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편 한韓 (1) #2

한-왕[韓-王]이라는 호號

by 잡동산이

한韓라는 이름은 앞서 맥貊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1장 3편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그 내용을 굳이 상세하게 설명한 것은 맥 뿐만 아니라 한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주周 무-왕[武-王]은 아들들 가운데 1명게 남쪽 변방 사람들을 지켜보도록 하였습니다. 무-왕의 자리를 이은 아들 주 성-왕은 연 소-공이 거느린 군대를 시켜 북쪽의 한韓이라는 곳에 성城을 짓도록 하였는데, 뒤에 주 선-왕은 남쪽 변방 사람들을 살피던 사람의 후손을 그 성이 있는 곳의 우두머리[侯]로 삼았 그가 그를 따르던 추, 맥과 함께 북쪽 변방 무리들을 다독여 따르도록 하니 다시 백伯이라는 등급의 후侯로 삼았습니다.


한참 지나서, 백伯이던 한-후[韓-侯]는 진晉을 따랐고 진-군[晉-君]과 자리를 다투던 진-군의 아우 환숙 그리고 그 후손들이 진-군을 치는 일을 두고 보지 않고 방해하였습니다. 이에 환숙의 손자 무공은 환숙의 아들 만을 보내어 한-후를 죽이도록 하였고, 그리하여 한-후를 따르던 맥 사람들이 연 가까이로 달아났니다. 차지한 한韓의 들판[原]에 만이 봉하여지니 그를 무-자[武-子]라고 하고 그 성을 한韓이라고 하였습니다


뒤에, 무-공이 드디어 진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여 무-공이라고 하였으며, 그의 아들이 자리를 이어 헌-공이라고 하였습니다. 보다 뒤에 고죽, 영지를 통하는 길로 나온 도하 사람들의 부추김에 넘어간 맥 사람들은, 적의 왕이 진을 칠 때를 노려, 북쪽 변방 사람들과 함께 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패배하였고 도하 사람들 또한 깨트려지니 모두 함께 영지, 고죽을 통하는 길로 도하로 움직여 머물렀습니다.


그 뒤, 산융이 연에 침범하여 제 환-공이 산융을 깨트리고 영지, 고죽을 통하는 길을 지나 도하에 있던 예를 비롯한 본래의 여러 동쪽 변방 사람들과, 동쪽 변방 사람들이 되어있던 맥과 북쪽 변방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 여러 변방 사람들은 제를 두려워하여 아사달에 또한 있던 예 사람들을 통해 아사달로 건너왔으며, 그리하여 조선을 - 당시의 우두머리인 조선-후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위 이야기는 1장 3편에서 각각 다른 자료들이 적은 구절들을 모아 결합하여 얻어낸 것입니다. 그러한 자료들 가운데 시경 대아편의 한혁이라는 이름의 시를 적은 구절들이 있었는데, 이 구절들의 일부를 한韓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료가 적었습니다. 그 자료의 이름은 잠부론입니다.


잠부론은, 한의 개국 공신인 장량을 비롯하여 한-씨였던 여러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한 뒤에 그 성이 비롯한 바를 적었습니다. 먼저 환숙의 뒤에 여러 성과 더불어 한-씨가 있었다[F:①-②]고 적고는 모두 한-씨의 후손으로 희-성이다[F:③-⑥]라고 하였습니다.


