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4편 조선 (2-2) #13

조선과 연燕, 진秦, 한漢 (3/4)

by 잡동산이

조선이 연과 싸우고 그리하여 마침내 물러나 자리잡은 뒤에, 연이 계界로 남겨두었던 새들[塞], 장들[障]이 있던 곳들은 뒤에 모두 진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위략은 뒤에 한이 이어받고는 노관을 연-왕으로 삼아 취-수[溴-水]에 연과 조선의 계들을 두도록 하였다고 적었습니다. 사기 조선열전은 한이 진을 따르던 장들, 새들이 있는 땅이 멀기에 요동의 옛 새들을 고치고 패-수[浿-水]까지를 계로 였다고 적었습니다.


두 자료들이 모두 한과, 정확하게는 한을 따르는 연과 조선의 계들이 있던 곳을 물줄기라고 하였지만, 물줄기 이름이가 있습니다. 위략은 계들이 있는 - 한의 계가 조선의 계가 맞닿은 곳의 물줄기의 이름을 취-수[溴-水]라고 적었데, 사기 조선열전은 새서부터 시작하는 한의 계가 조선의 계와 맞닿은 곳 자리하고 있는 물줄기 이름을 패-수[浿-水]라고 적었습니다.


사기 조선열전의 패-수[浿-水] 또는 위략의 취-수[溴-水]는 한서 지리지 주석이 번한-현에 있고 새 바깥에서 나온다고 적은 패-수[沛-水]와는 다른 물줄기입니다. 진이 패-수[沛-水]를 가로질러 건너 따르도록 한 곳이 요동-군 바깥에 있던 새들, 장들인데, 한이 새들을 고쳐 계의 한쪽으로 하고 보다 멀리 있던, 장들이 있던 땅을 리고 계의 다른 쪽으로 삼은 곳이 패-수[浿-水] 또는 취-수[溴-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인용한 위략은 그 뒤 위만의 일을 이야기하며 패-수라는 물줄기 이름을 또한 적었습니다. 위략이 적은 이야기를 전한 한 사람들 - 앞서 조선을 떠났던 사람들은 취-수와, 패-수를 모두 알고 둘을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니 두 물줄기는 같은 물줄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계가 있던 곳일까요?




위략과 사기 조선열전은 모두 노관이 한에 등돌리고 흉노에 들어가는 일로 위만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만의 움직임을 적은 두 자료의 구절들은 거의 하나하나 대응하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먼저 위략과 사기 조선열전은 노관이 등돌리고 흉노에 들어간 일[A-(4):①-② = B-(4):①-②]을 적었고, 위만 곧 만이 명령받은 곳을 떠난 일[A-(4):③-④ = B-(4):③-④]을 적었습니다. 이어 사기 조선열전은 만이 무리를 모은 일[B-(4):⑤], 상투처럼 머리를 묶고 동쪽, 남쪽 변방 사람들처럼 옷차림을 한 일[B-(4):⑥-⑨]을 적었습니다만, 위략은 북쪽 변방 사람들처럼 옷차림을 한 일 만을 적었습니다[A-(4):⑤].


이어, 략과 사기 조선열전은 위만이 동쪽으로 간 일[A-(4):⑥ = B-(4):⑩]과 패-수를 건넌 일[A-(4):⑥ = B-(4):⑫]을 적었는데, 사기 조선열전은 그 사이에 달아나 새를 나간 일[B-(4):⑫]을 따로 적었고 위략은 이 일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령받은 곳[命]을 떠나는 것은 이미 그 다스림을 받기로 한 것이니 바로 새를 나가는 것이며, 이 구절은 마땅히 B-(4):③-④의 뒤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기 조선열전은 명령받은 곳을 떠난 만 곧 위만이 1,000명 남짓한 무리를 모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머물던 곳에 큰 빈 땅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인데, 앞서 살핀 바 명령받은 곳을 떠났다는 것은 바로 새를 나갔다는 것이니 하였으니 이곳은 새의 바깥에 있는 곳입니다. 그 가운데 새에서 물줄기까지는 한의 계인데, 앞서 한이 새들과 장들이 있는 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다고 하고 새로 계를 새에서 물줄기까지로 하였으니, 물줄기에서 장까지의 땅이 멀리 있는 곧 큰 땅에 해당하며 바로 위만이 머물던 곳입니다.


