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편 한韓 (1) #1

한과 그 주변

by 잡동산이

이번 편에서부터는 한韓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보겠습니다. 앞서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통해 그리하려 하니, 방식을 달리하는 이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하지요.




이제까지는 무리의 이야기, 핵심 문자 자료들을 통해 큰 흐름을 먼저 살피고 다른 자료와의 결합을 통해 그것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하였습니다. 를 들어 앞의 2장 1편은 사기 조선열전이라는 책冊의 구절들을 핵심 문자 자료들로 삼아서 먼저 위만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기에 일어난 일들의 큰 흐름을 살피고서, 다시 다른 자료들을 통해 조선과 그 변방 무리들의 이야기까지를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편의 한에 대해서는 같은 방식을 통해 큰 흐름을 먼저 살피기가 어려우니, 그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만에게 나라를 잃고 내려온 준과 그 후손들이 그 뒤 한韓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시기의 일들은, 바깥과 안의 다른 무리들 모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니다.


그러한 이유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바깥 무리들과 오고감을 꺼렸기 때문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위만에게 패배하고 달아난 준이 스스로 호를 말하기를 한-왕이라고 하였다[A-1-(1):①-②]고 적었는데,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은 위략을 인용하여 국國에 남아 있던 이들이 성을 한-씨라고 하였지만[B:①-④] 준은 조선과 더불어 서로 오고가지 않았다[B:⑤]고 적었습니다.


A-1-(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준이) 스스로 ① 호號를 ● (말하기를) ② 한-왕[韓-王]이라고 하였다. 自①號●②韓王
B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그(= 준의) 아들들[子], 그리고 피붙이들[親]이면서 국國에 남아 있는 이들은 ● 이어 ② (준을) 따라하여[冒] ③ 성姓을 ● (말하기를) ④ 한-씨[韓-氏]라고 하였으나, ● (준은) ⑤ 조선朝鮮과 더불어 서로 오고가지[往來] 않았다.> (自號韓王)<魏略曰①其子及親留在國者●因②冒③姓●④韓氏●⑤不與朝鮮相往來>


앞서 사기 조선열전이 상相 한음[C:②]이라고 적은 사람을 사기 건원이래후자연표 조선-상 한음[D:①]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 준이 떠난 뒤에 한-씨[韓-氏]가 조선을 따랐음을 알 수 있으니, 남아 한-씨라고 하였던 사람들이 있던 국國은 조선입니다. 그러니 뒤에 조선과 오고가지 않았던 일의 주어는 조선에 남아있지 않았던 준이며, 그가 조선과 오고감을 끊었기에 한韓의 일이 조선과 그 땅을 포함한 낙랑-군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C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조선-상[朝鮮-相] 노인路人, ② 상相 한음韓陰, ③ 이계-상[尼谿-相] 참參, ④ 장군將軍 왕겹王唊이 ● 서로 더불어 ⑤ 꾀하였다. (元封二年秋)①朝鮮相路人②相韓陰③尼谿相參④將軍王唊●相與⑤謀
D 사기 건원이래후자연표: 03년 04월 ① (적저-)후侯 조선-상[朝鮮-相] 한음韓陰의 01년[元年]이었다. 三年四月①侯朝鮮相韓陰元年


그러나 뒤에 마침내 위魏 때에 오고가게 되고서도 그 일은 여전히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준의 후손이 미처 스스로의 옛 일을 정리하지 않았을 때에 백제에 의해 더이상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것이 준과 그 후손이 한韓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시기의 일들이 바깥과 안의 다른 무리들 모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이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7년 04월 기사는 마-한이 없어졌다[E-1:①-②]고 적었습니다. 멸滅이라는 자에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못하 하였다/되었다는 뜻 있음을, 서 같은 뜻을 적은 다른 경우들을 통해 살핀 바 있습니다. 같은 일을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한-왕이라는 호가 끊어져 없어졌다[A-1-(2):①-②] - 한-왕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다 - 고 적었습니다.


E-1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7년 여름 04월) ① 마-한[馬-韓]이 ● 이윽고 ② 없어졌다[滅]. (溫祚王二十七年夏四月)①馬韓●遂②滅
A-1-(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 호를 한-왕이라고 한 준의) 뒤에 ● (한-왕이라는 호는) ② 끊어지고[絶] 없어졌지만[絶滅], ③ 지금 ④ 한韓 사람들[人] 가운데 ● 여전히 ⑤ 그를(= 준을) 받들어 제사지내는 이가 있다. ①其後●絶滅③今④韓人●猶⑤有奉其祭祀者


