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편 조선 (3) #8
조선과 그 주변 (2/5)
낙랑樂浪이라는 이름은 아사달을 떠났던 조선 사람들이 움직이다가 마침내 자리하였던 장소, 한漢의 현들[縣]이 두어지는 장소 가까이 본래 머물던 여러 무리들을 아울러 이름한 것이며 뒤에 그 현들을 다스리는 군의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낙랑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이름의 글자들 가운데 뒤의 浪이라는 글자를 통해 대략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浪의 왼쪽에 있는 점 3개는 삼수변이라고 하는데, 본래 수水라는 글자를 다른 글자의 곁에 적으면서 모양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가 곁에 붙는 본래의 글자가 땅 이름 또는 무리 이름인 경우, 그것은 그 땅 또는 무리가 있는 곳에 있는 물줄기로 말미암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潘의 경우는 진-번의 서쪽 땅 번番 사람들이 머물던 땅에 있던 물줄기로 말미암은 땅 이름입니다. 예濊의 경우는 무리가 새로 머물던 땅에 있던 물줄기로 말미암아 달리 적은 - 본래는 예薉 또는 예穢로 적던 - 무리 이름입니다.
2가지 경우를 통해, 浪에서 왼쪽의 삼수변을 제외한 양良이 땅 이름 또는 무리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이 낙樂이라는 글자 뒤에 쓰인 것은 2가지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하나는 진-번의 경우처럼 다른 무리 낙樂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둔臨屯의 경우처럼 뒤의 글자가 이야기하는 장소와의 관계 - 둔屯을 마주한 곳[臨] - 를 뜻하도록 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라도, 모두 가까이에 양良이라는 이름의 땅 또는 무리가 있고 그것이 낙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것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양良이라는 이름의 무리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그러함을 알려주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앞서 여러 차례 살펴보았던 주서 왕회패편이 그것입니다.
주서 왕회해편은 지식 곧 식신에 이어 식신을 따르는 예 사람들[1장 3편 M-3:③-⑪]을 그들이 주에 준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적었고, 이어 바로 양이良夷와 양주揚州[1장 3편 M-3:⑫-㉓]를 그들이 주에 준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적었습니다. 이어 해 곧 조선에 이어 조선을 따르는 발 사람들, 수 사람들[1장 3편 M-3:㉔-㉜]을 그들이 주에 준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적었고, 마지막으로 청구[1장 3편 M-3:㉝-㉞]를 그들이 주에 준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적었습니다.
1장 3편 M-3 주서 왕회해편: ① (대의 동쪽 땅에서) 서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② 곧바로 북쪽 땅에서(부터 차례로) 있었다. ③ 직신稷愼(= 직신 사람들이 준 것)은 ④ 대주大麈였다(= 큰 사슴이었다). ⑤ 예穢 사람들(= 예 사람들이 준 것)은 ⑥ 전아前兒였다. ⑦ 전아는 ⑧ 미후獮猴(= 원숭이)처럼 ⑨ 서서 움직였으며, ⑩ (내는) 소리[聲]가 ⑪ 어린 아이[小兒](의 소리)와 비슷하였다. ⑫ 양이良夷는(= 양이 사람들이 준 것은) ⑬ 재자在子였다. ⑭ 재자는 ⑮ 비단같은 몸, 사람같은 머리였다(= 머리를 가졌다). ⑯ (재자의) 배를 기름칠하고 ⑰ 그것(= 배)에서 콩잎[藿]을 구우니 ● 곧 (재자가) ⑱ 울며[鳴] ● 말하기를 ⑲ 재자라고 하였다. ⑳ 양주揚州는(= 양주 사람들이 준 것은) ㉑ 우禺였다. ㉒ 우는 ㉓ 물고기의 이름이었다. ㉔ 해解(= 해 사람들이 준 것은) ㉕ 유관隃冠이었다. ㉖ 발發 사람들(= 발 사람들이 준 것)은 ㉗ 포麃였다(= 큰 사슴이었다). ㉘ 포라는 것은 ㉙ 녹鹿(= 사슴)처럼 ㉚ 빨리 달렸다. ㉛ 수兪 사람들(= 수 사람들이 준 것)은 ㉜ 수마雖馬였다. ㉝ 청구靑丘는(= 청구 사람들이 준 것은) ㉞ 호狐(=여우)인데 9(개) 꼬리들[尾]이었다(= 꼬리들을 가졌다). ①西面者②正北方③稷愼④大麈⑤穢人⑥前兒⑦前兒⑧若獮猴⑨立行⑩聲⑪似小兒⑫良夷⑬在子⑭在子⑮幣身人首⑯脂其腹⑰炙之藿●則⑱鳴●曰⑲在子⑳揚州㉑禺㉒禺㉓魚名㉔解㉕隃冠㉖發人㉗麃㉘麃者㉙若鹿㉚迅走㉛兪人㉜雖馬㉝靑丘㉞狐九尾
이 가운데 양이良夷란 이름이 바로 양良이라는 곳에 있는 또는 양이라는 이름의 동쪽 변방 사람들[夷]을 적은 것입니다. 곧 이 무리가 바로 낙랑으로 이어진 무리입니다. 그 이름은 예 사람들 다음에 나오고 해 곧 조선보다는 앞에 나오니, 예 사람들이 식신을 떠나기에 앞서, 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선보다는 서쪽에 있던 무리입니다. 그런데 예 사람들이 아사달 서북쪽에 있었고, 아사달 서남쪽은 바다였으니 이 사람들은 본래 현재의 요동반도 가운데 서쪽에 있었습니다.
