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편 조선 (2-1) #25

맥[貉/貊]과 북쪽 변방 사람들[胡] (2/4)

by 잡동산이

이제 어째서 맥 사람들이 북쪽 변방 사람들과 함께 진晉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의 단서를 찾가겠습니다. 것이 담긴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기 위해서는 진과 만나기까지의 맥에 대해서도 살펴보아 합니다.




먼저 살펴볼 자료는 시경 대아편의 한혁이라는 이름의 시입니다. 세간에서는 이 시를 한혁편이라고 하던데, 한혁은 시의 이름이니 굳이 말하자면 항에 해당하는 것이지 편에 해당하는 것이 않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AJ 시경 대아편: ① 넓은 저 한-성[韓-城]은 ② 연의 군대[燕-師]가 이룬[完] 바였으니, ③ 앞선[先] 조상[祖]이 명령[命]을 받아 ④ 이어 100(가지)(=여러) 남쪽 변방 사람들[蠻]을 엿보았다[時]. ⑤ 왕王이 (한-성을) 내려주어 한韓의 우두머리[侯](=한-성의 우두머리)라고 하니 ⑥ 그 곳[其](= 한-성에) 추追, 그(= 한-성에) 맥貊이었다(= 추 사람들, 맥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⑦ (한의 우두머리가) 다독여 북쪽 국들[國]을 거두니 ⑧ 이어 (한의 우두머리가) 그 곳[其](= 한-성)의 백伯이(=한-백이) 되도록 하였다. ①溥彼韓城②燕師所完③以先祖受命④因時百蠻⑤王錫韓侯⑥其追其貊⑦奄受北國⑧因以其伯


시경 대아편은 주의 왕이 앞서 명령을 받아 남쪽 변방 사람들[蠻]을 엿보던 사람[AJ:③-④]의 그 후손에게 내려주어 한-후[韓-侯]라고 하도록 하였다[AJ:⑤]고 적었습니다. 구절로 이어지는 다 앞의 구절을 보면 이 때에 내려준 것은 한-성[韓-城]이고 그리하여 그 후손 한-성의 우두머리[侯]가 되었습니다. 이 때 한-성에 함께 고 있게 되었던 사람들을 추追 사람들, 맥貊 사람들[AJ:⑥]이라고 적었습니다.


한-성에 함께 하였던 추 사람들, 맥 사람들은 남쪽 변방 사람들[蠻]을 살피는 일을 하던 한-후의 조상과 가까이 지내다가 이윽고 그와 그의 후손을 따르기로 하였던 주周의 남쪽 변방 사람들입니다. 한-후의 조상을 따르기에 앞서 그러한 맥 사람들이 머물던 곳에 대한 자료가 있으니, 산해경 가운데 맥貊의 국國이 한-수[漢-水] 동북쪽에 있었다[AK:①-②]고 적은 절이 그것입니다.


AK 산해경: ① 맥貊의 국國은 ② 한-수[漢-水]의 동북쪽 땅에 있었다. ● (맥의 국이) ③ 연에 가까우니 ● (연이) ④ 그것(=맥의 국)을 없앴다[滅]. ①貊國②在漢水東北地●③近于燕●④滅之


주의 낙-읍 곧 현재의 호남-성 낙양-시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며 주의 남쪽 변방을 살펴보면, 과연 현재도 여전히 한-수[漢-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낙양-시 서남쪽 먼 곳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 장-강으로 들어가는 물줄기가 있습니다. 이 물줄기의 동북쪽이자 낙-읍의 남쪽인 장소에 있던 여러 국들 사이에 맥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산해경은 이어 맥의 땅이 연에 가까우니 연이 그 곳을 없앴다[AK:③-④]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연은 본래 주周라고 이름하는 장소들, 곧 기-산의 주-읍[周-邑] 또는 낙-읍[洛-邑]의 성주成周, 호-경[鎬-京]의 종주宗周보다도 훨씬 북쪽에 있는 장소, 현재의 천진-시[天津-市] 계-현[薊-縣]에 있었습니다. 지만 맥이 본래 있 장소는 낙-읍의 남쪽니 연에 가깝다고 할 수 없니다.


그러니 맥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옮겨갔던 것이며, 그리한 뒤에 연에 가까운 장소에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맥 사람들이 그렇게 북쪽의 장소에 자리잡기까지 일어난 일들 가운데 첫부분을 적은 것이 앞서 살펴본 시경 대아편의 한혁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 가운데 앞서 제시한 마지막 구절들입니다.




