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에서부터는 한韓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보겠습니다. 앞서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통해 그리하려 하니, 방식을 달리하는 이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하지요.
이제까지는 무리의 이야기, 핵심 문자 자료들을 통해 큰 흐름을 먼저 살피고 다른 자료와의 결합을 통해 그것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앞의 2장 1편은 사기 조선열전이라는 책冊의 구절들을 핵심 문자 자료들로 삼아서 먼저 위만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기에 일어난 일들의 큰 흐름을 살피고서, 다시 다른 자료들을 통해 조선과 그 변방 무리들의 이야기까지를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편의 한에 대해서는 같은 방식을 통해 큰 흐름을 먼저 살피기가 어려우니, 그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만에게 나라를 잃고 내려온 준과 그 후손들이 그 뒤 한韓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시기의 일들은, 바깥과 안의 다른 무리들 모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들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바깥 무리들과 오고감을 꺼렸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위만에게 패배하고 달아난 준이 스스로 호를 말하기를 한-왕이라고 하였다[A-1-(1):①-②]고 적었는데,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은 위략을 인용하여 국國에 남아 있던 이들이 성을 한-씨라고 하였지만[B:①-④] 준은 조선과 더불어 서로 오고가지 않았다[B:⑤]고 적었습니다.
A-1-(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준이) 스스로 ① 호號를 ● (말하기를) ② 한-왕[韓-王]이라고 하였다. 自①號●②韓王
B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그(= 준의) 아들들[子], 그리고 피붙이들[親]이면서 국國에 남아 있는 이들은 ● 이어 ② (준을) 따라하여[冒] ③ 성姓을 ● (말하기를) ④ 한-씨[韓-氏]라고 하였으나, ● (준은) ⑤ 조선朝鮮과 더불어 서로 오고가지[往來] 않았다.> (自號韓王)<魏略曰①其子及親留在國者●因②冒③姓●④韓氏●⑤不與朝鮮相往來>
앞서 사기 조선열전이 상相 한음[C:②]이라고 적은 사람을 사기 건원이래후자연표가 조선-상 한음[D:①]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 준이 떠난 뒤에 한-씨[韓-氏]가 조선을 따랐음을 알 수 있으니, 남아 한-씨라고 하였던 사람들이 있던 국國은 조선입니다. 그러니 뒤에 조선과 오고가지 않았던 일의 주어는 조선에 남아있지 않았던 준이며, 그가 조선과 오고감을 끊었기에 한韓의 일이 조선과 그 땅을 포함한 낙랑-군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C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조선-상[朝鮮-相] 노인路人, ② 상相 한음韓陰, ③ 이계-상[尼谿-相] 참參, ④ 장군將軍 왕겹王唊이 ● 서로 더불어 ⑤ 꾀하였다. (元封二年秋)①朝鮮相路人②相韓陰③尼谿相參④將軍王唊●相與⑤謀
D 사기 건원이래후자연표: 03년 04월 ① (적저-)후侯 조선-상[朝鮮-相] 한음韓陰의 01년[元年]이었다. 三年四月①侯朝鮮相韓陰元年
그러나 뒤에 마침내 위魏 때에 오고가게 되고서도 그 일은 여전히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준의 후손이 미처 스스로의 옛 일을 정리하지 않았을 때에 백제에 의해 더이상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준과 그 후손이 한韓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시기의 일들이 바깥과 안의 다른 무리들 모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이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7년 04월 기사는 마-한이 없어졌다[E-1:①-②]고 적었습니다. 멸滅이라는 글자에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되었다는 뜻이 있음을, 앞서 같은 뜻을 적은 다른 경우들을 통해 살핀 바 있습니다. 같은 일을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한-왕이라는 호가 끊어져 없어졌다[A-1-(2):①-②] - 한-왕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다 - 고 적었습니다.
