인 세상이라고 여기며 자신 또한 사랑 또는 애정은 사치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유부녀와 바람난 무명의 작가 남자를 우연히 만나 사랑을 느끼지만 결국 돈많은 남자를 쫓아 그냥 그런 여자로 살고자 한다. 하지만 마지막엔 마침내 진정한 진짜와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그런 결말.
스토리를 요약했지만 100번을 본 나도 그 내용이 뭔지 자세히 모르겠다.(영문버전으로 봐서그런가...) 여튼 개과천선의 내용이지 않나. 긍정적인 결말. 할리우드 영화의 정석? 극중에서 남 주인공은 오드리햅번과 티파니 보석점을 찾는다. 과자먹다 당첨된 은반지를 들고 티파니 보석점 매니저에게 이니셜(내기억에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한다. 그게 가능해 또....참...
여기서 티파니 은반지와 얽힌 내 사연을 풀고자한다. 결혼을 앞두고 싱가폴 출장을 3개월 다녀온 당시 남자친구인 현 애아빠는 프러포즈를 하면서 티파니에서 산 은반지를 내게 주었다. 싱가폴 티파니 매장에서 산 은반지였다. 티파니의 티도 몰랐을 그일텐데. 함께 일하던 동료분이 이정도는 사야 여자친구가 좋아할 거라며 그쪽으로 자신을 끌고갔다고 하더라.
정말 돈을 허트로 그리고 진짜 왠만하면 돈을 쓰지 않는 그가, 나를 위해 티파니에서 은반지를 샀다니. 근데 사실 그때 당시에는 골드, 금반지도 아니고 은반지여서 약간 '이게 머지...'라는 느낌도 있엇는데 일단 티파니에서 사온거라하니 아무 의미라도 갖다 붙이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를 마치 알고서 반지를 사 온 듯한 그의 배려심이 느껴졌달까.(사실 그영화도 몰랐던 그...)
얼마지나지 않아 그 반지를 끼고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던 날. KTX를 타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 그 반지는 내 손가락에서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반지 사이즈가 컸는데 그냥 끼고 다닌게 문제였다. 그날은 마치 내 영혼을 기차에 맡기기라도 한듯 광주서 서울에 도착할때까지 눈 한번 안뜨고 잠을 잤다. 그리고 집으로 도착해서 문뜩 손가락이 텅빈 느낌을 느꼈다. 아직까지 그 티파니 반지의 행방이 궁금하다. KTX 측에 전화해서 내가 탔던 기차도 알려주고 한번만 찾아봐 달라 애원을 했지만 없었다. 누군가 주워갔겠지...
제 프러포즈 반지니깐 혹시 2012년 겨울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티파니 은반지를 주우신 분은 제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당시 받았던 티파니 반지를 위한 보석상자와 주머니를 간직하고 있는 나.(사진은 나중에 인증) 이거면 됐다며 나를 위로한다. 여전히 그 티파니 반지 사건을 우려먹으며 뭘 사주면 안된다고 결론 짓는 애아빠. 할말이 없다.
누구에게나 프러포즈의 추억이 있을 거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이렇게 흐릿하게나마 추억할 수 있는 (티파니 반지) 이벤트로 하루를 위로한다. 녹록치 않은 삶이지만 추억을 회상하며 오늘 하루도 안녕.
사진= '티파니에서 아침을' 스틸컷, 네이버영화 스틸컷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