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4편 조선 (2-2) #17

준準과 만滿 (3/4)

by 잡동산이

MC-213/11부터 MC-212/03 다시 말해 MC-213/11[+5)에 조선-왕이 된 준이 위만에게 패배하기까지 20년 남짓한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위략, 먼저 진승과 항량이 일어나자 천하가 어지러웠[A-(3):②-⑤] 연, 제, 조 사람들이 걱정하고 괴로워하였다[A-(3):⑥-⑦]고 단하게 적었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단하지 않던 이 변화가 연, 제, 조 사람들이 준에게로 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기 진시황본기 2세 01년 07월 기사는 진승이 스스로 서서 초-왕이 되었다[K-8:⑤-]고 적었으며, 무신이 스스로 서서 조-왕이 되고 위구가 위-왕이 되고 전담이 제-왕이 되었다[K-8:⑧-⑭]고 적었습니다. 이어 패-공이 패-현에서 일어났고 항량이 회계-군에서 군사들을 일으켰다[K-8:⑮-⑱]고 적었습니다. 여기에는 연에 대한 구절이 없는데, 한서 고제기 진 이세 01년 07월 기사는 한광이 스스로 서서 연-왕이 되었다[U-2:⑨-⑪]고 하였습니다.


K-8 사기 진시황본기: (2세 01년) 07월 ① 지키는 군사[戍卒] 진승陳勝 등이 ② 등돌렸다. ③ 옛 형荊 땅을 ④ 장초張楚라고 하고 ⑤ (진)승勝이 ● 스스로 ⑥ 서서 ⑦ 초-왕[楚-王]이 되었다. ... ⑧ 무신武臣이 ● 스스로 ⑨ 서서 ⑩ 조-왕[趙-王]이 되었고 ⑪ 위구魏咎는 ⑫ 위-왕[魏-王]이 되었고 ⑬ 전담田儋이 ⑭ 제-왕[齊-王]이 되었다. ⑮ 패-공[沛-公]이 ⑯ 패(-현)[沛]에서 일어났고 ⑰ 항량項梁이 ⑱ 회계-군[會稽-郡]에서 군사들을 일으켰다. (二世元年)七月①戍卒陳勝等②反③故荊地④爲張楚⑤勝●自⑥立⑦爲楚王...⑧武臣●自⑨立⑩爲趙王⑪魏咎⑫爲魏王⑬田儋⑭爲齊王⑮沛公⑯起沛⑰項梁⑱擧兵會稽郡
한서 고제기: (진 01년 가을 07월) 이 달 ① 항량項梁이 ② 형의 아들 (항)우羽와 더불어 ③ 오吳에서 일어났다. ④ 전담田儋이 ⑤ 사촌 아우[從弟] (전)영榮, (전)횡橫과 더불어 ⑥ 제齊에서 일어났고 ● 스스로 ⑦ 서서 ⑧ 제-왕[齊-王]이 되었다. ⑨ 한광韓廣이 ● 스스로 ⑩ 서서 ⑪ 연-왕[燕-王]이 되었고 ⑫ 위구魏咎가 ● 스스로 ⑬ 서서 ⑭ 위-왕[魏-王]이 되었다. ⑮ 진섭陳涉(= 진승)의 장수 주장周章이 ⑯ 서쪽으로 가서 ⑰ 관關에 들어가 ⑱ 희에 이르렀다. ⑲ 진秦의 장수 장한章邯이 ⑳ 막고 그[之]를(= 주장을) 깨트렸다. (秦一年秋七月)是月①項梁②與兄子羽③起吳④田儋⑤與從弟榮橫⑥起齊●自⑦立⑧爲齊王⑨韓廣●自⑩立⑪爲燕王⑫魏咎●自⑬立⑭爲魏王⑮陳涉之將周章⑯西⑰入關⑱至戲⑲秦將章邯⑳距破之


이 상황을 위략은 천하가 어지러웠다고 적었니다. 그런데, 한서 고제기 진 2세 01년 07월 기사는 마지막에 진의 장수 장한이 진섭 곧 진승이 보내 관을 지나 희에 이르렀던 장수 주장을 깨트렸다[U-2:⑮-⑳]고 적었습니다. 사기 진시황본기 2세 02년 겨울 기사는 다른 구절들을 적기에 앞서 이 일에 대한 구절들[K-9:①-㉜]을 적 이 일의 시기가 2세 02년 겨울에 해당하는 MC-208/10[+3)보다 앞이라고 하였으니 곧 2세 01년 07월에 해당하는 MC-208/07니다.


