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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떨림 Jul 21. 2021

새로운 시작: 무엇이든 할 수 있는 6개월 쿠폰

글쓰기 미션

똑딱똑딱

눈을 떠보니 여느때와 다름없는 기상시간. 7시30분. 스스로 등교준비를 하는 초등학교 딸아이 덕분에 무거운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뒹굴뒹굴 거리다 한마디씩 '치카했어? 옷입었어? 밥먹엇어?'라며 열심히 입만 일하는 아침일상. 30여분을 이불에서 뒤척이다 둘째, 셋째를 불러본다. 게으른 엄마 덕분에 부지런했던 아이들은 저절로 기상시간이 늦춰지고 간신히 9시에 유치원, 어린이집 등원을 마친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 후 장난감, 과자 등등으로 어지러진 집으로 다시 돌아와 있자면 무기력해지는건 한순간이다. 아이들만 보내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거 잔뜩해야지'라며 수천번을 다짐하지만 소파에 널부러진 나의 눈은 SNS '인스타' 동향을 살피느라 바쁘다. 5분이나 지났을까 싶어 시계를 보면 어느새 1시간 2시간 훌쩍지나버린 오전자유시간. 그때서야 바쁘게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청소기를 돌려본다. 꼬르륵~ 슬슬 배가 고파오는 점심시간. 대충 집에 있는 음식으로 허기짐을 잊기 위한, 살기위한 식사를 한다. 그러다보면 벌써 하교를 마친 딸 아이의 전화벨소리가 울리고. 오후시간도 그냥그렇게 아이들과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맞이하는 일상.


10년 전 나는. 하고싶은 일이 있어서 인턴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전라도 광주에서 상경했다. 그누구보다도 열정이 넘친 20대였다. 학원 알바로 모아둔 돈으로 고시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는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회사에서 맺은 인연이 참으로 귀하고 뜻 깊었다. 나보다 먼저 이 직업군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사는 인생을 엿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일을 하다 잠들기도 하고 음주가무를 너무즐겨 그다음날 기어서 출근을 하기도 했다. 처음하는 일에 모르는 거 투성이었지만 닥치는 대로 즐겼고 쉬는시간 없이 그 순간을 즐겼다. 


운 좋게 같은 직렬의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됐고 치열한 직장인이 되어갔다. 오전 6시30분에 기상해서 나름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기 위해 마련한 의상을 걸치고 지옥철에 몸을 싣는 삶이었다.  그리고 결혼, 출산 등을 이어나갔다. 싱글이었던 삶보다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치열하게 살았다. 남편은 싱가포르로 발령을 받고 나와 아이를 두고 떠났다. 나의 기상시간은  더 빨라졌고 아이를 돌봐주는 보모도 구해야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집에 가느라 정신없었다. 동료들과 퇴근 후 시원한 맥주한 잔 마시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밥 달라고 맴맴거렸다. 주말에도 아이와 함께 육아근무를 계속했다. 아이는 예뻤지만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남편이 없는 서러움과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하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매일밤 알코올에 의존했다. 맥주 한캔이 점점 두캔이 되고 소주를 먹었다가 마침내 양주까지 손을 댔다. 아침이면 개운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회사로 향했다.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얼마나 죽은사람 같았냐면 남편복귀 여행 차 방콕에서 만나기로 한 날 어떤 여행에 대한 설렘도없이 공항으로 향했지만 비행기 체크인시간이 지나버려 비행기를 놓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티켓을 사서 10시간을 웨이팅한 후 방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가서 술을 마시며 하루를 잊었다. 2년 후 국내로 복귀한 남편과 다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이와 둘이 살았을 때가 오히려 나에게 자유로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남편은 남이었고 오히려 해야 할 일만 더 늘었다. 알코올 의존은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둘째를 가졌고 나의 알콜사랑은 여기서 끝이났다.(출산 후 다시시작됐지만..) 별다른거 없이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다 워킹맘으로 살아온지  6년차 접어들던 때. 남편이 같이 해외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셋째를 가지게 됐다. 일을 그만 둔 후 해외살이가 끝난 후 세 아이를 가진 경단녀가 재취업을 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이었다. 당연히 힘들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하던 일도 재미가 있었고 이직을 생각하던 찰나 다가온 제안이 반갑진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셋째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더이상 직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무겁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쿠웨이트라는 새로운 나라를 찾았다. 새롭게 펼쳐진 삶은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기도 했다. 단 누구누구의 와이프라는 존재로 살아야하는 삶은 그닥 반갑진 않았다. 1년6개월의 짧은 해외살이가 끝이나고 코로나가 판치는 국내로 복귀했다. 해외살이를 계획할때는 5년이라는 시간을 기대했지만 사람일이란게 그렇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울며겨자먹기로 국내로 들어와 경단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육아란 의미없는 행위라고 명명짓고 살아왔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거나 아이들을 씻기고 아픈아이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약을 먹이고 한글을 가르치는 이러한 일상들을 억지로 해냈다. 그냥 짜증이 났고 왜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한없이 눈물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를 다니는 나는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산다고?"라는 의문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어느 회사의 직군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거라고 지금 나의 삶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굳이 회사, 기업이라는 그 울타리 안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나의 행위가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묻게됐다. 


정신을 차리고 현 사회를 똑바로 응시했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세계가 얼어붙었고 많은 것이 바껴있었다. 그 중 돈을 벌 수 잇는 일련의 직업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졌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1인 기업 또는 프리랜서로 디지털노마드 삶을 살고 있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고 부끄러웠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안전하고 바르게 키우는게 얼마나 위대하고 값지고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냥 스스로를 자책하고 책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양육자의 태도로 인해 아이들의 성향이 결정지어지고 양육자의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임을 뒤늦게라도 알게된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하지못했다는 핑계 따위는 집어던지고 내가하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시작을 위한 한 발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먼저 '신나는 글쓰기' 모임의 문을 두드렸고 이번에는 그곳에서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6개월 무료 쿠폰이 생긴다면?'이라는 신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나는 무료쿠폰으로 앞으로 쓰고자하는 글을 위한 강의를 듣고 싶다. 그리고 글쓰기를 잘 모르는 나에게 그 강의는 앞으로 펼칠 나의 커리어에 아주 큰 초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 시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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