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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동산이 Nov 09. 2024

2장 4편 부여夫餘 (1) #4

부여가 일어나기까지 (4/4)

한이 오환을 깨트린 그 뒤의 여러 일들로 이어졌습니다. 먼저, 한서 소제기 원봉 04년 04월 기사는 소-제가 글[詔]를 내렸는데[C-2:①] 그 글에서 도요-장군 범명우가 오환을 깨트려 그 사람들을 베거나 얻으니 공이 있다[C-2:②-⑦]고 하고 범명우를 봉하니[C-2:⑧-⑨] 범명우가 평릉-후가 되었다[C-2:⑩]고 적었습니다. 서의 일 오환 사람들이 죽거나 잡혀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바, 이 일이 일어난 시점은 MC-76/04입니다.


C-2 한서 소제기: (원봉 04년) 여름 04월 ① 조를 내려[詔] ● 말하기를 "② 도요-장군[度遼-將軍] 범명우範明友는 ③ 앞서 ... ④ 지금 ⑤ 오환烏桓을 깨트려 ⑥ (오환을) 베어 잡거나 살려두고 얻었다. ⑦ (이러한) 공功이 있다."라고 하였다. ⑧ 그것[其](= 내린 조詔에서) ⑨ 범명우를 봉하니 ● (범명우가) ⑩ 평릉-후가 되었다. (元鳳四年)夏四月①詔曰②度遼將軍明友③前...④今⑤破烏桓⑥斬虜獲生⑦有功⑧其⑨封明友⑩爲平陵侯


이어 한서 소제기 원봉 05년 06월 기사는 삼보와 군들, 국들에서 나쁜 - 조금 독하게 마음을 쓰는 - 이어린 관리들을 뽑았는데[C-3:], 관리들 가운데 살펴 꾸짖을 것을 알리 달아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요동-군에 두었다[C-3:-③]고 적었습니다. 나쁜 관리들 가운데 달아날 정도로 크게 꾸짖을 것이 있는 - 죄를 지은 사람들을 변방에 두어 그것을 벌로 삼으면서 또한 관리들을 채운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시점은 MC-75/06입니다.


C-3 한서 소제기: (원봉 05년 여름) 06월 ① 삼보三輔 그리고 군들[郡], 국들[國]의 나쁜[惡], 나이어린[少年] 관리들을 뽑았다. ● (관리들 가운데) ② 살펴 꾸짖을 것들[劾]을 알리자 달아나는[亡] 이들이 있으니 ③ 요동遼東에 (이 관리들을) 두었다. (元鳳五年夏)六月①發三輔及郡國惡少年吏●②有告劾亡者③屯遼東


어, 한서 소제기 원봉 06년 01월 기사, 그러한 관리들을 모 이어, 군들, 국들에서 죄지은 사람들을 뽑아 그들이 요동-군에 현토-성을 쌓도록 하였[C-4:-]고 적었습니다. 곧바로 이어 원봉 06년 여름 기사는 오환이 다시 새를 침범하였고[C-5:①-②], 한 범명우를 보내니 범명우가 다시 그들을 쳤[C-5:③-④]고 적었습니다. 각각의 일이 일어난 시점은 MC-74/01과 MC-74/04[+3)입니다.


C-4 한서 소제기: (원봉) 06년 봄 01월 ① 군들[郡], 국들[國]의 무리들[徒](= 죄 지은 사람들)을 뽑았다. ● (이 사람들로) ② 요동遼東에 현토-성[玄菟-城]을 쌓았다. (元鳳)六年春正月①募郡國徒●②築遼東玄菟城
C-5 한서 소제기: (원봉 06년 여름) ① 오환이 ● 다시 ② 새塞를 침범하였다. ③ 도요-장군 범명우를 보내니 ● (범명우가) ④ 그들[之](= 오환)을 쳤다. (元鳳六年夏)①烏桓●復②犯塞③遣度遼將軍范明友●④擊之


