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reader Mar 22. 2020

천송이의 사랑식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함께 늙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늘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10여 년 전 생방송 준비로 밤을 새우고
지쳐 돌아오던 날 아침.
여러 아들 두고
딸 집에 잠시 머물게 된 게 영 불편하신지
산책을 핑계 삼아
자주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보게 됐다.

아흔을 바라보던 노부부가
지팡이 하나를 다리 삼아

서로를 잡고 끌어주며
힘겹게 한 걸음씩 옮기던  뒷모습.

그날 두 분이 만들어낸 한 컷은
내 가슴이 기억하는 가장 쓸쓸한 그림이자
노년의 삶을 정의하는
강렬한 색깔이 돼버리고 말았다.




 "함께 할 수 없더라도
날 위해 어딘가 존재해 줘"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오래전 드라마 대사가 TV 위로 흐르고 있다.

황당한 그녀 천송이가
함께 늙어가는 인생에 대한,

이렇게 진지한 질문을 던져주다니.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지쳐 잠든

남편을 보며 생각한다.

나이 듦이 두려웠던가?
소중한 이와
긴 세월 손잡고 걸어가는 일은
어쩌면 큰 행복인 것을.
 아니,

함께할 수도 다시 볼 수도 없다한들
어딘가에서 잘 살아내고 있다 믿을 수 있다면
그조차 어디냐며 내려놓는 마음.

소중한 이들이 하나 둘 사라져 버린 후에야
뒤늦게 철이 드는 우리.
나이 듦도
함께 하지 못함도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비하면
참으로 다행인 것을.

천송이의 대사 몇 줄에 긴장하며 달린

하루의 마음이 풀어진다.


"당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가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줘.
 곁에 없어도 좋으니까
 죽지 말고
날 위해 어딘가에 존재해 줘"




다시 고쳐 생각한다.


돌아보면
 서글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였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나의 오해와는 달리
행복한 인생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양연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