시경 대아편 한혁이라는 시 가운데 앞서 제시 마지막 구절은, 한-성에서 우두머리[侯]가 추 사람들, 맥 사람들과 함께 한-성보다 북쪽 있던 국의 사람들을 다독여 거두[AJ:⑦] 백伯이 었다[AJ:⑧]고 적었습니다. 사람들, 사람들과 북쪽 국들[北國]의 우두머리, 의 여러 우두머리들[諸侯]이라고 뭉뚱그려 야기되는 공들[公], 후들[侯], 백들[伯], 자들[子], 남들[男] 가운데 백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때에 한의 백 곧 한-백[韓-伯]이 머물던 곳, 앞서 주의 왕이 내려주었던 한-성[韓-城]은 어디였을까요? 시경 대아편은 한-성을 연燕의 군대[師]가 이루었다[AJ:①-②]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연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주周보다 훨씬 북쪽, 현재의 천진-시 계-현에 있었으니 한-성 또한 바로 그 곳에 가까운 장소에 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잠시 연의 군대[燕-師]가 남쪽의 주 가까이에 머물던 시기가 있었고 한-성은 이 때에 만들었던 것입니다. 세간에서는 위의 두예가 춘추좌전에 적은 주석대로 연을 따로 나누어 앞의 계-현을 북-연[北-燕], 그리고 그곳보다 남쪽의 남-연[南-燕]이 있었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그것과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자료 찾아가서 이 시기에 대해 살펴봅시다.




사기 연소공세가는 주 성-왕 때에 연 소-왕이 3명의 공들[三-公](= 3명의 공들 가운데 1명)이 되어[AG-2:①-④] 주-공과 섬陝이라는 장소를 기준으로 서쪽은 소-공이, 동쪽은 주-공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AG-2:⑤-⑫]고 적었습니다. 이어 주-공이 성-왕을 대신하여 다스림을 맡아 그 다스림을 천자의 자리에 올리자 - 천자의 것이라고 하자 소-공 주-공을 의심하였다[AG-2:⑬-⑳]고 적었습니다.


AG-2 사기 연소공세가: ① 그 때[其], ② 성-왕[成-王]에게 있었을 때 ③ (연燕의) 소-왕[召-王]이 ④ 3(명)의 공들[三-公](= 공들 가운데 1명)이 되었다. ⑤ 섬陜으로부터 ⑥ 서쪽으로 가서(= 가는 곳은) ⑦ 소-공[召-公]이 ⑧ 그 곳[之]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도록[主] 하였고, ⑨ 섬으로부터 ⑩ 동쪽으로 가서(= 가는 곳은) ⑪ 주-공[周-公]이 ⑫ 그 곳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도록 하였다. ⑬ 성-왕이 ● 아직 ⑭ 나이어려 ⑮ 주-공이 ⑯ 다스림을 맡았는데, ● (다스림이) ⑰ 국國에 마땅하고 ⑱ 천자 자리에 오르니[踐祚](= 다스림을 천자의 자리에 올리니), ⑲ 소-공이 ⑳ 그[之]를(= 주-공을) 의심하였다. ①其②在成王時③召王④爲三公⑤自陜⑥以西⑦召公⑧主之⑨自陜⑩以東⑪周公⑫主之⑬成王●既⑭幼⑮周公⑯攝政●⑰當國⑱踐祚⑲召公⑳疑之


사기 주본기는, 윽고 주-공이 물러나고 성-왕이 다스림을 맡은 뒤에, 성-왕이 풍-읍[豐]에 있으면서[A-5-(2):①-②] 소-공이 낙-읍을 고치도록 하였다[A-5-(2):③-⑤]고 적었습니다. 소-공은 이 때에 읍 하나를 고칠 수 있 만큼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A-5-(2) 사기 주본기: ① 성-왕[成-王]이 ② 풍(-읍)[豐]에 있으면서 ③ (연燕의) 소-공[召-公]으로 하여금 ● 다시 ④ 낙-읍[洛-邑]을 고쳐 ⑤ 무-왕[武-王]의 생각[意](=무-왕이 생각하였던 것)과 같도록 하였다. ①成王②在豐③使召公●復④營洛邑⑤如武王之意


앞서 사기 연소공세가는 소-공이 주-공을 - 스스로 천자가 될까 - 의심하였다고 하였으니, 소공이 거느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러할 때에 주-공을 치기 위한 군대[師]였습니다. 성-왕이 자리에 오른 뒤 소-공의 의심은 풀렸니다만 성-왕 오히려 물러나 풍-읍에 머물렀으니, 군대를 거느린 소-공을 의심하였니다.


