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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ㅇㅈ Oct 24. 2021

오빠 여동생으로 태어나 세 번 울었다

친구랑 있는데 아빠한테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엄마도 아니고, 아빠의 전화는 용건이 있는 연락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근데 왜 영상 통화인가하고 갸웃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연결된 화면 속엔 아빠의 얼굴 대신 익숙한 느낌이면서도 영문 모를 그림 같은 게 보여서 “여보세요? 아빠? 무슨 일이세요?”하고 아빠를 찾았다. 잠시 후 화면이 조금 또렷해지더니 검정 바탕에 흰 무언가가 있는 사진이었다. 아빠가 물었다. “ㅇㅇ야. 이게 뭔지 아니?” 이어 오빠랑 새언니 웃음소리도 들렸다.


생각해보니 오빠네 부부가 이사 관련해 상의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어 주말에 집을 온다고 했었다. 갑자기 집을 온다고 하는 바람에 선약이 있던 나와 동생은 다음을 기약하고 엄마, 아빠만 집에 계셨다. 한편으론 오빠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엄마 아빠께 도움을 받으려는 건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영상 통화 속 보이는 사진에 난 그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드라마와 영화에서 많이 봤던, 그 검정 바탕의 조그만 흰색 물체가 찍혀 있는, 초음파 사진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사진 뒤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유치원 선생님인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2세 계획도 늦지 않아 고모보다 이모가 더 빨리 될 줄 알았다. 올해로 벌써 결혼 5년 차인 오빠는 엄마의 2세 계획 질문에 한결같이 2021년생 베이비를 만들겠다며 큰소리쳤던 게 떠올랐다. 처음엔 어른들의 관심과 질문을 피하기 위한 대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루어지다니 놀라웠다. 이렇게 늘 예고했지만 예고없이 나의 첫 조카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화면 속 사진이 자꾸만 흐려졌다. 나도 모르게 친구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오빠의 얼굴과 초음파 사진이 왔다 갔다하는 어지러운 화면을 앞에 두고 울어버렸다. 내가 기억하는 ‘오빠 앞에서 내가 울었던 장면’은 몇 없었다. 처음은 어릴 적 오빠랑 한바탕 싸웠을 때, 두 번째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때 그리고 오늘 세 번째로 오빠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다.


이전의 눈물은 분하고, 슬픔의 눈물이었다면 오늘은 기쁨의 눈물임과 동시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오빠가 아빠가 되었다는 생각에 뭉클하고 이상한 감정도 들었다. 과거에 경험하고 느껴봤던 무언가와 비교를 하고 싶어도   없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없는 기분을 가져다준 오빠의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어떤   없는 감정을 솟구치게 할까. 벌써  글을 써둔  작년 7월이었으니 1년도  되었다.  말은  생명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


오빠네 부부를 제외하곤, 우리 가족에게 예고 없이 찾아왔던 것처럼 아기는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앞서 세상에 나왔다. 세상과 마주하기 이틀 전 날, 담당 의는 아직 나올 기미가 없지만 머리가 조금 큰 편이라며 다음 주로 수술 날짜를 봐 뒀었다. 그런데 병원을 다녀온 이틀 째가 되던 아침,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오빠가 지금 병원을 가고 있다는 연락에 가족 모두가 초긴장 상태였다. 주말이라 담당의가 오시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아기가 나오는 데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족 채팅방에 정적을 깨고 도착한 사진엔 오빠가 수술복 차림으로 너무나 조그만 갓난아기를 들고 있었다. 어색하지만 기쁨만큼은 숨길 수 없는 오빠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나도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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