E-1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7년 여름 04월) ① 마-한[馬-韓]이 ● 이윽고 ② 없어졌다[滅]. (溫祚王二十七年夏四月)①馬韓●遂②滅
A-1-(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 호를 한-왕이라고 한 준의) 뒤에 ● (한-왕이라는 호는) ② 끊어지고[絶] 없어졌지만[絶滅], ③ 지금 ④ 한韓 사람들[人] 가운데 ● 여전히 ⑤ 그를(= 준을) 받들어 제사지내는 이가 있다. ①其後●絶滅③今④韓人●猶⑤有奉其祭祀者
그리고 이어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지금 곧 위 때까지도 준을 제사지내는 이가 있다[A-1-(2):③-⑤]고 적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준이 위만에게 남쪽으로 와서 한-왕이라고 하기까지의 일을 전하였던 것이니, 앞서 알려지지 않아 사기 조선열전이 적지 않았던 이 일들을 위략이 얻어 적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략은 준보다 뒤의 한-왕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지 않았으니, 한-왕이라는 호를 없앤 백제로 말미암아 전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제가 그리한 이유는 당시의 요동-군의 공손-씨 세력 그리로 뒤이어 들어선 낙랑-군/대방-군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 관계는 세간에서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달라 뒤에 백제에 대한 글에서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제가 한-왕의 일들이 전하여지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34년 20월 기사는 마-한의 옛 장수였다가 등돌린 주근을 왕이 몸소 군사들을 일으켜 쳤으며[E-2:①-⑥], 주근이 스스로 죽고 나서는 그 주검을 베고 그 아내와 아들들까지 죽였다[E-2:⑦-⑩]고 적었으니, 옛 마-한 곧 한-왕의 장수가 등돌리는 일을 만났던 백제로서는 한-왕에 대한 일을 전하려는 일도 가볍게 넘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2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34년 겨울 10월 ① 마-한[馬-韓]의 옛 장수[舊將] 주근周勤이 ② 우-곡-성[牛-谷-城]에 기대어 ③ 등돌렸다[叛]. ④ 왕이 ● 몸소 ⑤ 군사 5,000(명)을 거느렸고 ● (군사들이) ⑥ 그[之]를(= 주근을) 쳤다. ⑦ 주근周勤이 ● 스스로 ⑧ 중요한 곳[腰]을 매었다(= 매어 죽었다). ● (왕이) ⑨ 그(= 주근의) 주검[尸]을 베고 ● 아울러 ⑩ 그(= 주근의) 아내, 아들(들)을 죽였다. (溫祚王)三十四年冬十月①馬韓舊將周勤②據牛谷城③叛④王●躬⑤帥兵五千●⑥討之⑦周勤●自⑧經腰●⑨斬其尸●幷⑧誅其妻子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한-왕이 다스리던 일들에 대해서는 바깥에서 또는 안에서 모아 적은 자료가 없고, 그러한 자료를 핵심 문자 자료들로 삼아서 큰 흐름을 잡은 뒤에 보다 자세히 살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한에 대해서는, 준과 후손들이 다스리던 시기, 주변 무리들의 일을 적은 자료들에 남아있는 한의 모습들을 더하여 간접적으로 살피겠습니다. 그러기에 앞서 준과 후손들이 만났던 주변 무리들을 정리해보지요.
첫번째 무리는, 진-국[辰-國]을 이루었던 사람들입니다. 조선을 위만과 그 후손이 다스릴 때에 한漢과 오고감을 막는 것에 반발하여 그 뒤 조선 사람들이 이르기에 앞서 남쪽으로 왔던 진-번[眞-番]의 우두머리들, 곧 진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무리는, 조선-상 노릇하던 역-계-경을 따라 우거를 떠나 남쪽으로 와서 다시 동쪽의 진-국으로 갔던 조선 사람들과 낙랑 사람들입니다. 이 가운데 낙랑 사람들은 뒤에 낙랑-군이라고 하였던 땅에 본래 머무르던 사람들로 보다 앞서 주周 때에 양이良夷라고 일컬어지던 무리입니다.
세번째 무리는, 첫번째와 두번째 무리보다 뒤에 남쪽으로 왔던 백제 - 졸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보다 앞서 주周 때에 단-군이 다스리던 아사달에서 조선을 따르던 발發, 수兪 사람들이며, 그 뒤에 진-번의 무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가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울 때 함께 하고 그가 죽은 뒤에 떠나 백제를 세웠던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무리는, 한韓이 다스리던 땅에 본래 살던 무리들이며 앞서 주周가 양이良夷라고 적은 사람들 곧 낙랑 사람들이 있던 낙랑-군보다 남쪽에 있던 무리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한의 땅에 있는 무리들을 군들에 가까워 예를 갖추는 풍속을 가진 북쪽 무리[A-2:①-②]와 그렇지 않은 남쪽 무리[A-2:③-④], 둘로 구분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그 가운데 남쪽 무리들입니다.
A-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 마-한[馬-韓] 가운데) 북쪽 땅[北方]의 군들[郡]에 가까운 여러 국들[國]은 ● 조금은 ② 예를 갖추는[禮] 풍속[俗]을 알았지만[曉], ③ 그(= 마-한 가운데) (군들에서) 멀리 있는 곳(= 국들)은 ④ 꾸미지 않으니[直](= 예를 갖추는 풍속을 알지 못하여) ⑤ 갇힌 사람들[囚] 무리[徒]들 같이 ⑥ (남을) 따르는 남자들[奴], (남을) 따르는 여자들[婢]이 ⑦ 서로 모였다. ①其北方近郡諸國●差②曉禮俗③其遠處④直⑤如囚徒⑥奴婢⑦相聚
이 무리는 앞서 주서 왕회해편이 적은 성주에서의 모임에 왔던 무리들 가운데 양이에 잇달아 적은, 낙랑-군의 동쪽 산줄기 가까이에 머물던 청구靑丘라는 무리와 그 남쪽의 백민白民이라는 무리에 이어 적은 바, 백민 서쪽에 머물던 양주揚州라는 무리의 남쪽 무리로 생각됩니다. 다만, 그 이름을 적은 자료가 없기에 이 무리를 이를 때는 그 남쪽 무리와 같이 한韓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무리의 사람들은 뒤에 한-반도 남쪽에서 바다를 건너 열도列島 - 늘어선 섬들로 건너가서는 그곳을 처음 왜倭라고 이르고서는 머물러, 점차 건너가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누어지기까지 일들을 스스로 전하여 일본서기가 적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를 통해 이 글에서 살피고자 하는 좁은 의미의 한韓 - 북쪽 무리에 대해 더 살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러한 무리들에 대한 자료들을 통해 한韓에 대해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