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생기니 틱
만 세돌을 지나, 한국 나이로 4살인 첫째.
다들 그렇듯 첫째라 서툴렀지만 잘 키우고 싶은 욕심만큼은 차고 넘쳤다. 남편도 나도 육아에 진심이었고 우린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서를 정독하고 금쪽이를 애청했다. 거기에 친정엄마도 육아를 도와주러 오셨으니 우리집은 세명의 어른이 아이 하나를 본 셈이다.
미디어는 어린아이의 뇌발달에 치명적이라고 하여 두돌때까지 미디어의 의도적 노출은 하지 않았다. 외출을 좋아하는 내가 아이를 동반하여 식당에 가더라도 미디어를 보여주며 식사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도 그렇게 했다.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은 엄청 더디갔다. 스스로를 잠재적 성인 ADHD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정말 그 시간이 영원같이 지루하여 힘들었다. TV라도 보고싶었고, 보여주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나마 독박육아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30개월 즈음부터 하루에 1개, 영어 콘텐츠로만 미디어를 보여줬다.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기에 늘 아이가 고르도록 하고 어른이 함께 이야기하며 시청했다. 즉, 아이가 미디어를 보는 순간에도 우리는 자유가 아니었다.
아이가 8개월때부터 직장에 복귀했지만 이유식은 만들어 먹였고, 처음엔 무염식 나중에는 저염식을 하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이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고 브로콜리, 감자스틱 같은걸 삶아서 간식으로 주려고 노력하고 두돌까지 아이스크림이나 시중에 파는 군것질 거리는 거의 주지 않았다. 아기용으로 나온 과자 정도만 어렵게 주었다. 햄, 소세지 같은 가공육도 세돌이 되기까지 거의 주지 않았다.
치아 관리에도 진심이어서 이르게 불소치약을 시작했고, 식기와 먹거리 모두 최근까지 어른들과 분리해서 사용했고, 양치도 열심히 시키고 치실도 해주었다.
마침 코로나시기라 남편은 거의 재택근무를 했고, 친정엄마도 집에 늘 계셔주었기 때문에 어른들이 대화하는걸 들을 일이 많은 아기였다. 말이 빨랐다. 발화는 14개월 정도에 있었다. 17개월 즈음에는 두 단어를 붙여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알았다. 24개월 정도에는 문장으로 말을 했다.
어린이집에서 지금까지 늘 반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아기였다. 인지도 가장 빠르고 신체발달도 언어도 뭐든 가장 빠른 아이라는 피드백을 받아왔다. 친구들에게도 좋은 모델링이 되고 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가르친 적은 없었지만 어린이집에서 하는 영어도 곧잘 했고, 집에서 책도 많이 보았고, 놀이도 스스로 주도해서 했고, 규칙도 잘 지켰고, 자기 의사표현도 잘 했고, 어린이집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이만하면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 셋이서 공들여 키운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아이가 갑자기 눈을 심하게 깜박여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하원길에 나를 붙잡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아무 이벤트도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요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행동이 느려졌다고도 전해주셨다. 밥먹을때나 손씻을때, 어떤 행동을 할 때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 재촉하면 다시 행동하기 시작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말이다.
사실 얼마 전 아이가 머리를 흔드는 약한 틱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챘었다. 심한 정도는 아니니 모른척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아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본격적인 증상을 보인 것이다.
모른 척 하고 최대한 즐겁게 아이와 있어 주려고 노력하는데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눈을 심하게 깜박이는 아이와 마주보면서 내 멘탈은 급속도로 무너져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에너지가 쭉쭉 떨어졌다. 겨우 아이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아이가 뭐가 그리 힘들어서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일까? 내가 도대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내 존재가 아이에게 도움이 될수나 있을까? 혹시 나때문에 이러는건 아닐까? 내가 뭘 잘못한거지? 잘한 줄 알았는데.
이런 자책과 불안감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심란하고 너무 우울했다.
다행히 일주일만에 증상이 완화되었고, 더 이상 눈깜박임은 하지 않았다. 이대로 지나가는 헤프닝으로 끝나는 것일까 생각하던 차에 아이에게서 두번째 증상을 발견했다. 눈을 깜박이지 않자 목과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경미한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 목을 상모돌리듯이 돌리고 큼큼목을 가다듬는 음성틱까지 함께 시작한 것 같다.
분명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 것일테지. 3개월 전쯤에 동생이 태어난게 아마 가장 큰 변화일거다. 그때부터 건드리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폭탄같은 상태였다. 거기에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될 것이고, 아이는 내년부터 정든 어린이집을 떠나 유치원에 가게 될 것이었다. 모든 게 타이밍이 좋지 않게 한꺼번에 왔다. 원래도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린 아이였다.
그런데 그 어느하나 내가 바꿔줄수가 없다. 이미 태어난 동생을 다시 뱃속에 넣을수도 없고 이미 팔고 사버린 집을 두배로 물어주고 무를 수도 없고 이제 곧 복직이라 이사로 인해 멀어지는 기존 어린이집을 라이딩할 형편도 안된다. 그냥 걷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터널속에 들어왔고 출구를 찾지 못한채로 그 터널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표현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그저 너라서 사랑하리라 수도 없이 다짐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내모습은, 아이의 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멘탈이 흔들리는 이 내 모습은 결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어딜가나 칭찬받는 아이, 뛰어난 아이, 잘키웠다 소리 듣게 해주는 아이, 내가봐도 번듯한 아이이길 바라며 키운 것이다. 누가봐도 흠없이 잘키운 아이여야 하는데대부분의 아이는 겪지 않는 문제를 내보이니 잘못키운것 같았고 나는 그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던 거다.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건 아이가 가진 약점도, 비선호되는 특성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렇다면 아이가 틱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내가 멘탈에 타격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현재 보이는 증상은 아이의 사회생활을 방해할 정도도 아니거니와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함께 치료하면서 겪어가면 된다. 나는 그런 내 아이도 그저 그대로 사랑하면 된다. 아이의 증상은 한달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다행히 나는 이렇게 갇혀있던 터널을 빠져나왔다.
지금이 아이에게 대나무 마디와 같은 시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나는 그저 덤덤히 옆을 지키고 바라보기로 한번 더 마음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