K-9 사기 진시황본기: (2세) 02년 겨울 ① 진섭陳涉(= 진승)이 ② 보낸 바 ③ 주장周章 등 장수들이 ④ 서쪽으로 가서 ⑤ 희戱에 이르렀는데 ⑥ 군사들[兵]이 ⑦ 수십만(명)이었다. ⑧ 2세가 ● 크게 ⑨ 놀라 ⑩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⑪ 꾀하여 ● 말하기를 "⑫ 어찌 할까?"라고 하였다. ⑬ 소부少府 장한章邯이 ● 말하기를 "⑭ 도적들이 ● 끝내 ⑮ 이르렀고 ⑯ 무리가 ⑰ 강하다. ⑱ 지금 ⑲ 가까운 현縣(= 현의 군사들)을 뽑아도 ⑳ 이르지 않는다. ㉑ 여-산[酈-山]에는 ㉒ 무리[徒]가 ㉓ 많다. ● 청하니, ㉔ 그곳[之]에서 죄를 없애고 ㉕ (무리에게) 무기들[兵]을 주어 ㉖ 그들[之](= 도적들)을 치도록 하였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㉗ 2세가 ● 이어 널리 ㉘ 천하에서 죄를 없애고 ㉙ 장한에게 시키니 ● (장한이) ㉚ 장수가 되어 쳐서 주장의 군대를 깨트렸고 ● (주장의 군대가) ㉛ 달아나 ● 이윽고 ㉜ (주)장을 조양曹陽에서 죽였다. ㉝ 2세가 ㉞ 더하여 장사長史 사마흔司馬欣, 동예董翳를 보내니 (사마흔, 동예가) ㉟ 장한이 도적을 치는 것을 도와 ㊱ 진승을 성부城父에서 죽이고 ㊲ 항량을 정도定陶에서 깨트리고 ㊳ 위구魏咎를 임제臨濟에서 없앴다. ㊴ 초楚 땅에서 ㊵ 도적들의 이름있는 장수들이 ● 끝내 ㊶ 죽으니, ㊷ 장한이 ● 이어 ㊸ 북쪽으로 가서 ㊹ 하河를 건너 ㊺ 조-왕[趙-王] (조)헐歇 등을 거록鉅鹿에서 쳤다. 二年冬①陳涉②所遣③周章等將④西⑤至戱⑥兵⑦數十萬⑧二世●大⑨驚⑩與群臣⑪謀●曰⑫奈何⑬少府章邯●曰⑭盜●已⑮至⑯衆⑰彊⑱今⑲發近縣⑳不及矣㉑酈山㉒徒㉓多●請㉔赦之㉕授兵㉖以擊之㉗二世●乃大㉘赦天下㉙使章邯●㉚將擊破周章軍●㉛而走●遂㉜殺章曹陽㉝二世㉞益遣長史司馬欣董翳㉟佐章邯擊盜㊱殺陳勝城父㊲破項梁定陶㊳滅魏咎臨濟㊴楚地㊵盜名將●已㊶死㊷章邯●乃㊸北㊹渡河㊺擊趙王歇等於鉅鹿


그런데 이러한 구절들이 적은 바, 장한이 주장을 깨트리기까지 있었던 일들 가운데에는 1가지 중요한 일이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듯이 적혀 있습니다. 곧 장한은 여-산에 있는 무리를 군사들로 삼기 위하여 널리 여-산에서 죄를 없애었으면 하였는데[K-9;⑬-㉖] 이 말을 듣고 2세가 여-산이 아니라 리, 천하에서 죄를 없앴다[K-9:㉗-㉘]고 적은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구절이 중요한 까닭은, 죄를 없앤 일로 말미암아 여-산에서 얻어낸 군사들로 장한이 진승, 항량, 위구를 죽이고 깨트리고 없앨 수는 있었러기 위해 죄를 없앤 곳 여-산 만이 아닌 천하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기 흉노열전이 적은 바와 같이 죄를 짓고 나왔던 이들 - 북쪽 변방 사람들 운데 특히 흉노에게서 변방을 지키던 군사들이 떠나 돌아[C-4:①-⑥] 수 있게 되었습니다.


C-4 사기 흉노열전: ① 여러 (곳에서) ② 진秦이 ③ 떠나온 사람들[適](=죄지어 멀리 보내진 사람들[謫])을 옮겨 채웠던 바 ④ 변방을 지키던 이들[戍邊者]이 ⑤ 모두 ⑥ 돌아갔다[復去]. ①諸②秦③所徙適④戍邊者⑤皆⑥復去


그리하여 MC-208/07 임조에서부터 요동까지 10,000리에 걸쳐 북쪽 변방 사람들을 막는 긴 성이 있던 여러 곳들을 통해 흉노를 포함한 여러 북쪽 변방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으며, 긴 성에 직접 맞닿은 연, 조 사람들이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들이 남쪽으로 움직이자 연, 조 모두와 직접 맞닿은 제 사람들이 차례로 걱정하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작은 차이가 이러한 상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조선-왕 준이 왕 노릇하기 시작한 MC-213/11[+5)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작되었습니다. 위략은 이 상황을 연, 제, 조 사람들이 걱정하고 괴로워하였다[A-(3):⑥-⑦]고 적고, 이어 사람들이 점점 떠나 준에게 왔다[A-(3):⑧]고 그 결과를 적었습니다.


