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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ㅇㅈ Mar 14. 2021

엄마만 매일 짝사랑이지?

“다녀왔습니다”


원격근무를 하다 두 달만에 출근을 한 날이었다. 집에서 회사가 가까운 편인데도 몸이 아주 천근만근이었다. 그 와중에 현관문 앞에는 내 무릎 높이까지 오는 대형 택배가 와있었고, 꼽고 있던 에어팟은 꺼져가는 불씨처럼 또르릉- 소리를 겨우 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회사 출근한 소감이 어떠셔"
“또르릉” “피곤하네요” “또르릉”


엄마가 물어보는 말에 겨우 대답만 한 채 택배 상자를 내려놓고는, 내 귀에다 대고 계속해서 밥 달라고 칭얼대는 에어팟을 어서 빼내고 싶었다. 그 길로 방에 들어가서는 충전기를 찾고 있는데, 엄마께서 내 동선을 졸졸 따라다니시면서 "오늘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들어가서 한번 봐라" "아까 미용실을 다녀왔는데.." 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난 “정말요? 이따 가서 한번 볼게요!" 하고 대답하면서도, 시선은 충전이 잘 되고 있는지 내 에어팟을 향해 있었다. 그리곤 엄마의 대답 중 단어 하나에 아차 싶었다. '미용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이 보였고, 단정하니 짧고 볼륨이 살아있는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엄마 미용실 다녀오셨구나.”


엄마는 꽤 짧아진 머리를 하고 왔는데도, 딸이 집에 와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게 서운하신 모양이었다.


“됐어, 넌 항상 그래.”


엄마의 토라진 말투에, 엄마가 오랜만에 혼자 집에 계셨겠구나 싶었다. 온종일 혼자 계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오랜만의 출근으로 피곤한 몸은 뒤로 한 채 말투와 마음을 가다듬었다.


“엄마는 역시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려요. 미모가 훨씬 사네요!”


엄마는 그러냐며 괜스레 머리를 매만지시곤 동생도 곧 퇴근하고 집에 온다면서 방을 나서시는데, 뒷모습에서 조금 풀어진 마음이 보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손발을 간단히 씻고 나오는데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동생이 들어섰다. 동생도 한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소풍 대신 반 아이들과 어린이집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는데 에너지를 모두 쏟아낸 모양이다. 엄마는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시다 다시 한 번 딸을 맞이하셨고, 좀전처럼 말을 건네셨다.

그런데 동생도 나와 같이, 엄마를 미처 못 본 것 같았다. 엄마가 말했다.


“막내도 힘들다고 엄마를 안 보네”


아까 들은 말이었는데 한번 더, 아니 처음보다 더 크게 마음이 일렁였다. 난 평소 회사에서 동료들이 머리 스타일을 바꾸거나 살이 빠졌거나 다치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발견하곤 했다. 한번은 동료가 평소 타던 가르마 방향을 바꾼 것도 알아봤는데 그만큼 난 동료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상대방을 향한 애정이라 생각하고 아낌없이 표현했다. 그런데 유독 이상하게 엄마에게만 모든 신경이 둔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퇴근하고 집에 다다를 즈음엔 하루치 에너지의 대부분이 빠져나갔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시선은 바닥을 죽 향한 채로 방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엄마랑 대화를 나누어도 집에 온 지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엄마의 머리가 짧아진 것을, 머리색이 흑발에 가깝게 새까매진 것을, 엄마 손가락에 감겨 있는 밴드를 알아챘다.


2연속 잽에 마음이 조금 어지러웠는데 훅이 다시 한번 들어왔다.

“엄마만 매일 짝사랑이지? 영..올리브? 거기서 사 왔어. 발바닥에 바르고 자!”


평소 엄마 염색약이나 풋크림을 올리브영에서 종종 사드리곤 했는데, 최근 발바닥이 까칠해졌다는 딸의 말을 기억해두곤 풋크림을 직접 사 오신 것이었다. 엄마한테 익숙하지 않은 가게에서 혼자 사 오셨을 풋크림에 그만 고개를 숙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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