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문화들/유형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름을 가진 것들이 다음으로 나타납니다. 문화의 이름을 줄여써서, 마성자 문화의 다른 유형 앞에는 마를 적고 /를 적었으며 십이대영자 문화의 다른 유형 앞에는 십을 적고 /를 적었습니다.
마/이도하자 유형 (B.C.10-5C)
마/대이수구 유형 (B.C.10-5C)
하가점 상층 문화 (B.C. 9-7C)
옥황묘 문화 (B.C. 9-7C)
십이대영자 문화 (B.C. 9-6C)
6C를 경계로 새로 바뀌어 나타나는 문화들/유형들 가운데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래에 따로 적었습니다.
정구자 문화 (B.C. 6-3C)
십/정가와자 유형 (B.C. 6-4C)
십/남동구 또는 동대장자 유형 (B.C. 6-4C)
아래.지도에 문화/유형에 해당하는 물건들이 발견되는 장소를 표시하였습니다. 문화/유형의 중심이 되는 장소는 채워진 원으로, 같은 문화/유형의 다른 장소들은 같은 색의 빈 원으로 그렸습니다. 파란 사각형은 물가가 땅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음을 단순하게 보인 것입니다.
앞서 글에서 이야기한 원본 지도에 보태어 그렸는데, 압록-강으로 들어오는 혼-강도 빠져있고 난-하 또한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네요. 참고만 하기 바랍니다.
단-군이 아사달에서 옮겨 장당-경에 도읍한 MC-1030전부터 B.C. 5C에 해당하는 것은 마성자 문화의 2가지 유형들, 마/이도하자 유형과 마/대이수구 유형 가운데 마/대이수구 유형입니다. 혼-강 곧 비류-수에 가까운 장소들에서 확인되는 마/대이수구 유형은 단-군을 따르는 발 사람들이 새로 자리잡아 중심이 되고 앞서 머물던 조선 사람들이 따르던 발에 해당합니다.
또다른 우두머리 조선-후가 아사달에서 다스리던 MC-1030전부터 B.C. 6C에 해당하는 것은 마성자 문화의 2가지 유형들 가운데 마/대이수구 유형보다 서쪽의 태자-하에 가까운 장소들 그리고 고대-산 문화가 확인되던 장소들 가운데 동쪽의 장소들에서 확인되는 마/이도하자 유형입니다. 아사달의 조선-후와 조선 사람들이 중심이 되고 다른 조선 사람들이 따르던 조선에 해당합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마성자 문화가 있는 장소들 가운데 마/대이수구 유형이 확인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B.C. 12C로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기를 통해 바라보면,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겨가기에 한참 앞서 아사달을 떠날 준비를 하였던 셈이니, 마/이도하자 유형이 확인되는 장소들에 있던 조선 사람들이 아사달을 버리려고 하는 단-군 대신 조선-후를 따르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고대-산 문화가 확인되는 장소들 가운데 서쪽의 장소들에서는 B.C. 10C부터 별다른 문화/유형이 확인되지 않는데, 조선에 들어와 머물던 예 사람들에 해당합니다. 숙신을 따를 때에도 온전히 무리를 이루지 못하였기에, 문화적으로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B.C. 10C부터 예 사람들이 머무르던 장소들 곧 고대-산 문화가 확인되던 장소들 가운데 서쪽의 장소들을 중심으로 바깥에 맞닿은 장소들, 곧 예가 퍼져나가며 이르렀을 장소들에서 확인되는 문화도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도하자 유형 뿐만 아니라, 지도의 동대장자 가까이 있던 - 십이대영자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B.C. 9C부터 확인되는 십이대영자 문화가 그러한 문화입니다.
십이대영자 문화는 B.C. 10C까지 확인되던 위영자 문화와 1C 시간 간격을 두고 B.C.9C부터 B.C. 6C까지 확인되는데 그 장소들에 가운데 성주의 모임에서 부/불을 따르던 도하가 있습니다. B.C. 7C에는 문자 자료에 도하가 따로 나타나니, 조선에서처럼 B.C. 10C부터 예 사람들이 도하에 들어오며 부/불과 도하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도하 사람들이 예 사람들과 함께 십이대영자 문화를 이루어내어 9C부터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 사람들은 동쪽으로 B.C. 10C부터 마/이도하자 유형이 확인되는 장소들에서 서쪽으로 B.C. 9C부터 도하를 포함하여 십이대영자 문화가 확인되는 장소들까지 넓게 자리잡았습니다. 뒤에 B.C. 6C부터 동쪽의 장소들에서는 십/정가와자 유형이, 서쪽의 장소들에서는 십/동대장자 유형으로 갈라져 변화하게 되는데 예 사람들이 그 연결고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서, 조선 서쪽에는 십이대영자 문화가 확인되기 시작하는 B.C. 9C부터 옛날 하가점 하층 문화의 중심인 하가점을 중심으로 하가점 상층 문화가 확인되기 시작합니다. 그곳의 서남쪽에서도 현재의 천진-시[天津-市] 계-현[薊-縣]에 해당하는 연燕의 서북쪽에 있는 옥황묘를 중심으로 옥황묘 문화가 확인되기 시작합니다. 둘 모두 B.C. 7C까지 확인됩니다.
그런데 옥황묘 문화가 확인되던 곳에서는 B.C. 6C부터 연 문화가 확인되기 시작하며, 그 동북쪽 하가점 상층 문화가 확인되던 곳에서는 B.C. 6C부터 정구자 문화가 확인되기 시작합니다. 이 가운데 정구자 문화는 따로 정/철영자 유형, 정/정구자 유형, 정/수천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 유형들은 모두 B.C. 3C까지 확인됩니다.
요컨대, 옥황묘 문화가 B.C. 7C에 사라지고 나서 B.C. 6C부터 연 문화가 나타날 때에, 십이대영자 문화는 십/동대장자 유형과 십/정가와자 유형으로, 하가점 상층 문화는 정/철영자 유형, 정/정구자 유형, 정/수천 유형으로 갈라져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연 또는 그 서쪽에서 B.C. 7C에 일어난 일이 연 문화가 북쪽과 동쪽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고, B.C. 6C에는 현재의 요-하 동쪽의 문화까지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무엇이었까요? 이 일에 대한 자료에서 시작하여 조선과 함께 하던 나머지 무리들에 대해 다음 글부터 살펴보고, 그리하여 1장 3편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