이 상황을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진-한의 사람들이 옛날 명령받은 곳을 떠나, 진이 부리던 일에서 물러나 - 조선으로 - 왔다[D-4:④-⑥]고 적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중-원 국들의 사람들이 진의 어지러움을 괴로워하여 동쪽으로 - 조선으로 - 갔다[X:②-④]고 적었습니다. 리하고서 이어 다시 조선에서 마한으로 간 일을 적은 구절들이 나오는데, 이 구절들은 2장에서 위만의 손자 우거가 왕 노릇을 하며 다스릴 때에 일어난 조선-한 전쟁에 앞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지요.


D-4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진-한[辰-韓]의) 나이많은 사람들[耆老]은 ② 여러 대를 전해왔는데 ● (그 사람들이) 스스로 ③ 이야기하여 ● (말하기를) "(우리는) ④ 옛날[古] (명령받은 곳을) 떠나왔던[亡] 사람들이었다. ⑤ 진秦의(=진이) 부리는 일[役]에서 물러나[避] ⑥ (조선朝鮮에) 왔고[來] ⑦ (조선에서) 한-국[韓-國]으로 떠나왔는데[適] ⑧ 마-한[馬-韓]이 ⑨ 그(=마-한의) 동쪽 계界의 땅을 가르고 ⑩ 그것[之](= 동쪽 땅)을 (우리에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①其耆老②傳世●自③言●④古之亡人⑤避秦役⑥來⑦適韓國⑧馬韓⑨割其東界地⑩與之
X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봄 02월) ① 이 때[此](=혁거세거서간 때)보다 앞서 ② 중(-원)[中] 국들[國]의 사람들이 ③ 진秦의 어지러움[亂]을 괴로워하여, ④ 동쪽으로 갔다(= 조선으로 갔다). ● (조선에서) ⑤ 왔던 이들이 ⑥ 무리지어 ● 많이 ⑦ 마-한에 머물렀는데, ● (뒤에) ⑧ 동쪽으로 가서 ⑨ 진 사람들[辰], 한 사람들[韓]과 더불어 ⑩ 섞여 머물렀다. (赫居世居西干三十八年春二月)①前此②中國之人③苦秦亂④東●⑤來者⑥衆●多⑦處馬韓●⑧東⑨與辰韓⑩雜居


이어 위략은, 그들 - 곧 떠나 준에게 온 연, 제, 조 사람들을 준이 서쪽 땅에 두었다[A-(3):⑨-⑩]고 적었습니다. 이 땅이 바로, 옛날 조선-왕 부가 다스리던 땅 가운데 부가 진을 따르고 조선-후가 되면서 진이 차지하였던 요들[徼], 옛날 연이 관리들을 두어 쌓게 하였던 장들[障], 새들[塞]이 있었던 땅입니다.


조선은 이 땅의 동쪽 패-수[浿-水] 건너 왕검-성에 군사들을 두고, 이 땅의 서쪽 패-수[沛-水]가 있는 요동-군 번한-현이 군사들을 보내 남쪽의 조선을 노리면 그 뒤를 쳐서 조선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이른바 위魏에 군사들의 위세를 보여[威] 조趙를 돕는다[求]는 전략에 해당하는 대비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번한-현을 나와 동쪽으로 가서 조선-왕 준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니, 준은 이 땅 가운데 조선에 가까운 동쪽 일부, 패-수[浿-水] 건너 서쪽에 있던 땅에서부터 이 사람들을 두기 시작하였습니다. 곧 스스로 일컬은 조선-왕이라는 호에 해당하는 장소를 다스리고자 였으며, 이 일을 위략이 적었던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그 뒤로 흉노와 한은 100해 가까운 시간 동안 대립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그 일은 단석괴가 이끄는 선비가 일어난 뒤로는 다시 선비/오환과 한漢/위魏가 대립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하는 사이, 변방의 어지러움 사이에서 걱정하고 괴로워하던 변방 사람들은 멀리 떠났다가 상황이 바뀌면 돌아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이어져 준이 스스로 일컬었던 호인 조선-왕에 해당하는 다스림을 준이 실제로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볼 것인데, 상황은 준이 조선-왕의 호를 잃도록 만들기도 하였으니 바로 그리하였던 위만이 준에게 오도록 든 것 또한 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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