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편 조선 (2-1) #24

맥[貉/貊]과 북쪽 변방 사람들[胡] (1/4)

by 잡동산이

이제 맥 사람들과 북쪽 변방 사람들에 련된 자료들을 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조선 가까이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이야기할 것인데, 기로는 앞서 물질문화의 흐름으로는 십이대영자 문화가 십/동대장자 유형과 십/정가와자 유형으로 나누어져 확인되기 시작하는 기인 B.C. 6C 바로 앞 B.C. 7-6C에 당합니다.




관자 소광편은 제 환-공이 동쪽으로 가서[AE-1-(1):⑤-⑥] 서-주[徐-州]를 도와 오吳를 깨트리고 노魯, 채蔡를 도와 월越을 깨트렸다[AE-1-(1):⑦-⑩]고 적었습니다. 이어 환-공이 남쪽으로 가서[AE-1-(1):⑪] 송宋, 정鄭을 도와 초楚를 쳤고[AE-1-(1):⑫-⑬] 그 땅에서 주周에게 사신을 보내 사신이 실[絲]을 주 - 공功을 알리니 - 주가 제사지낸 먹을 것을 내려주고[胙] - 제의 공을 인정하였고 - 그리하여 형-주[荊-州] 곧 남쪽 땅의 여러 후들이 따랐다[AE-1-(1):⑭-㉒]고 적었습니다.


AE-1-(1) 관자 소광편: ① 여러 후들[侯]이 ● 많이 ② 어지러움[亂]에 잠겨, ③ 천자天子에게 굽히지 않았다. ④ 이 때[是]에 ● 아, ⑤ 환-공[桓-公]이 ⑥ 동쪽으로 가서 ⑦ 서-주[徐-州]를 도와 ⑧ 오吳의 반을 나누었고 ● 또한 ⑨ 노魯, 채蔡를 있도록 하고 ⑩ 넘어가 월越의 땅을 갈랐다. ⑪ 남쪽으로 가서 ⑫ 송宋, 정鄭에 기대어 ⑬ 초楚를 쳤다. ⑭ 여-수[汝-水]를 다스려 ⑮ 방方의 땅을 밟고 ⑯ 문-산[文-山]을 바라보며 ⑰ 사신을 보내니 ● (사신이) ⑱ 실[絲]를 주周 왕실[室]에 주었고 ⑲ 성주成周가 ● 반대로 ⑳ (제사지낸 먹을 것을) 높은 산[隆嶽](= 태악太嶽 = 제齊)에 내려주니[胙] ㉑ 형-주[荊-州]의 여러 후들[侯]이 ㉒ 와서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 ①諸侯●多②沈亂③不服於天子④於是●乎⑤桓公⑥東⑦救徐州⑧分吳半●且⑨存魯蔡⑩陵割越地⑪南⑫據宋鄭⑬征伐楚⑭濟汝水⑮踰方地⑯望文山⑰使●⑱貢絲於周室⑲成周●反⑳胙於隆嶽㉑荊州諸侯㉒莫不來服


그리하여 환-공 때에 여러 후들과 모여 처음으로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사기 제태공세가 환공 07년 기사 사기 송미자세가 환공 03년 기사가 모두 이 일[AF-1:③-⑥ = B-2:①-③]을 적었습니다. 일이 있었던 때는 MC-679/11[+12)니다.


AF-1 사기 제태공세가: (환공) 07년 ① 여러 후들[諸侯]이 ② 견(-읍)[甄]에 환-공[桓-公]과 모였다. ③ 환-공이 ④ 이 때[是]에 ⑤ 처음 ⑥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霸]. (桓公)七年①諸侯②會桓公於甄③而桓公④於是⑤始⑥霸焉
B-2 사기 송미자세가: (환공) 03년 ① 제 환-공이 ② 처음 ③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霸]. (桓公)三年①齊桓公②始③霸




그리고서 관자 소광편은 이어, 환-공이 가운데로 가서[AE-1-(2):①] 중원에서, 진晉의 공公을 도와 적狄의 왕王을 잡았고[AE-1-(2):②-③] 북쪽 변방 사람들[胡]과 맥貉을 패배시켜 도하[屠何 = 徒河]를 깨트렸다[AE-1-(2):④-⑤]고 적었습니다. 어 말탄[騎] 도적들이 처음 굽혔다[AE-1-(2):⑥-]고 적었습니다.