뒤에 발 사람들이 제와 오고갈 때에 이 사람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으니, 보다 앞서 B.C. 10-7C 사이에 그들보다 더욱 남쪽 곧 현재의 한반도 북쪽 땅으로 움직여 머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름은 본래 있던 무리의 이름을 따랐고, 그리하여 한반도 북부에 낙랑이라는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뒤에 조선이 패-수를 건너서 그 남쪽 땅에 해당하는 이곳에 자리잡아 머물렀던 것입니다.
조선-한 전쟁보다 앞서 낙랑이라는 이름을 적은 자료 가운데 후한서 순리열전이 있습니다. 후한서 순리열전은 왕경이라는 사람의 8세조 중 곧 왕중이 본래 낭야-군 사람이었는데[C:①-③], 제북-왕 유흥거가 등돌린 뒤에 그 군대를 맡기려 하자[C:⑫-⑭] 왕중이 나쁜 일이 이를까 두려워하여 바다에 배를 띄우고 동쪽으로 가서 낙랑에 이르러 그 산들 가운데로 달아나[C:⑮-⑳] 가문을 이루었다[C:㉑]고 적었습니다.
C 후한서 순리열전: ① (왕경王景의 8세조世祖) (왕)중仲은 ② 본래 ③ 낭야(-군)[琅邪) 불기(-현)[不其] 사람이었다. ④ 도(-가)[道]의 재주[術]를 좋아하여 ⑤ 천문天文에 밝았다. ⑥ 여러 여(-씨)[呂]들이 ⑦ 어지러움을 지어내니, ⑧ 제齊 애-왕[哀-王] (유)양襄이 ⑨ 꾀하여 군사들을 뽑고 ⑩ 여러 차례 ⑪ (왕)중에게 물었다. ● 이윽고 ⑫ 제북-왕[濟北-王] (유)흥거興居가 ⑬ 등돌리고 ● 바라기를, ⑭ 군대[兵師]를 (왕)중에게 맡겼으면, 하였다. ⑮ (왕)중이 ● 두려워하기를, ⑯ 나쁜 일[禍]이 ⑰ 이르려는가[及], 라고 하고 ● 이어 ⑱ 바다에 배를 띄우고[浮] ⑲ 동쪽으로 가서 ⑳ 낙랑樂浪의 산들[山] 가운데로 달아았다. ● 이어 ㉑ (낙랑에) 가문을 이루었다[家]. ①仲②本③琅邪不其人④好道術⑤明天文⑥諸呂⑦作亂⑧齊哀王襄⑨謀發兵⑩而數⑪問於仲●及⑫濟北王興居⑬反●欲⑭委兵師仲⑮仲●懼⑯禍⑰及●乃⑱浮海⑲東⑳奔樂浪山中●因而㉑家焉
왕중을 달아나게 만든 일 - 제북-왕이 등돌린 일은 사기 효문본기 03년 06년 27일 기사[D-1:①-⑥]가 적었고, 이어 사기 효문본기 03년 08월 기사는 제북의 군대를 패배시키고 제북-왕을 잡은 일[D-2:①-②]을 적었습니다. 곧 제북-왕의 일이 시작된 시기는 MC-176/06에 시작되었는데, 이 때 이미 바다 건너에 낙랑이라는 무리 또는 땅 이름이 있었습니다.
D-1 사기 효문본기: (03년 06월 27일[辛卯]) ① 제북-왕[濟北-王] (유)흥거興居가 ● 듣기를, ② 문-제[帝]가 ③ 대代로 갔고 ● 바라기를, ④ 가서 북쪽 변방 사람들[胡](= 흉노)를 쳤으면, 한다, 고 하였다. ● 이어 ⑤ 등돌리고 군사들을 뽑았으며 ● 바라기를, ⑥ 형양滎陽을 덮쳤으면, 하였다. ⑦ 이 때에 ⑧ 조를 내려[詔] ⑨ 승상丞相의 군사들을 없앴고, ⑩ 극포-후[棘蒲-侯] 진무를 보내니 ● (진무가) ⑪ 대-장군이 되어 ⑫ 100,000(명)을 거느렸고 ● (100,000명이) ⑬ 가서 그[之]를(= 제북-왕을) 쳤고, ⑭ 기-후[祁-侯] 증하繒賀가 ⑮ 장군이 되어 ⑯ 형양에 군대를 두었다. (三年六月辛卯)①濟北王興居●聞②帝③之代●欲④往擊胡乃⑤反發兵●欲⑥襲滎陽⑦於是⑧詔⑨罷丞相兵⑩遣棘蒲侯陳武●⑪爲大將軍⑫將十萬●⑬往擊之⑭祁侯賀⑮爲將軍⑯軍滎陽
D-2 사기 효문본기: (03년) 08월 ① 제북濟北의 군대를 깨트리고 ② 그(= 제북-)왕을 잡았다. ③ 제북의 여러 관리들, 사람들이면서 왕과 더불어 등돌린 이들의 죄를 없앴다. (三年)八月①破濟北軍②虜其王③赦濟北諸吏民與王反者.
