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가는 길, 그저 쓰는 글

이번에는 막지 않으리라.

by 잡동산이

오랫동안 흘러나오려는 이야기에 입을 막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자료에서 보이기 시작한

옛 나라의 이야기들.

글로 적어보다가도 그만두었다.




옛 나라의 일들에 대한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보이는 것, 풀려나오는 이야기를

적으려다가도 문득 그만두었다.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어.

본래는 그것도 내가 하기로 했던 일이잖아.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나날이 지쳐가다가

문득 알았다.


여기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거라는 걸.

저 10년 뒤의 이야기를 미리 하는 나는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마치 숨어들듯이

늦게 집에 와서는

글 속에서 보이는 것을 보고

글 속에서 들리는 것을 듣고 적어두기 시작했다.


그런 글이 10년을 지내며 쌓여갔다.




10년의 세월이 지나

내가 올 거라고 애써 말하던 세상이

어느덧 찾아왔지만

그 말을 들었던 아무도

10년 전의 말을 기억하지 않는다.


내게도 더 말할 힘이 남지 않았다.


이 삶은 무엇이었나.

회의감 속에 끝을 돌아볼 때

기억 속 저 구석에 쌓아놓은 글들이 보였다.


아우성치는 글들

세상에 나가려는 아이처럼.

그래서 글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매일매일 불안감 속에

그러나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한 점의 의심도 없이

글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느덧 한 달이 가까워오고

읽는 사람도 늘어났다.

하지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홀로 말하고 듣는다.


자료를 다시 만나

옛날

들려주었는데 내가 귀를 막았던 이야기들

다시 받아적어보는 것 뿐.


그 끝을 아는 이야기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이야기.


적어도 삶이 끝나기 전에

이 긴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고 싶다.


아직도 주인공들은

등장도 하지 않은 이야기.

그들을 낳은 이들이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그 이야기만 지금은 흘러나간다.


그냥 그렇게

한걸음을 더 나아간다.

흐릿한 기억 속에

그래도 뚜렷한 이야기를 따라.




이야기가 나를 쓰는지

내가 이야기를 쓰는지.


혼자 진지하게

자료를 정리하고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나누고 모아

매일매일 한 꼭지씩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그런 이야기 만이

흔들리는 눈 앞의 세상에서

절망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아직은 머물러도 좋다고


나를 달래며

이끌어간다.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을 수 있기를


조용한 정적 속에

외면 속에서라도

마칠 수 있기를.


단 하나의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안함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