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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ㅇㅈ Apr 29. 2020

쌍둥이어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인 것을

나는 왼손잡이로, 동생은 오른손잡이로 태어났다

엄마에게 소개팅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엄마는 꽤 흥미로운 눈치였다. 원래 난 속내를, 특히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엄마가 그러는 거다.


너 만나는 사람 있어?


그때 난 남자친구가 없었으니까 “없다”고 대답했다. 근데 엄마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작은이모가 너 남자친구 사진 봤다고 해서. 훈남이라고 하던데?” 아뿔싸. 알고 보니 과거 내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을 사촌언니가 이모한테 보여줬고, 얼마 전 엄마에게까지 전파가 된 거였다. 애석하게도 이미 떠난 인연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엄마가 딸의 연애에 대해서 말이 없었던 건 그저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는 것을. 사실은 궁금하면서도 물어보지 못하셨던 것이다.


가운데 앙증맞게 머리를 땋은 사촌언니가 훗날 내 연애사를 폭로한 주범(?). 아니 근데 유모차 왼쪽 오른쪽 중에 누가 나야?


그런데 신기한 건 내 쌍둥이 동생은 나와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가령 어른들이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면 동생은 당당하게 “있다”고 대답한다. 엄마는 오히려 연애 사실을 좀 숨길 줄 알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나 온도차가 큰 쌍둥이는 엄마와 셋이서 떠난 여행에서 그의 절정을 찍고야 말았다.


너 이번 여행에선
정말 예민했던 것 같아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건가. 회사에 입사한지 꼭 3년이 되던 해 여름,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아일랜드 유학 시절이 그리워 가족과 꼭 다시 오겠노라 마음먹었는데 그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아일랜드만 가기엔 아쉬우니 독일도 가기로 했는데 상대적으로 일정이 짧은 독일은 동생이, 아일랜드는 내가 맡기로 했다. 사건은 독일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그것도 매일 폭죽 터지듯 팡팡하고.


평소 난 길을 가더라도 지도를 켜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간다고 하면 동생은 지도 따위 개나 주고, 직감을 믿고 이미 저만치 걷는 스타일이었다.


“엄마는 그 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해. 동생이 유럽여행을 많이 가보기를 했어. 그렇다고 영어가 되기를 해. 더군다나 독일은 영어도 잘 안 쓰잖아.”


사실 길은 구글맵이 알려주는 거였다. 다만 어디를 어떻게 갈 건지가 중요했다. 베를린 지하철은 시내부터 외곽까지 A-C구역이 나눠져 구간권으로 구매가 가능했고, 일회권부터 일일권 그리고 주요 관광명소 할인까지 받을 수 있는 웰컴카드 등 종류가 다양했다. 하지만 동생은 티켓팅 기계 앞에서 A, B, C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간권과 일반권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나 역시 독일은 처음이었지만 초록창에 ‘독일 베를린 대중교통’만 쳐도 얻을 수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동생은 “가서 하면 되지!” 마인드로 부딪히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정말이지, 서로 극명하게 다른 성향이 강렬하게 충돌한 경험이었다. 좋자고 온 여행에 같은 이유로 매일같이 싸우고야 말았다. 내가 씩씩대며 동생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삐죽대니 엄마가 말했다. “솔이가 원래 그렇잖아.”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거예요? 제가 이렇게 말해도 내일 또 같은 이유로 헤맬 걸요. 적어도 같이 여행을 오면 기본적인 건 알아와야죠.”


어떻게 한 뱃속에 태어난 두 명이 이토록 성향이 다를 수 있는 건지, 콩 반쪽 나누듯 분담할 수 없더라도 독일이 아일랜드 일정의 절반뿐인데 적어도 내가 신경 쓰지 않더라도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게 동생이 앞장서길 바랐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놓치는 부분들이 자꾸 생기자 나는 참지 못하고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런 건지 말이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엄마가 어느 쪽이에요?”
“엄마는 반반이지.”
“하, 그럼 우리도 사이좋게 나눠주시지!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일수가 있어요.”
“내가, 한 명은 왼손잡이고 한 명은 오른손잡이일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언젠가 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니까 다른 한 명도 왼손잡이냐고 물어왔다. 그러자 엄마가 어린 나를 대신해 대답하셨다. “얘네 둘이 뱃속에 있을 때 손잡고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한 명은 왼손잡이고, 한 명은 오른손잡이에요.” 그 대답이 어린 나에겐 꽤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 그리 많지 않은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니까 말이다.


쌍둥이인 우리를 마주했을 때, 열이면 아홉 쌍둥이면 텔레파시가 통하냐 묻고, 그다음은 서로 다른 것도 있냐고 묻는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다. 텔레파시가 통하기보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아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거라고. 그리고 같은 것보다 다른 게 더 많은 두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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