F 잠부론: 무릇 ① 환숙桓叔의 뒤에 ② 한-씨[韓-氏], 언-씨[言-氏], 영-씨[嬰-氏], 화여-씨[禍餘-氏], 공족-씨[公族-氏], 장-씨[張-氏]가 있으니 ③ 이 사람들[此]은 ④ 모두 ⑤ 한(-씨)[韓]의 후손이며 ⑥ 희-성[姬-姓]이다. ⑦ 옛날[昔] ⑧ 주周 선-왕[宣-王]에게 ● 또한 ⑨ 한-후[韓-侯]가 있었다. ⑩ 그[其] 국國이 ⑪ 연燕에 가까웠으
다. ● 그리하여 ⑫ 시(경)[詩]이 ● 이르기를 "⑬ 넓은 저 한-성[韓-城]은 ⑭ 연의 군대[燕-師]가 이룬[完] 바였으니,"라고 하였다. ⑮ 그[其](= 한-후의) 뒤에 ⑯ 한(-후)[韓]의 서쪽에서 ● 또한 ⑰ 성姓을 ● (말하기를) ⑱ 한韓이라고 한 것이다. ● (한-후는) ⑲ 위만衛滿이 치는 바 되어 ⑳ 옮겨가 바다 가운데[海中]에 머물렀다. ●凡①桓叔之後②有韓氏言氏嬰氏禍餘氏公族氏張氏③此④皆⑤韓後⑥姬姓也⑦昔⑧周宣王●亦⑨有韓侯⑩其國也⑪近燕●故⑫詩●云⑬普彼韓城⑭燕師所完⑮其後⑯韓西●亦⑰姓●⑱韓●⑲爲衛滿所伐⑳遷居海中


환숙은 앞서 정리한 맥의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진-군의 아우입니다. 진-군의 성이 본래 희-씨였기에, 한-원에 봉하여진 환숙의 아들 만 곧 한만이 바로 본래 성이 희-씨인 한-씨입니다. 그 후손들이 뒤에 진을 무너뜨리고 갈라 조趙, 위魏, 한韓 가운데의 한을 일으키게 되며 아래 구절 앞의 구절이 이야기한 여러 사람들은 그 후손입니다.


그리고서 잠부론은 성이 본래 희-씨가 한-씨라고 하게 되었던 까닭을 적었습니다. 먼저 주 선-왕에게 한-후가 있었다[F:⑦-⑨]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의 국이 연에 가까웠다[F:⑩-⑪]고 적고는 그 근거로 시경을 인용하여 그 구절들[F:⑫-⑭]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1장 3편에서 이미 시경의 이 구절을 살펴 주 성-왕이, 연에 가지 않고서 가까이 머물던 있던 연 소-공이 거느린 무리를 두려워하여 쌓도록 한 것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곧 시경의 구절은 한-후의 국이 연에 가까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후의 국이 연에 가까웠다는 구절은 1장 3편에서 살폈던, -수의 동북쪽에 있다가 한-후를 따라 한-성에 머물다가 옮겨간 곳, 맥의 국이 연에 가까웠다[1장 3편 AK:③]고 적은 산해경의 구절에 해당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둘을 더하여 바라보면, 한-후, 앞서 무공의 아들 만에 의해 죽은 한-후의 후손은 과 함께 한-성 떠나 연에 가까운 곳에 국을 이루어 머물렀던 것입니다.


1장 3편 AK 산해경: ① 맥貊의 국國은 ② 한-수[漢-水]의 동북쪽 땅에 있었다. ● (맥의 국이) ③ 연에 가까우니 ● (연이) ④ 그것(=맥의 국)을 없앴다[滅]. ①貊國②在漢水東北地●③近于燕●④滅之


이어 잠부론은 그 뒤에 한-후[韓] 곧 죽은 한-후의 후손이 있는 곳 서쪽에서 또한 성姓을 한이라고 하였다[F:⑮-⑯]고 적었습니다. 앞서 환숙의 아들 만이 한-원에 봉하여지고서 성을 한-씨라고 하여 한만이라고 하였던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간에서는 이 구절의 서西라는 글자를 동東이라는 글자를 잘못 적은 것으로 여깁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자는 대로 한-후의 후손이 맥과 함께 머물던 곳에서 진晉을 서쪽으로 하는 곳, 본래 머물던 곳보다 동쪽에 있는 곳 - 도하로 옮겨간 것을 은 것입니다. 그 뒤 도하가 이 사람을 내세워 맥과 다른 북쪽 변방 사람들을 부추기자, 맥과 북쪽 변방 사람들이 - 겉으로나마 - 그러한 부추김을 따라 진晉을 공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격이 진에 대한 제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함께 도하로 돌아온 뒤에, 연을 공격한 산융을 패배시킨 제가 뒤쫓아 따라오자 맥과 다른 북쪽 변방 사람들이 아사달로 건너가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앞서의 싸움을 부추긴 한-후의 후손 또한 아사달에 이르러 조선을 따랐습니다.