AE-1-(2) 관자 소광편: (환-공이) ① 가운데로 가서[中] ② 진晉의 공公을 도와 ③ 적狄의 왕王을 잡았고 ④ (적보다) 북쪽의 변방 사람들[胡]과 맥貉을 패배시켜 ⑤ 도하屠何를 깨트렸다. ⑥ 말탄[騎] 도적들이 ⑦ 처음 ⑧ 굽혔다. ①中②救晉公③禽狄王④敗胡貉⑤破屠何⑥而騎寇⑦始⑧服


앞서 살펴보았던 도하徒河라는 이름, 한漢이 그렇게 적기에 앞서주成周에서 이루어진 모임에서 부/불[不] 뒤에 쓰였던 무리 이름인 도하屠何는 이름로 나타납니다. 질 문화의 흐름에서 살폈던 이 무리는 B.C. 10-9C에 자리잡으며 십이대영자 문화를 이루어내, B.C. 9-6C에 십이대영자 문화가 확인되는 장소들에 있던 람들에 해당합니다.


관자 소광편이 위의 구절들보다 앞 구절들[AE-1-(1)] MC-679/11[+12)에 일어났으니, 도하를 제가 깨트린 일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의 주어는 그대로 제 환-공이니 MC-679/11[+12)에서 멀지 않은 시기 곧 B.C. 9-6C에 포함되는 시기에 이 일이 일어난 것니다. 따라서 도하는 십이대영자 문화가 확인되는 장소들에서 바깥, 특히 쪽으로 흘러왔던 도하 사람들입니다.


영지와 함께 부/불[부]를 따를 때에 있었을 영지까지의 길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나온 도하 사람들이, 보다 서쪽 적狄 곧 주周의 북쪽 변방 사람들 진晉을 공격하는 사이 진의 북쪽 변방 사람들[胡]과 맥貉 사람들을 추겨 일으킨 일이 관자 소광편 구절 내용입니다. 그 결과 제齊가 적의 왕王을 잡 북쪽 변방 사람들과 맥 사람들을 패배시키고는 도하를 깨트렸다였습니다.


관자 소광편의 구절들이 제 환-공이 이 때 이루어냈다고 적은 일에 대해서는 사기 제환공세가에 해당하는 기사가 없으니, 시기를 분명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구절들이 적은 일 관련 자료를 통해 시기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 그 구절들을 먼저 살피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습니다.




관자 소광편은 이어, 환-공이 북쪽으로 가서[AE-1-(3):①] 산융山戎을 쳐서 냉지泠支를 다스렸고[AE-1-(3):②-③] 이어 고죽孤竹을 베자 9가지 동쪽 변방 사람들[夷]이 처음 귀를 기울였다[AE-1-(3):④-⑦]고 적었습니다. 냉지는 성주에서 이루어진 모임에서 도하와 같이 부/불 뒤에 쓰였던 무리 이름인 영지令支를 달리 적은 것입니다. 관자 소광편은 이어 바닷가[海濱] 여러 우두머리들[侯]이 와서 따랐다[AE-1-(3):⑧-⑨]고 적었습니다.


AE-1-(3) 관자 소광편: (환-공이) ① 북쪽으로 가서 ② 산융山戎을 쳐서 ③ 냉지泠支(=영지)를 다스렸고, ④ 고죽孤竹을 베자 ⑤ 9(가지) 동쪽 변방 사람들[夷]이 ⑥ 처음 ⑦ 귀를 기울였다. ⑧ 바닷가[海濱] 여러 후들이 ⑨ 와서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 ①北②伐山戎③制泠支④斬孤竹⑤而九夷⑥始⑦聽⑧海濱諸侯⑨莫不來服


사기 제태공세가 환공 23년 기사는 일 곧 제가 연을 치던 산융을 깨트려 연을 도 일[AF-2:①-⑥]을 며, 사기 연소공세가 장공 12년 기사 또한 을 침범한 산융을 제가 도와 깨트린 일[AG:①-③]을 적었습니다. 이 일이 있었던 때는 MC-663/11[+12)입니다.