오환이 이 때에 침범하였던 곳을 요동-군의 새라고 하였, 한漢 사람들이 요동-군의 새를 나와 현토-성  현토-군을 옮길 곳의 성을 쌓는 것을 알고 침범하여 막려 하였던 것입니다. 앞서 범명우에 의해 약해진 오환 사람들 곳 현토-군을 옮기기로 하고 그곳에 성을 쌓는 일을 기고자 구한 사람들이 바로 앞서 뽑았던 독한 심성의 어린 관리들과 죄지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환이 현토-성이 지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 한은 범명우를 보내 그들을 치도록 하였 성은 만들어졌현토-군 그곳에 새로 두어졌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은 토-군이 옮겨간 곳을 구려의 서북쪽[G-1:]이라고 하였데, 어째서 구려를 기준삼았을까요?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이 적은 바, 옥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땅, 예 사람들이 머물던 곳에 있던 현토-군이 보다 앞서 옮겨 구려에 있었기[H-1:-②] 때문입니다.


G-1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현토-)군郡을 구려句麗 서북쪽으로 옮겼다. ①徙郡句麗西北
H-1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 ① 현토(-군)[玄菟]은 ● 다시 ② 옮겨 구려句驪에 머물렀다. ①玄菟●復②徙居句驪


앞서의 성이 지어진 뒤로, 옮겨간 현토-군이 있던 땅을 구려라고 하였던 것은 그 땅에 본래 머물던 무리가 옮겨간 뒤 구려가 들어와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토-군이 새로 옮겨간 땅을 구려 서북쪽이라고 하였는데 여기는 예, 맥, 조선이 있던 땅이니, 보다 앞서 현토-군이 있던 곳은 그보다 동남쪽의 땅 - 진-번이 머물던 땅입니다.


오환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던 시기 진-번의 땅에 본래 머물던 사람들은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진 사람들이 우거가 한에 패배하기에 앞서 여기에서 떠나 남쪽으로 가서 진-국을 이루었던 일에 대해서 이미 살폈습니다. 그렇다면 진 사람들이 떠나고 그 서북쪽 땅에서부터 구려 사람들이 들어오기까지  이곳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부여에 대해 살피는 가운데 이 답은 자연히 나타날 것입니다.




요컨대, 구려머무르던 현토-군이 다시 옮겨 땅 앞서 흉노에게 동호가 패배한 뒤에 무리들 가운데 오환, 선비가 들어와 자리잡 곳니다. 그리하여 보다 앞서 발의 땅에 들어와 그 서쪽 땅에 자리잡은 조선 사람들  때 서북쪽로는 오환/선비, 서쪽로는 한의 요동-군 진-번 서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한漢 요동-군에서 바라보, 의 땅에서 요동-군 양평-현까지 이어진 연의 긴 성의 북쪽 땅진秦, 한漢이 상대하였던 흉노가 고, 곳에서 동남쪽으로 장들, 새들들어져 있는데 그곳에 맞닿아 동쪽이라고도 북쪽이라고도 할 수 있는 땅 가운데 흉노의 동쪽 땅에 맞닿은 곳에는 예, 맥, 조선과 오환이 있고 이어지는 동남쪽 땅 조선 사람들이 머무는 발의 땅이 있 상황입니다.


러한 상황에 대해 사기 화식열전은, 상곡-군에서 요동-군에 이르연의 땅은, 북쪽에서 오환, 부여와 이웃하였다[I:-②]었습니다. 앞서 살핀 바 부여에 해당하는 곳 바로 계속하여 이야기하였던 땅, 조선 사람들이 들어와 머물던 발의 땅입니다. 여기서 부여라는 무리 이름이 처음 일어나 바깥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I 사기 화식열전: (연燕의, 상곡-군에서 요동-군에 이르는 땅은) ① 북쪽에서 ② 오환烏桓, 부여夫餘와 이웃하였다. ①北②鄰烏桓夫餘




마침내 부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부여夫餘라는 무리 이름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펴보고, 관련된 일들을 하나하나 자료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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