그러니 한의 계는 새에서부터 새와 장 사이에 있는 물줄기까지였습니다. 앞서 조선은 진의 뜻을 따라 그 물줄기에 이르지 못하는 곳만을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 뒤 조선-후 준이 조선-왕이라고 하면서부터는 이 물줄기까지를 스스로의 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한은 물러나 새와 물줄기까지만을 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조선 또한 그곳을 다스리지는 않고 비워둔 채였고, 러함을 알던 이 명령받은 곳을 떠나 여기에 이르러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위만이 새를 나오며 떠난 한 대신 조선을 따르고자 하여 동쪽으로 가서 다시 건넌 물줄기를 위략과 사기 조선열전 모두 패-수[浿-水][A-(4):⑦ = B-(4):⑫]라고 적었습니다. 따라서 장과 새 사이의 물줄기는 패-수[浿-水]가 아니라 취-수[溴-水]고, 사기 조선열전이 요동-군의 옛 새와 더불어 계의 기준으로 삼은 물줄기의 이름 패-수 또한 취-수를 잘못 적은 것입니다.


이어 위략은 -수를 건너간 위만이 조선-왕 준에게 항복한 일[A-(4):⑧-⑨], 조선-왕이 위만에게 벼슬을 주고 머무는 것을 허락한 일[A-(4):⑬-⑳]을 적었고, 그리하여 위만이 서쪽 변방에 머물게 된 일[A-(4):㉑]을 적었습니다. 마지막 일에서 위략이 서쪽 변방이라고 한 곳을 사기 조선열전은 곧 위만이 진이 따르도록 한 땅이었으나 (한이) 비워둔 상, 하의 장들이 있는 땅에 머물렀다[B-(4):⑬]고 달리 적었습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이 차지한 진-번의 서쪽 땅에는 번한-현에서 그 시작을 알고 있던 물줄기인 패-수[沛-水]가 있었고, 그 동쪽 땅에 새들[塞]이 있었고, 다시 그 동쪽 땅에 장들[障]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취-수[溴-水]가 있었습니다. 장들이 있는 땅에서 멀리 동쪽으로 가면 패-수[浿-水]에 이르렀고 그 건너에 조선의 왕험-성 곧 왕검-성이 있었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해당하는 곳들을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패-수[浿-水]는 현재의 청천-강입니다. 앞서 살펴 태백-산이 있다고 하였던 웅어수-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서남쪽으로 가면 높이가 약간 낮아지는 천상-대와 늪재덕-봉이 있고 그 동남쪽에는 당골-산이 있으니 그 사이 가까운 곳에 패-수 곧 현재의 청천-강 동남쪽의 왕검-성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청천-강 곧 패-수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북쪽의 높은 산줄기 아래에 여러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줄기들을 차례로 넘어가다가 현재의 운산 동쪽에서 다시 높은 산줄기를 만나게 되니, 그 아래 사람이 오고가기 쉬운 원룡-산과 천제-봉 사이가 건너오는 일을 가로막던 장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 서쪽에는 다시 현재의 구룡-강이 있으니 이 물줄기가 곧 취-수이며, 그 동쪽으로 패-수에 이르는 땅에서 위만이 무리를 모아 머물렀습니다.



다시 취-수 곧 현재의 구룡-강 서쪽 구봉-산에서 도리-산, 운림-산 그리고 다시 어중-산에서 서쪽으로 현재의 대령-강 동쪽 창창-산과 서쪽 검은-산까지의 산줄기가, 물줄기를 사이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가로막으며 남쪽 땅을 두르고 있습니다. 그 남쪽 땅이 번한-현이 있던 곳이고, 패-수[沛-水]는 산줄기 사이사이의 새들보다 바깥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서남쪽으로 가서 바다로 들어가는 현재의 대령-강이며 문-현은 번한-현과 더불어 한의 계 서쪽 대령-강 가까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러한 장소들에 곧바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자료 하나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자료를 살펴 앞서의 지도에서 살펴본 곳들 가운데 특히 위만이 나온 새塞와 그의 무리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위만과 조선-왕 준 사이의 일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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