AF-2 사기 제태공세가: (환공) 23년 ① 산융山戎이 ② 연燕을 쳤다. ③ 연이 ④ 제齊에 급함을 알렸다. ⑤ 제 환-공[桓-公]이 ⑥ 연을 도왔으며, ● 이윽고 ⑦ 산융을 치고 ⑧ 고죽孤竹에 이르러 ⑨ 돌아왔다. ⑩ 연 장-공[莊-公]이 ● 이윽고 ⑪ 환-공을 보내주며 ⑫ 제의 땅[境]에 들어갔다. ⑬ 환-공이 ● 말하기를 "⑭ 천자天子가 아니라면 ⑮ 여러 후들[侯]은 ⑯ 서로 보내주며 ⑰ 땅을 나가지 않는데, ● (지금 연이 그러하였으니) ⑱ 내가 ⑲ 연에 예를 갖춤[禮]이 없도록 수 없다."라고 하였다. ⑳ 이 때[是]에 ㉑ 도랑[溝]을 나누어 ㉒ 연-군[燕-君](=연 장-공)이 이르렀던 곳을 갈라 ㉓ 연에게 주었다. ㉔ 연-군에게 명령하니 ● (연-군이) 다시 ㉕ 소-공[召-公]의 다스림에 애써 ㉖ 주周에 물건을 주어 ㉗ 성(-왕)[成], 강(-왕)[康]의 때와 같이 하였다. ㉘ 여러 후들이 ㉙ 그것[之](=연의 일)을 듣고 ● 모두 ㉚ 제를 따랐다. (桓公)二十三年①山戎②伐燕③燕④告急於齊⑤齊桓公⑥救燕●遂⑦伐山戎⑧至于孤竹⑨而還⑩燕莊公●遂⑪送桓公⑫入齊境⑬桓公●曰⑭非天子⑮諸侯⑯相送⑰不出境●⑱吾⑲不可以無禮於燕⑳於是㉑分溝㉒割燕君所至㉓與燕㉔命燕君●復㉕修召公之政㉖納貢于周㉗如成康之時㉘諸侯聞之●皆㉚從齊
AG-1 사기 연소공세가: (장공) 27년 ① 산융山戎이 ② 와서 우리[我]를 침범했다. ③ 제齊 환-공[桓-公]이 ④ 연燕을 도왔으며, ● 이윽고 ⑤ 북쪽으로 가서 ⑥ 산융을 치고 ⑦ 돌아왔다. ⑧ 연-군[燕-君]이 ⑨ 제 환-공을 보내주며 ⑩ (연의) 땅[境]을 나갔다. ⑪ 환-공이 ● 이어 ⑫ 연이 이르렀던 곳의 땅을 갈라 ⑬ 연에게 주고 ⑭ 연으로 하여금 ● (제와) 함께 ⑮ 천자天子에게 물건을 주도록 하니 ⑯ 성주成周의 때에 (연이) 맡은 일[職]와 같이 하였고, ⑰ 연으로 하여금 ● 다시 ⑱ 소-공[召-公]의 법法에 애쓰도록 하였다. (莊公)二十七年①山戎②來侵我③齊桓公④救燕●遂⑤北⑥伐山戎⑦而還⑧燕君⑨送齊桓公⑩出境⑪桓公●因⑫割燕所至地⑬予燕⑭使燕●共⑮貢天子⑯如成周時職⑰使燕●復⑱修召公之法


그런데, 관자 소광편의 다른 구절들이 또한 이 일[AE-2:①-②]을 적었니다. 앞서 이 일을 적은 구절과 견주어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산융 고죽은 적었지만 영지는 적지 않았고, 9가지 동쪽 사람들[九夷]을 적지 않고 예穢 맥貉을 적었습니다.


AE-2 관자 소광편: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 (내[呈]가) ① 북쪽으로 가서[北] ② 고죽孤竹, 산융山戎, 예穢, 맥貉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桓公曰)●①北②至於孤竹山戎穢貉


첫번째 차이는 대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제는 영지를 다스렸을[AE-1-(3):③] 뿐이며 융을 고 고죽을 었지만 영지에게는 그리하지[AE-1-(3):②-④] 않았니 산융, 고죽과 함께 적지 않 것입니다.


사기 연소공세가, 사기 제태공세가 그리고 관자 봉선편 또한 이 일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사기 연소공세가는 산융을 치고 돌아왔다[AG-1:⑥-⑦]고 적었고, 사기 제태공세가는 산융을 치고 고죽에 이르러 돌아왔다[AF-2:⑦-⑨]고 더 자세히 적었고, 관자 봉선편은 환-공이 산융을 치고 고죽을 지났다[過][AH-(1):②-⑤]고 보다 더 자세히 적었습니다.


AH-(1) 관자 봉선편: ① 환-공[桓-公]이 ● 말하기를 "② 내[寡人]가 ③ 북쪽으로 가서 ④ 산융山戎을 치고 ⑤ 고죽孤竹을 지났다.("라고 하였다.) ①桓公●曰②寡人③北④伐山戎⑤過孤竹


앞서 물질 문화의 흐름을 살피면서 이 시기에는 옥황묘 문화 해당하는 산융이 있던 장소들의 동쪽에, 십이대영자 문화에 해당하는 예 사람들과 도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러니 제齊가 예에 이르렀다고 한 구절은, 영지와 함께 부/불[부]를 따를 때에 있었을 영지까지의 길, 고죽을 통하는 그 길을 통하여 십이대영자 문화가 확인되는 장소에 이르음을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맥 사람들은 십이대영자 문화와 관련하여 살펴본 앞서의 기록들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 구절에서는 예 사람들과 함께 9가지 동쪽 변방 사람들로 곧 예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변방 사람들과 어울려 나타나고 있습니다. 맥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앞서 에서 살피겠다고 하여 미루어두었던 관자 소광편의 다른 구절들에 답이 있습니다. 제에게 깨트려진 북쪽 변방 사람들과 맥 사람들은 대부분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지만, 그들 가운데 앞장서 도하와 손았던 사람들은 돌아가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죽보다도 동쪽, 도하 사람들이 돌아갈 때 함께 십이대영자 문화가 확인되는 장소들로 갔던 것입니다.