이 때에 낙-읍보다 서쪽에 도읍인 호-경[鎬-京]이 있었는데 풍-읍은 물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보다 서쪽에 있었니다. 여기에 머물며 본래 섬陝의 서쪽에 있던 소-공의 군대 서쪽 멀리서 다른 일을 하도록, 낙-읍을 고치도록 하였던 것입니. 그리고서 쌓도록 하였던 것이 한-성라면 한-성 또한 풍-읍에서 멀리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점을 통해 살펴보면 -성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기 한세가는 앞서 남쪽 변방 사람들을 살피던 사람들이 본래 주周와 성을 같이하는 희-씨[姬-氏]였다[AL:①-④]고 적었습니다. 그 후손이 진晉을 섬기니[AL:⑤-⑦] 진이 한-원[韓-原]에 봉할 수 있었고[AL:⑧], 봉한 사람을 이르기를 한韓 무-자[武-子]라고 하였다[AL:⑨]고 적었습니다.


AL 사기 한세가: ① 한韓의 선대[先]는 ② 주周와 더불어 ③ 성姓을 같이하여 ④ 성을 희-씨[姬-氏]라고 하였다. ⑤ 그 뒤에 ⑥ 후손[苗裔]이 ⑦ 진晉을 섬기니 ● (진이) ⑧ 한-원[韓-原]에 봉할 수 있었으며 ● (봉하여진 사람을) 말하기를 ⑨ 한韓 무-자[武-子]라고 하였다. ⑩ 무-자[武-子] 뒤의 3세에(=3세대 뒤의 사람들 가운데에) ⑪ 한궐韓厥이 있었는데 ● (한궐이) ⑫ 봉하여진 곳[封]을 따라 ⑬ 성姓을 ⑭ 한-씨[韓-氏]라고 하였다. ①韓之先②與周③同姓④姓姬氏⑤其後⑥苗裔⑦事晉●⑧得封於韓原●曰⑨韓武子⑩武子後三世⑪有韓厥●⑫從封⑬姓⑭爲韓氏


앞서의 구절들에 따르면 한-원이 바로 한-성이 있던 장소입니다. 기에 대한 주석들을 모은 사기색은 이 구절에 대해 한-원[韓-原] 지금[今]의 풍익馮翊 있는 한-성[韓-城]이다[X-2:⑥-⑧]라고 었습니다.


X-2 사기색은: ● 곧 ① 무-자[武-子], ● 본래 ② 이 사람[是]이 ③ 한-후[韓-侯]의 후손이었으니, ④ 진晉이 ● 또한 ⑤ 그[之]를 (한-후가 봉하여졌던) 한-원[韓-原]에 봉하였다[封]. ● 곧 (한-원은) ⑥ 지금[今]의 풍익馮翊(에 있는) ⑦ 한-성[韓-城], ⑧ 이곳[是]이었다. ●則①武子●本②是③韓侯之後④晉●又⑤封之於韓原●即⑥今之馮翊⑦韓城⑧是也


사기색은을 지은 사마정은 당唐 때의 사람인데, 당 때 풍익의 한-성은 현재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한성-시[韓城-市]로, 하河라는 큰 물줄기의 훨씬 북쪽입니다. 서 지도에 '한'이라고 표시한 곳이며, 앞서 살폈던 대로 현재의 하 남쪽에 자리한 서쪽에 있는 낙-읍 마찬가지로 호-경에서 멀리 떨어져 자리하고 습니다.


한-수[漢-水]와 한-성[韓-城].

위 그림의 원본 이미지는 Eastern China blank relief map ( https://en.m.wikipedia.org/wiki/File:Eastern_China_blank_relief_map.svg )이며,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4.0 International 라이선스에 따라 사용 가능합니다.




이렇게 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에 대한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앞서 사기 한세가가 적은 구절들 가운데 진이 한 무-자를 한-원 곧 옛 한-성이 있던 곳에 봉하였다고 적은 구절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왕도 아닌 진-후가 어떻게 희-씨 성의 후가 봉하여졌던 소인 한韓에 사람을 봉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MC-693/11[+12)부터 MC-667/11[+12) 사이에 일어난 일, 관자 소광편이 진의 공을 도와 적-왕을 잡고 북쪽 변방 사람들[胡] 그리고 맥과 싸운 일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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