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떨림 Sep 25. 2021

향수를 부르는 단골가게

사람사는 곳

살다보면 단골가게 하나 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집을 떠났을 때에는 자주갔던 대학가 식당과 집앞 마트가 그리웠다. 사회인이 되면서도 터를 잡던 곳 근처로 자연스럽게 자주가는 슈퍼, 커피숍, 식당 등이 생겨났다. 


★상가 슈퍼마켓, 커피숍 등 단골 상점

결혼 후 4년간 언덕배기에 위치한 빌라에 터를 잡았다. 평지 끄트머리에는 골목을 책임지는 슈퍼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친 몸을 달래고 함께 하원하는 딸아이와 매일 같이 들렀던 그 슈퍼에는 60대 노부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항상 퇴근 후 들렀던 마트에는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있어 굳이 다른 대형 마트를 들릴필요가 없었다. 그 슈퍼는 주말도 없이 매일 같이 문을 열었다. 노부부가 쉬는 일요일에는 공부하는 아들이 카운터를 보곤 했다. 오다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집안 사정도 알게 되는데 노부부는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에 있는 남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직장생활하면서 딸아이 키우는 내 모습이 기특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했다. 


그 옆 다섯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중견의 아저씨가 운영하는 커피숍이 있었다. 내부인테리어는 온갖 카메라와 골동품들로 가득한 곳이다. 마치 갤러리를 연상케 했고 엔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주말에나 커피가 생각나는 평일 밤에는 그곳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다섯발자국 떨어진 맞은편에는 세탁소가 있었는데 그 당시 혼자사는 중년의 아저씨가 운영중이었다. 3년 정도 지났을까. 상가임대료가 너무 올라 더이상 세탁소 유지가 어렵다는 사장님은 가게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침일찍 세탁소를 열고 뜨거운 스팀 다림질로 옷을 다리며 부지런히 살았던 사장님은 세탁소에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높은 임대료라는 현실장벽에 부딪혀 제 직업을 포기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세련된 개인 베이커리집이 들어섰다. 불티나게 장사가 잘되더라. 하나에 4만원이 넘는 케이크와 드라이 한 벌에 3천원 하는 셔츠. 마음 한 켠이 쓰라렸다. 그리고 15분 거리에 있던 보세 옷가게도 자주 갔다. 그곳엔 세련된 젊은 여사장이 5평 남짓한 가게에서 누가 입던 옷들과 새옷을 가져다 팔곤 했다. 단골이라며 딸아이 청멜빵바지도 선물해주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쉽게 발걸음이 향해지지 않더라.  


4년 후 언덕배기 빌라 집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그렇다 보니 골목에서 들려오던 이야기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파트 상가 슈퍼는 세월이 지나도 그시절 그분들이 운영하는지라 사람사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2년정도 살았던 서울 아파트에서도 상가 슈퍼 할아버지랑 오며가며 인사했고 어찌지내냐며 안부도 전했다. 


그리고 현재 터를 잡은 곳에서도 상가슈퍼는 나의 단골이다. 여기 슈퍼마켓은 상가 끄트머리에 자리잡았다. 오랜세월 운영하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네 정겨운 슈퍼다. 노부부가 직접 농사지은 야채 과일을 갖다 팔면서 어느 동네 대형마트보다도 가격이 저렴했다. 사장님이 직접 물건을 사와서 큰 이익없이 상품을 내놨다. 그덕에 어렵게 15분 거리의 대형마트에 가는 것 보다 가성비가 좋았다.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 며느님 되는 분이 지나가는 말로 "자식된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이익도 별로 안붙이고 내다파니 주유비 등등하면 거의 물건 떼온 값에 파는 수준이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슈퍼마켓 사장님의 그 노고는 물론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파는 그들의 착한 마음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벌어서 자식들 먹여살린 그들 생활의 부지런함과 지혜가 엿보인다. 


★단골 맛집

직장인 시절 서울 광화문과 서울시청이 주 무대였던터라 정말 맛있는 맛집을 많이 갔다. 그 중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때면 종종 찾던 식당이 가끔 생각난다. 주로 혼밥을 할 때 찾는 곳이다. 서울시청 인근에 '무교동 북어국집' 그리고 그 옆 '참맛 순대국'은 인생 해장국집이다. 맛집으로도 유명해서 여러 블로그에서도 언급이 많이 된다. 그리고 롯데백화점 명동점의 지하1층에 자리한 '치라시'에서 파는 연어덮밥 요리 '바라카라치라시'는 연어덮밥의 종지부라고 보면 된다. 또 서울시청역 출구 지하식당 여러개 중 딱히 들어가는 문도 없이 운영되는 분식집이 하나 있는데(이름을 모르겠다...식당이름이 있었나 싶다...) 거기서 파는 라볶이는 이루말할 수 없이 맛있다. 소스가 환상이다. 


잠시 소파에 앉아 하늘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유가 있으면 예전 단골가게 사람들이 가끔 떠오른다.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나의 정겨운 단골가게. 오랜만에 찾은 단골가게의 흔적이 사라져 있으면 아쉬움을 감출수가 없더라. 내가 살았던 흔적, 내가 살아온 흔적이라서 그럴까. 단골가게는 떠올리면 기분좋고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향수가 느껴지는 곳이다. 나도 누군가의 단골이 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Moon River~♪'…티파니 은반지 잃어버린 1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