이 시기는 앞서 위만이 왕 노릇하기 시작한 뒤로 20해가 지나지 않은 시기인데, 낙랑은 이미 한漢에서 나쁜 일이 이를까 두려워하던 사람이 먼저 달아나고자 하는 땅이 되어 있었습니다. 곧 그곳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에게 한漢에서 이 사람을 찾아 보내도록 하여도 그러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장소로 여겨졌으니, 그 우두머리 곧 위만은 이미 보다 앞서 요동-태수와 더불어 그리 되기를 다짐하였던 바깥 '신하[臣]'가 아니라고 여겨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기 율서가 적은 바, 문-제가 자리에 오르던[E:①] 곧 문-제가 다스리기 시작한 MC-179/10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곧 왕정의 일은, 이미 조선을 못마땅하게 여겨 힘이 갖추어지는 대로 문-제가 치기를 바라던 그 신하들이 이미 그리하도록 이야기한[E:②-㉖] 뒤에 일어났으니, 이러한 조선과 한의 상황이 겉으로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E 사기 율서: ① (시간이) 지나 문-제[孝文-帝]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에 이르러 ② 장군 진무陳武 등이 ③ 헤아리고 ● 말하기를 "④ 남-월[南-越], 조선朝鮮은 ⑤ 진秦을 온전히 하였던[全] 때부터 ⑥ 와서 따르고[內屬] 신하[臣子]가 되었다. ● 뒤에 다시 ⑦ 군사들을 모아 ⑧ 험한 곳을 막고 ⑨ 움직임을 고르며 ⑩ (신하답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⑪ 고-제[高-祖] 때에 ⑫ 천하天下가 ● 새로 ⑬ 바로잡히고 ⑭ 사람들이 ● 조금 ⑮ 안정되었지만 ⑯ 아직 다시 군사들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⑰ 지금 ⑱ 네[陛下](=문-제)가 ● 어질게 ⑲ 은혜로움을 내려 ⑳ 사람들을 다독였으며, ● 은혜롭게 ㉑ 베풀어 ㉒ 바다 안을 더하였다. ● 마땅히 ㉓ 장사들[士], 사람들[民]이 기뻐하기에 이르도록 하고, ㉔ (그들을) 써서(= 그들에게 시켜) ● (그들이) ㉕ 거스르는 무리를(=남-월, 조선을) 쳐서 ㉖ 한번에[一] 땅을 봉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①歷至孝文即位②將軍陳武等③議●曰④南越朝鮮⑤自全秦時⑥內屬爲臣子●後且⑦擁兵⑧阻阸⑨選蠕⑩觀望⑪高祖時⑫天下●新⑬定⑭人民●小⑮安⑯未可復興兵⑰今⑱陛下●仁⑲惠⑳撫百姓●恩㉑澤㉒加海內●宜㉓及士民樂㉔用●㉕征討逆黨㉖以一封疆
이 시기는 위만 또는 그 아들이 위만에게 이어받아 다스리던 시기인데, 그 또한 한에서 일어난 변화를 모를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다스리던 조선 또한 한을 경계하기 시작하였고, 조선 또한 앞서 다짐한 바를 충실하게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움직임은, 위만의 손자 우거가 자리에 오르며 더욱 거침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사기 조선열전이 적은 바, 우거가 꾀고 그리하여 한에서 명령받은 곳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A-(3):①-④] 상황이 분명하게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우거의 움직임이 조선-한 전쟁을 불러온 듯 보입니만, 사기 율서가 적었듯이 한은 이미 조선과의 싸움을 바라고 있었기에 우거의 움직임은 그러한 싸움을 피하지 못하고 앞당긴 것에 불과합니다.
어쨌든 요동-태수가 위만과 꾀하여 만들어낸 잠시 동안의 안정은 앞서의 기록들이 보여주듯이 채 1세대 30해가 지나지 않아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뒤 잠시 물밑으로 가라앉은 듯했던 흔들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강해져서는 조선과 그 주변 무리 사이의 움직임들로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움직임을 보였던 무리가 바로 진-번[眞-番]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