잠부론은 이어 한-후의 후손이 위만이 치는 바 되어 옮겨가 바다 가운데 머물렀다[F:⑲-⑳]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이 준이 달아나 바다로 들어갔다[1장 4편 D-1-(2): ③]고 적고, 위략이 준이 바다로 들어가 왕 노릇을 하였다[1장 4편 A-2: ①-②]고 적은 일입니다. 준은 한-후의 후손이었으며, 준의 아버지 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1장 4편 D-1-(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준은) ① 연燕의(= 연을) 떠난[亡] 사람 위만衛滿이 쳐서 (조선을) 빼앗은 바 되어 ② 그(= 준의) 가까운 사람들[左右], 궁宮의 사람들[人]을 거느리고 ③ 달아나[走] 바다로 들어갔다. ①爲燕亡人衛滿所攻奪②將其左右宮人③走入海
1장 4편 A-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준은 ② 바다 가운데[海中]에서 왕노릇하였다[王].> <魏略曰①準②王海中>


그리하고 이제 앞서 살펴본 위략을 다시 보면, 비로소 미심장한 부분이 눈 들어옵니다. 처음 연-군이 왕이 되고 동쪽으로 와서 땅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일컬어 왕이라고 했던 첫 조선-왕의 뒤로 그 아들과 손자의 일[1장 4편 A-(1)]을 이야기한 뒤에 부가 조선-왕으로 섰다고 하고는 부와 준의 일[1장 4편 A-(1)]을 이야기하면서 위략은 부가 바로 앞의 조선-왕과 어떤 관계인지는 적지 않 있다는 것 말입니다.


