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편 조선 (3) #9

조선과 그 주변 (3/5)

by 잡동산이

진-번[眞-番]이라는 무리 이름은 앞서 조선이 낙랑이라는 이름의 무리 가운데 머물렀을 때 한漢이 그들을 아울러 조선이라고 하였듯이, 그들이 머물던 곳 가까이 있던 여러 무리들을 아울러 이른 이름입니디. 따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여러 무리들 가운데 그들이 앞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진-번은 앞서 연이 조선을 패배시킨 뒤에 조선이 패-수의 남쪽으로 움직일 때에 모습을 보였고, 그 뒤로는 압록-수는 남쪽과 북쪽 땅이자 연의 동쪽에 조선과 더불어 그들을 마주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었던 사람이 바로 위만니다. 만은 조선-왕 준을 패배시킨 후에 한漢의 요동-태수와 손잡고는 그 군사들을 등에 업고서 한 값진 물건들을 얻어 진-번에게 주 곁의 작은 읍들 곧 예를 복시키는 일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위만의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로 잠시나마 이루어진 요동-군과, 요동-군 동쪽의 조선 그리고 진-번 사이의 어울림은, 진-번과 그 곁의 무리들에게는 새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훨씬 앞서 제, 연과의 충돌로 말미암아 멀리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요서를 거쳐 조선에 이르렀었고, 그 뒤로 요동에 이른 뒤에도 조선을 패배시킨 연, 위협하는 진과 잇따라 맞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만 그리고 그 후계자들과 한의 사이가 벌어지며 점차 이러한 어울림은 계속되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해졌고, 그리하여 진-번과 곁의 다른 무리는 위만이 그러하였듯 스스로 한에 사람을 보내 손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위만이 한의 군사들과 물건들을 써서 예, 진-번을 따르도록 하였듯이 그들을 써서 한을 상대하려던 우거는 그러한 움직임을 막습니다[A-(3):⑤-⑩]. 그리고는 준이 그러하였듯 한을 떠난 사람들을 끌어들여[A-(3):①-④] 무리를 키웠습니다.




이리하여 우거가 한과의 어울림을 그만두려 하는 모습 보이자, 다스림을 맡은 여러 신하들의 의견들이 나뉘었습니다. 위략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계[歷-谿]라는 물줄기가 있던 땅의 경卿로 알려져 있던 당시의 조선-상[朝鮮-相]이 우거를 말렸지만 우거가 그 말을 쓰지 - 들어주지 - 않았다[F-(1):③-⑤]고 적었습니다.


F-(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처음 ② 우거右渠가 (한漢에) 깨트려지지 않았을 때 ③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④ 우거를 말리도록 하여[諫] ⑤ (우거에게) 쓰이지 않았다[用].> <魏略曰①初②右渠未破時③朝鮮相歷谿卿④以諫右渠⑤不用>


이어 위략은 먼저 역-계-경이 동쪽의 진-에 있었다[F-(2):①]고 적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살펴볼 구석들이 있습니다. 해당하는 東之辰國을 세간에서는 동쪽으로 진-국에 갔다 달리 해석하는데, 그러한 해석에서 갔던 장소는 진-국을 동쪽으로 두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은 조선의 동쪽 - 동쪽 땅 - 이 모두 예의 땅이었다[G:②-③]고 적었며 진-국의 땅이라고 적지 않았습니다.


F-(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동쪽의 진-국[辰-國]에 있었다. ② (이) 때 ③ 사람들이면서 (조선-상을) 따라 머물던 곳[居]을 나섰던 이들은 ④ 2,000호戶 남짓이었다.> <(魏略曰)①東之辰國②時③民隨出居者④二千餘戶>
G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 ① 지금 ② (옛) 조선의 동쪽(= 동쪽 땅)은 ● 모두 ③ 그(= 예의) 땅이었다. ①今②朝鮮之東●皆③其地也


그렇다면 진-국은 어디였고 그곳을 동쪽으로 두는 곳은 어딜까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진-한이라는 들이 옛 진-국이었다[H-1:①-②]라고 적었으니 진-국은 곧 진-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곳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또한 진-한이 마-한의 동쪽에 있다[H-2:①-②]라고 적었으니 앞서 東之辰國[F-(2):①]이라는 구절은 마-한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며, 그 앞에는 역-계-경이 우거를 떠나 마-한으로 옮겨온 일이 누락된 것입니다.


