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데스크톱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으셨다. “이거 사진 찍으면 잘 나올 거 같지 않아?” 한눈에도 색깔이 화려하고 꽤 멋진 스카프였다. 엄마의 질문은 일종의 ‘답정너’였다. 사고 싶으니까 어서 사진이 잘 나올 것 같다고, 당장 사라 말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네, 노란색보다 초록색이 더 예쁜 것 같은데요.”
“근데 이거 비싸.”
좀 전까지는 괜찮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살 것처럼 이야기하시더니 한순간에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사람처럼 구셨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스카프를 보여주셨다. “이건 어떠니?” 무언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퀄리티가 조금 전의 것보다는 떨어져 보였고, 무엇보다 엄마가 갖고 있는 스카프와 비슷해 보였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엄마는 이어 말씀하셨다.
“근데 이건 엄마가 갖고 있는 거랑 비슷해. 가격도 저렴하고.”
엄마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당신이 이미 소장한 스카프와 다를 게 없었고, 사고 싶은 것보다 가격을 앞세워 고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엄마의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수화기 건너편에선 아빠의 음성이 들렸다.
“그, 차 상태가 어땠다고 했지?”
엄마는 며칠 전부터 차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액셀을 밟는데 굉음소리가 나더니 속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주행 중에 두 번이나 그랬다며 한참을 설명하시다가 통화를 끊으시고는 엄마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듯 한숨을 푹- 쉬셨다.
알고 보니 며칠 전 아빠에게 이미 자초지종 이야기하신 모양이었다. 아빠가 차를 가지고 나가기에 카센터에 들러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려고 전화한 줄 알았더니, 그냥 다시 한 번 차의 상태를 물어본 거라고 하셨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네 아빠 어찌하며 좋냐고 물었다. “당신 위해 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세등등하고, 하나하나 뭐라 하자니 짠하고... 네 아빠 어쩌면 좋아 정말.”
한차례 푸념을 털어놓으시더니 엄마는 다시 모니터 앞에 값비싼 초록색 스카프냐,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저렴한 스카프냐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그 상황을 한참 지켜보다가 난 마침내 법정 앞의 판사처럼 말문을 뗐다. “엄마 그냥 사고 싶은 것 사셔요. 딸이 엄마 사고 싶으신 거 사드릴게요.”
엄마는 흠칫 놀란 눈치였다. “아니 너 며칠 전에도 머그컵 사줬잖아.” 엄마가 말한 머그컵은 블루보틀 마크가 새겨진 머그컵이었다. 작년 미국 여행에서 기념으로 회사에서 쓸 것 하나, 오빠와 새언니 선물로 하나씩 총 세 개를 사 온 일이 있었다. 엄마와 동생은 립스틱을, 아빠에겐 영양제를 사다 드렸는데 엄마는 그 머그컵이 뭐길래 세 개나 사 왔냐며 궁금해하셨다.
“그 컵은 얼마쯤 하니?”
커피 원두와 함께 사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베이지색은 2만 5천 원, 유리로 된 건 3만 원 정도라고 답했더니 엄마는 난색을 표하며 사 와도 난 싫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서너 달 후 별안간 그 머그컵에 대해 물으시더니 최근에 한 번 더 물으시는 거다. “전에 미국에서 사 온 유리컵? 선물한 거 이름이 뭐였지?”
그때 알았다. 엄마는 그 컵이 가지고 싶었지만, 가격을 듣고서 그 마음을 숨긴 거였다는 것을. 그날로 난 당장 엄마와 약속을 잡고서 서울에 새로 오픈한 블루보틀 매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족 수대로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동생 몫까지 총 4개의 머그컵을 사 왔다.
엄마는 머그컵에 스카프까지 사주는 건 부담이 될 거라고 느끼신 모양인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물으셨다. “엄마 딸이잖아요. 이 정도는 얼마든지 괜찮아요.” 엄마는 주춤하시더니, 못 이기는 척 주문하기를 누르셨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아빠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시는데 좀 전까지 “네 아빠 어떡하냐”며 한숨을 푹푹 쉬던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한없이 다정하게 아빠를 맞이하셨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지난날 모처럼 데이트를 하던 날 엄마가 떠올랐다. 그날 머그컵을 들고 활짝 웃던 엄마의 표정을, 난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