1장 4편 A-(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옛날 ② 기-자[箕-子]의 후손[後] 조선-후[朝鮮-侯]가 ● 보니 ③ 주周는 약해지고 ④ 연(-군)[燕]이 ⑤ 스스로 ● 높여 ⑥ (연-)왕王이라고 하고 ● 바라기를, ⑦ 동쪽으로 가서 ⑧ 땅을 차지하였으면, 하였다. ⑨ 조선-후가 ● 또한 ⑩ 스스로 ● 일컬어 ⑪ (조선-)왕이라고 하고 ● 바라기를, ⑫ 군사들을 일으켜서 ⑬ 연을 맞받아쳐[逆擊] ● (연이) ⑭ 주(-왕)[周] 가문[室]을 높이도록 하였으면, 하였다. ⑮ 그(= 조선-왕의) 대부大夫 예禮가 ⑯ 그[之]를(= 조선-왕을) 말렸고[諫] ● 이어 (조선-왕이) ⑰ 멈추고[止] ⑱ 예禮를 사신으로 보내니 ● (예가) ⑲ 서쪽으로 가서 ⑳ 연에게 이야기하였다[說]. ㉑ 연이 ㉒ 그것(= 동쪽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고자 함을) 멈추고[止] ㉓ (동쪽 땅을) 치지 않았다. ㉔ 뒤에 ㉕ (조선-왕의) 아들[子], 손자[孫]가 ● 점점 ㉖ 잘난체하고 사나웠다. ㉗ 연燕은 ● 이어 ㉘ 장수 진개秦開를 보내니 ● (진개가) ㉙ 그(= 조선의) 서쪽 땅[西方]을 쳤다. ㉚ 땅 2,000리 남짓[二千餘里]을 가졌고, ㉛ 만滿, 반한潘汗에 이르기까지를 ㉜ 계界로 하였다. ㉝ 조선이 ● 이윽고 ㉞ 약해졌다[弱].> <魏略曰①昔②箕子之後朝鮮侯●見③周衰④燕⑤自●尊⑥爲王●欲⑦東⑧略地⑨朝鮮侯●亦⑩自●稱⑪爲王●欲⑫興兵⑬逆擊燕●⑭以尊周室⑮其大夫禮⑯諫之●乃⑰止⑱使禮⑲西⑳說燕㉑燕㉒止之㉓不攻㉔後㉕子孫●稍㉖驕虐㉗燕●乃㉘遣將秦開㉙攻其西方㉚取地二千餘里●㉛至滿潘汗㉜爲界㉝朝鮮●遂㉞弱>
1장 4편 A-(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 이윽고 ① 진秦이 ② 천하天下를 아우르고 ③ 몽염蒙恬에게 시키니 ● (몽염이) ④ 긴 성[長-城]을 쌓았다. ● (긴-성이) ⑤ 요동遼東에 이르렀고 ⑥ (이) 때 ⑦ 조선-왕 부否가 ⑧ (조선-왕으로) 섰다[立](=조선-왕이었다). ● (부가) 두려워하기를, ⑨ 진이 ⑩ 그[之](=부)를 덮칠까, 하여 ⑪ 잠시[略] ⑫ 진을 따랐지만[服屬] ● (진에 가서) ⑬ 보고[朝] 모이려[會](= 진의 조정에 가려) 하지는 않았다. ⑭ (조선-후) 부가 ⑮ 죽으니 ⑯ 그(= 부의) 아들[子] 준準이 ⑰ (조선-후로) 섰다[立].> <(魏略曰)●及①秦②幷天下③使蒙恬●④築長城●⑤到遼東⑥時⑦朝鮮王否⑧立●畏⑨秦⑩襲之⑪略⑫服屬秦●⑬不肯朝會⑭否⑮死⑯其子準⑰立>


그럼에도 세간에서는 준을 기-자의 후손이라고 보니, 이것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이 조선-후 준의 앞에 적은 기-자의 뒤 40세 남짓[1장 4편 E-(1):]이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세대 간격을 살펴 40세 남짓이라는 구절은 본래 준이 아니라 첫 조선-왕에 대한 것이었임을 이미 보였습니다. 40세 남짓의 기준인 기-자 또한 첫 조선-왕에 이어지만 준에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1장 4편 E-(1)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 ① 그(= 기-자의) 뒤 40세世 남짓[四十餘世] 조선-후[朝鮮-侯] 준準이 ② 호號를 멋대로 하고 ● 일컬어 ③ (조선-)왕王이라고 하였다. ①其後四十餘世朝鮮侯準②僭號●稱③王


곧 준과 부는 기-자의 후손인 첫 조선-왕의 손자의 손이 아니며, 다만 첫 조선-왕의 손자의 뒤를 이어 조선-왕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조선을 잃은 뒤에는 준이 스스로 본래 이어받았던 한-후라는 호를 쓰되, 앞서 조선-후를 이미 고쳐 조선-왕이라고 하였듯이 후를 왕으로 고쳐 스스로 호를 한-왕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한韓을 성姓으로 쓰니, 조선에 있던 준의 피붙이들이 알고 또한 한-씨[韓-氏]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요컨대, 한-후의 후손이 한-성을 떠나 맥의 국을 지나 아사달에 와서 조선을 따랐다가, 기-자의 후손이었던 첫 조선-왕의 손자가 연에게 패배하여 아사달을 떠난 뒤 한-후의 보다 뒤의 후손이 조선-왕의 뒤를 이어 그 호를 쓰게 되니 곧 조선-왕 부否였으며 부의 아들이 준準이었습니다. 때문에 은 조선-왕이라는 호를 잃은 뒤, 본래의 호인 한-후를 한-왕이라고 고 쓰며 호의 땅 이름 한韓을 성姓으로 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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