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운송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하고 계신다. 콘텐츠를 다루는 나에게 지표를 읽고 분석하는 일 또한 핵심 업무지만, 숫자 앞에선 여전히 눈앞이 흐려진다. 문득 아빠도 처음부터 회계 일을 꿈꿔오신 것인지 다른 일을 하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가신 것인지 궁금했다.
아빠는 무려 1976년도에 첫 회사를 들어갔고, 그때 당시 부서를 발령하는 방식도 무척이나 놀라웠다. 자기 이름 석 자를 한자로 써보라는 말에 슥슥 이름을 써냈고, 미리 말하자면 우리 아빠는 명필이었다. 발령 결과는 인사과였다. 아빠가 관심을 둔 부서는 경리 쪽이었지만 보내주지 않았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서야 부서를 옮겨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군대에 가기 전 취직한 것도 놀라웠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도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운 대목이었다. 옛날엔 워낙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니 다들 그랬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럼 어떤 일이 재밌으셨냐고 물었다. 아빠는 너무 쉽게 대답하셨지만 그 대답은 내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에이, 그냥 다닌 거지. 재밌는 게 어딨어
세상을 재밌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고 재미만으로 일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40년 넘게 일을 했는데도 재밌는 일 하나 없었다는 건 퍽 슬픈 진실이었다. 아빠가 일을 하던 시절엔 모두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일, 회사에 들어가서 내려받는 일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세상엔 회사와 일을 선택하는 이유가 셀 수없이 다양하겠지만, 나한테는 모두 ‘내’가 중심이었다.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로 정의하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직장을 옮기고 또 고민하고 있다. 아빠 세대 때는 평생 한 회사를 다니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떻게 좋아하는 일로 선택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소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내려 그리 정착할 수 있었을까 싶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좋아하지 않게 된다’는 말도 있지만 덕업일치로 하루를 반짝이며 보내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다른 질문에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시다가 “아빠 주변엔 이제 정년퇴직한 친구들이 많은데 아직까지 일하는 아빠가 부럽다고 말해”라고 말하시면서 엷은 미소를 띠었다. 어떤 일을 하든 아빠에겐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뜨면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아직 내 가족을 굶기지 않고 건사할 수 있다는 것에 큰 힘을 얻으시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아낌없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도 아직 난 아빠가 평생 일을 해오신 것에 절반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 땅에 태어나서 ‘부모만큼만 살아도 성공’이라는 말을 하루하루 깊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