이제 앞서 북쪽 변방 사람들[胡], 맥貉 사람들과 제 사이의 움이 일어던 시기를 조금 더 힐 수 있습니다. 곧 제가 북쪽 변방 사람들과 맥 사람들을 패배시킨 일은 MC-679/11[+12)와 MC-663/11[+12) 사이에 일어습니다.


이 때 달아난 맥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서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뒤에 제 환-공이 진晉보다도 서쪽으로 가서 다른 무리를 칠 때에 다시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데, 관자 소광편은 비이의 맥[AE-1-(4):⑨]이라고 적었습니다. 같은 일을 적은 관자 봉선편은 비이라는 산[AH-2:⑤]이라는 구절을 보면 비이는 곧 산의 이름입니다.


AE-1-(4) 관자 소광편: (환-공[桓-公]이) ① 서쪽으로 가서 ② 쳐서 백적白狄의 땅을 밀어내어 ● 이윽고 ③ 서-하[西-河]에 이르렀고 ④ 배들[舟]을 둘러[方] 뗏목들[柎]을 던져 ⑤ (배에) 타고 (뗏목들을) 제-하[濟-河]에 띄웠다. ⑥ 석침石沈에 이르러 ⑦ 수레를 늘어뜨리고 말을 매어 ⑧ 태행(-산)[太行]을 밟아 ⑨ 비이卑耳의 맥貉과 함께 하였다. ⑩ 태하泰夏의 서쪽을 죄어 ⑪ 유사流沙, 서우西虞를 굽히도록 하였다. ⑫ 진秦의 서쪽 변방 사람들[戎]이 ⑬ 처음 ⑭ 따랐다. ①西②征攘白狄之地●遂③至于西河④方舟投柎⑤乘桴濟河⑥至于石沈⑦縣車束馬⑧踰太行⑨與卑耳之貉⑩拘泰夏西⑪服流沙西虞⑫而秦戎⑬始⑭從
AH-(2) 관자 봉선편: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 (내[寡人]가) ① 서쪽으로 가서 ② 태하泰夏를 치고 ③ 유사流沙를 밟았으며, ④ 말을 매어 수레를 늘어뜨리고 ⑤ 비이卑耳의(=비이라는) 산山에 올랐다.("라고 하였다.) (桓公曰)●①西②伐大夏③涉流沙④束馬懸車⑤上卑耳之山




그런데 이 비이라는 산의 이름을 관자 소문편은 비이의 물[谿][AI:④]라고 적었는데, 앞서 관자 봉선편이 적었던 비이라는 산의 골짜기를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앞에는 북쪽으로 가서 고죽을 쳤다고 적은 구절이 있니, 세간에서 이 구절을 보고서 비이가 고죽을 가까이에 있던 물의 이름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AI 관자 소문편: ① 환-공[桓-公]이 ② 북쪽으로 가서 ③ 고죽孤竹을 치고 ④ 비이卑耳의 물[谿]에 아직 이르지 않았다. ①桓公②北③伐孤竹④未至卑耳之谿


그러나 관자 봉선편은 제 환-공이 말하기를 "북쪽으로 가서 고죽을 넘었다."고 하였다[AH-(1):③-⑤]고 적고서, 바로 제 환-공이 말하기를 "서쪽으로 가서 태하를 치고 유사를 밟고서 비이의 산에 올랐다."고 하였다[AH-(2):①-⑤]고 적었습니다. 관자 소광편 또한 북쪽으로 가서 고죽을 쳤던 일[AE-1-(3)]을 적고 곧 이어 서쪽으로 가서 태하를 친 일[AE-1-(4)]을 적었습니다.


견주어보면 앞서 관자 소광편의 구절들은 전해지며 고죽[AI:③]과 비이[AI:④] 사이에 본래 있던 서쪽으로 가서 비이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적은 구절들이 누락되어 어진 것처럼 보일 뿐 본래 하나로 이어졌던 구절들이 아닙니다. 러니 비이卑耳 또한 서쪽에 있던 땅 이름이지 북쪽에 있던 고죽孤竹 가까이 있던 이름이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기 제환공세가 기사는 제가 북쪽 변방 사람들과 맥 사람들을 패배시킨 일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기를 더 좁힐 수 있으니 사기 진세가가 그 시기 진晉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절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쪽 변방 사람들과 맥 사람들이 째서 도하 사람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손잡고 진과 그리하여 결국 제와 우게 되었는지 더 깊이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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