H-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진-한[辰-韓]이라는 이들은 ② 옛[古] 진-국[辰-國]이었다.①辰韓者②古之辰國也
H-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진-한[辰-韓]은 ②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①辰韓②在馬韓之東


이러한 점은 아래 구절에 더욱 분명하게 보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진-한의 나이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을 떠나 한-국으로 왔고 그 뒤에 마-한이 동쪽 계界의 땅을 갈라 머무르도록 하였다[H-3:⑤-⑩], 고 하였다고 적었습니다. 진에서 한-반도로 넘어오는 -반도 북쪽 땅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진을 떠난 사람들은 먼저 선으로, 뒤에 다시 -한으로, 다시 동쪽으로 -국 가까이에 던 것입니다.


H-3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진-한[辰-韓]의) 나이많은 사람들[耆老]은 ② 여러 대를 전해왔는데 ● (그 사람들이) 스스로 ③ 이야기하여 ● (말하기를) "(우리는) ④ 옛날[古] (명령받은 곳을) 떠나왔던[亡] 사람들이었다. ⑤ 진秦의(=진이) 부리는 일[役]에서 물러나[避] ⑥ (조선朝鮮에) 왔고[來] ⑦ (조선에서) 한-국[韓-國]으로 떠나왔는데[適] ⑧ 마-한[馬-韓]이 ⑨ 그(=마-한의) 동쪽 계界의 땅을 가르고 ⑩ 그것[之](= 동쪽 땅)을 (우리에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①其耆老②傳世●自③言●④古之亡人⑤避秦役⑥來⑦適韓國⑧馬韓⑨割其東界地⑩與之


이 가운데 조선에서 마-한까지의 움직임에 뒤이어 진-국 가까이에 나아가 머물던 일을 적은 것이 앞서 위략의 구절들입니다. 그리하였기에 앞서 해석하기를 동쪽의 진-국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서의 기록은 옛 진-한의 사람들 가운데 진에 의해 없어진 연, 제, 조를 떠나 조선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것인데, 진-번에서 이어진 진-국 다시 말해 신라의 일을 적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 38년 02월 기사가 같은 옛 움직임[I:②-⑩]을 적었습니다. 곧 앞서 진-번을 떠난 사람들이 저 진-국을 이루었고 그 가까이 조선 사람들이 찾아와 진-한이 이루졌습니다.


I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봄 02월) ① 이 때[此](=혁거세거서간 때)보다 앞서 ② 중(-원)[中] 국들[國]의 사람들이 ③ 진秦의 어지러움[亂]을 괴로워하여, ④ 동쪽으로 갔다(= 조선으로 갔다). ● (조선에서) ⑤ 왔던 이들이 ⑥ 무리지어 ● 많이 ⑦ 마-한에 머물렀는데, ● (뒤에) ⑧ 동쪽으로 가서 ⑨ 진 사람들[辰], 한 사람들[韓]과 더불어 ⑩ 섞여 머물렀다. (赫居世居西干三十八年春二月)①前此②中國之人③苦秦亂④東●⑤來者⑥衆●多⑦處馬韓●⑧東⑨與辰韓⑩雜居




요컨대, 진-번과 곁의 무리가 한과 어울리려는 것을 우거가 가로막으니, 진-번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진 사람들은 우거로 말미암아 분명하게 예상되는 한과 조선의 충돌을 피하여 남쪽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이윽고 진-국 이루었고 뒤에 그 땅은 마-한의 동쪽 계와 맞닿니다.


그 뒤 조선-상이던 역-계-경이 진-번과 마찬가지 뜻을 가지고 우거를 막았지만 우거에게 쓰이지 않자, 조선을 떠나 남쪽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마-한에 이르니 마-한이 그들을 다시 동쪽의 계에 있는 땅에 두었고, 그 가까이 보다 앞서 진-번을 떠난 사람들이 이루어낸 진-국 물렀습니다.


이 때 이른 무리에 대해 위략은 2,000호 남짓이 역-계-경을 따라 조선을 떠났다[F-(2):②-④]고 적었습니다. 러한 사람들의 수는 작은 1개 현을 채울 수 있는 이었으니, 이 사람들이 있던 곳 - 조선과 앞서 진-번의 우두머리들이 떠던 곳에는 비어버린 곳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가운데 조선이 있던 곳에는 사람이 적었기에 뒤에 양복이 바다를 건너왔을 때에도, 양복이 그 군사들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을 꺼려 순체와 군사들을 더하고자 움직일 때에도 따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검-성의 싸움에도 마찬가지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역-계-경이 떠난 것은 도대체 언제 일어난 일일까요? 본래 이번 글에서 그것을 다루어야 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 글에서 이 시기를 알려주는 자료를 살펴보고 이어 조선의 다른 주변 무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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