그리고 이어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지금 곧 위 때까지도 준을 제사지내는 이가 있다[A-1-(2):③-⑤]고 적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준이 위만에게 남쪽으로 와서 한-왕이라고 하기까지의 일을 전하였던 것이니, 앞서 알려지지 않아 사기 조선열전이 적지 않았던 이 일들을 위략이 얻어 적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략은 준보다 뒤의 한-왕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지 않았으니, 한-왕이라는 호를 없앤 백제로 말미암아 전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제가 그리한 이유는 당시의 요동-군의 공손-씨 세력 그리로 뒤이어 들어선 낙랑-군/대방-군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 관계는 세간에서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달라 뒤에 백제에 대한 글에서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제가 한-왕의 일들이 전하여지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34년 20월 기사는 마-한의 옛 장수였다가 등돌린 주근을 왕이 몸소 군사들을 일으켜 쳤으며[E-2:①-⑥], 주근이 스스로 죽고 나서는 그 주검을 베고 그 아내와 아들들까지 죽였다[E-2:⑦-⑩]고 적었으니, 옛 마-한 곧 한-왕의 장수가 등돌리는 일을 만났던 백제로서는 한-왕에 대한 일을 전하려는 일도 가볍게 넘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2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34년 겨울 10월 ① 마-한[馬-韓]의 옛 장수[舊將] 주근周勤이 ② 우-곡-성[牛-谷-城]에 기대어 ③ 등돌렸다[叛]. ④ 왕이 ● 몸소 ⑤ 군사 5,000(명)을 거느렸고 ● (군사들이) ⑥ 그[之]를(= 주근을) 쳤다. ⑦ 주근周勤이 ● 스스로 ⑧ 중요한 곳[腰]을 매었다(= 매어 죽었다). ● (왕이) ⑨ 그(= 주근의) 주검[尸]을 베고 ● 아울러 ⑩ 그(= 주근의) 아내, 아들(들)을 죽였다. (溫祚王)三十四年冬十月①馬韓舊將周勤②據牛谷城③叛④王●躬⑤帥兵五千●⑥討之⑦周勤●自⑧經腰●⑨斬其尸●幷⑧誅其妻子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한-왕이 다스리던 일들에 대해서는 바깥에서 또는 안에서 모아 적은 자료가 없고, 그러한 자료를 핵심 문자 자료들로 삼아서 큰 흐름을 잡은 뒤에 보다 자세히 살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한에 대해서는, 준과 후손들이 다스리던 시기, 주변 무리들의 일을 적은 자료들에 남아있는 한의 모습들을 더하여 간접적으로 살피겠습니다. 그러기에 앞서 준과 후손들이 만났던 주변 무리들을 정리해보지요.


첫번째 무리는, 진-국[辰-國]을 이루었던 사람들입니다. 조선을 위만과 그 후손이 다스릴 때에 한漢과 오고감을 막는 것에 반발하여 그 뒤 조선 사람들이 이르기에 앞서 남쪽으로 왔던 진-번[眞-番]의 우두머리들, 곧 진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무리는, 조선-상 노릇하던 역-계-경을 따라 우거를 떠나 남쪽으로 와서 다시 동쪽의 진-국으로 갔던 조선 사람들과 낙랑 사람들입니다. 이 가운데 낙랑 사람들은 뒤에 낙랑-군이라고 하였던 땅에 본래 머무르던 사람들로 보다 앞서 주周 때에 양이良夷라고 일컬어지던 무리입니다.


세번째 무리는, 첫번째와 두번째 무리보다 뒤에 남쪽으로 왔던 백제 - 졸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보다 앞서 주周 때에 단-군이 다스리던 아사달에서 조선을 따르던 발發, 수兪 사람들이며, 그 뒤에 진-번의 무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가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울 때 함께 하고 그가 죽은 뒤에 떠나 백제를 세웠던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무리는, 한韓이 다스리던 땅에 본래 살던 무리들이며 앞서 주周가 양良夷라고 적은 사람들 곧 낙랑 사람들이 있던 낙랑-군보다 남쪽에 있던 무리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한의 땅에 있는 무리들을 군들에 가까워 예를 갖추는 풍속을 가진 북쪽 무리[A-2:①-②]와 그렇지 않은 남쪽 무리[A-2:③-④], 둘로 구분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그 가운데 남쪽 무리들니다.


A-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 마-한[馬-韓] 가운데) 북쪽 땅[北方]의 군들[郡]에 가까운 여러 국들[國]은 ● 조금은 ② 예를 갖추는[禮] 풍속[俗]을 알았지만[曉], ③ 그(= 마-한 가운데) (군들에서) 멀리 있는 곳(= 국들)은 ④ 꾸미지 않으니[直](= 예를 갖추는 풍속을 알지 못하여) ⑤ 갇힌 사람들[囚] 무리[徒]들 같이 ⑥ (남을) 따르는 남자들[奴], (남을) 따르는 여자들[婢]이 ⑦ 서로 모였다. ①其北方近郡諸國●差②曉禮俗③其遠處④直⑤如囚徒⑥奴婢⑦相聚


이 무리는 앞서 주서 왕회해편이 적은 성주에서의 모임에 왔던 무리들 가운데 양이에 잇달아 적은, 낙랑-군의 동쪽 산줄기 가까이에 머물던 청구靑丘라는 무리와 그 남쪽의 백민白民이라는 무리에 이어 적은 바, 백민 서쪽에 머물던 양주揚州라는 무리의 남쪽 무리로 생각됩니다. 다만, 그 이름을 적은 자료가 없기에 이 무리를 이를 때는 그 남쪽 무리와 같이 한韓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무리의 사람들은 뒤에 한-반도 남쪽에서 바다를 건너 열도列島 - 늘어선 섬들로 건너가서는 그곳을 처음 왜倭라고 이르고서는 머물러, 점차 건너가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누어지기까지 일들을 스스로 전하여 일본서기가 적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를 통해 이 글에서 살피고자 하는 좁은 의미의 한韓 - 북쪽 무리에 대해 더 살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러한 무리들에 대한 자료들을 통해 한韓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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