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빨간 원피스, 빨간 책가방, 빨간 것들은 늘 내 차지였다. 지금이야 경계가 허물어져 취향 차이겠지만, 보통 여자 아이가 빨간 것을 쓰니 어린 내 눈에도 그게 예뻐 보였다. 그래서 엄마가 빨간 원피스와 파란 원피스를 사 오시면 내가 빨간 것을 입겠다며 고집 피웠고, 할머니가 사 오신 빨간 책가방과 남색 책가방 중엔 빨간 것이 내 거라며 떼썼다. 그래서 남은 파란 옷, 남색 책가방, 파란 것들은 항상 동생 몫이 되었다.
이제는 동생도 제 몫을 챙길 줄 알고 때론 고집도 부릴 줄 아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릴 땐 고집 센 언니 덕에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사실 한 뱃속에 태어나 고작 1분 차 언니인데 말이다. 지금도 엄마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는데, "동생에게 잘해줘"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낳고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동생을 종종 외할머니께 맡겼다고 했다.
동생은 엄마가 아니어도 아빠, 할머니, 이웃집 아주머니 품에 안겨 있어도 순했지만, 나는 엄마가 아니면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엄마와 함께 달리기’를 할 때 나는 엄마와 함께였고, 동생은 다른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도 씩씩하게 뛰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똑같이 태어나 함께 자랐는데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음이 이상하다고 하셨다.
이를테면 저녁을 챙기지 못한 날, 난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저녁 식사를 부탁하지만 동생은 웬만하면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거나 스스로 하려고 했다. 한 사람의 손을 오래 타서 그런지 난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낯을 가렸고, 동생은 처음 만난 누구와도 넉살 좋게 대화 나누는 법을 알았다. 한 뱃속에서 태어나도 우린 이토록 다른 성향을 가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주말, 한평생 같이 살 것만 같던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의 품을 떠난다. 며칠 전, 동생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눈부실 날 그 공간을 파란 꽃으로 꾸민다는 것을 알았다.
“식장을 꾸밀 꽃들이 파란 계열이거든요. 부케도 파란 수국으로 할게요.”
동생의 웨딩드레스를 골라주러 같이 간 샵에서 플래너에게 동생이 한 말이었다. 말을 받는 쪽은 내가 아니었는데 내 마음이 일렁거렸다. 말을 곱씹을수록 마음 저 아래에서 나도 모르는 감정을 자꾸만 길어 올렸다. 드레스를 고르고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 내가 빨간 원피스 입고, 빨간 가방도 내 차지였잖아. 그래도 어릴 때는 너도 빨간 옷 입고 싶지 않았어?”
동생은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왜 안 입고 싶었겠어. 근데 너가 입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파란 옷, 남색 가방, 검정 옷은 다 내 거였지. 나도 빨간색이나 밝은색 써 보고 싶었는데..”
지금도 동생에게 좋아하는 색을 물으면 “빨간색보다 파란색이 좋아”라고 말한다. 그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도 몰랐는데, 내가 동생에게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 준 것 같아 마음이 복받쳤다. 항상 내 행복을 위해 본인 마음은 뒤로 한 채 양보해 줬던 동생이었다. 이제는 내 행복까지 모아 빌어 줄 차례다.
나와 똑 닮고 또 다른, 내 인생의 일부이자 전부였던 동생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