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시작 (1/4)
앞서의 글에서는 부여夫餘라는 이름[名]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았고 그리하여 그 이름이 처음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그것을 이름으로 삼은 무리가 나타난 뒤에 그 우두머리가 마침내 옮겨가서 도읍하였던 홀승-골-성에 대해서도 살폈습니다.
이제 그 사이, 부여라는 이름의 장소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우두머리를 맞이하면서 무리를 이루어기 시작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논형 길험편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의 구절들이 적은 동명은 부여의 시조가 아니라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부여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라 다른 자료들, 동명왕편 주석이 인용한 본기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고 있는 동명-성왕이 태어나기에 앞서 있었던 일을 적은 구절들에서 살펴야 합니다.
두 자료들의 이야기는 모두 나이많아 아이가 없던 부여-왕 해부루解夫婁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이많아 아이가 없다가 아이를 얻었다고 하는 또다른 왕으로 탈해-이사금이 있습니다. 그가 아이를 얻었을 시기는 주활동시기 곧 나이 30에서 60세 사이를 지난 시기였으니, 나이많아 얻었다는 아이는 아버지와 1세대를 넘어 2세대 차이가 나는 아이를 말합니다. 해부루가 나이많아 얻었다고 적은 금와의 세대 차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금와의 아들들과 유화의 아들 동명이 함께 어울려 노닐었다[R-4:④-⑤]고 적었습니다. 그러니 동명은 대소와 같은 세대며, 또한 대소의 아버지이기에 대소보다 1세대 앞선 금와보다는 1세대 뒤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동명은 금와보다 2세대 앞선 해부루보다 3세대 뒤의 사람이며, 자연적인 1세대의 간격은 30해이니 주활동시기가 해부루의 주활동시기보다 90해 늦은 사람입니다.
R-4 동명왕편 주석: <① (동-부여-왕[東-夫餘-王]) 금와金蛙에게 ② 7(명) 아들들이 있었다. ● (금와의 아들들은) ③ 언제나 ④ 주몽朱蒙과 함께 ⑤ 놀며 사냥하였다.> <①金蛙②有子七人●③常④共朱蒙⑤遊獵>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건소 02년에 주몽 곧 동명의 나이가 22세였다[Q-8:①-⑤]고 적었습니다. 건소 02년은 MC-36이니 동명의 주활동시기 곧 나이 30에서 60인 해는, 8년이 지난 MC-28에서부터 30해 동안인 MC-28[+30)입니다. 3세대 앞선 해부루의 주활동시기는 여기서 90해를 거슬러 올라간 MC-118[+30)이니, 해부루가 부여-왕이 되어 다스린 것 또한 여기에 해당합니다.
Q-8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① (이) 때 ② 주몽朱蒙은 ③ 나이가 22세였다. ④ 이 때는 ⑤ 한漢 원-제[孝元-帝]의 건소建昭 02년이었다. ①時②朱蒙③年二十二歲④是⑤漢孝元帝建昭二年
부루라는 이름은 앞서 살핀 바 제왕운기 주석이 인용한 단군기가 또한 적었으니, 비서 곧 부여로 달리 적은 곳의 하-백의 딸과 단-군이 혼인하여 얻은 아들의 이름입니다.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은 이 구절들의 단-군을 해모수로 보아 해부루를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적었지만, 그것은 전하던 것이 아니라 일연이 추측한 것이며 그 추측이 타당하지 않음을 이미 보인 바 있습니다.
1장 3편 T 제왕운기 주석 인용 단군본기: <(단-군이) ① 비非의 서쪽[西] 물가[岬] 하-백[河-伯]의 딸과 더불어 혼인하였다. ② 아들[男]을 낳으니, ● (아들은) ③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④ 부루夫婁라고 하였다.> <檀君本紀曰①與非西岬河伯之女婚②而生男●③名●④夫婁>
1장 2편 N-1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 <① 지금 ② 이 기록(=고려본기)에 기대어보면 ③ 곧 해모수解慕漱가 ④ 하-백[河-伯]의 딸과 통하였고 ⑤ 뒤에 ● (하-백의 딸이) ⑥ 주몽朱蒙을 낳았다. ● (그런데) ⑦ 단군 기록[壇君記]이 ● 이르기를 "⑧ (단-군과 하-백의 딸이) 낳은 아들[子]을 ⑨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⑩ 부루夫婁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 (그러니) ⑪ 부루와 주몽은 ⑫ 어머니를 달리하는 형과 아우였다.> (而徃不返)<①今②拠此記則解慕漱私河伯之女而後産朱蒙●壇君記云②産子名曰夫婁③夫婁與朱蒙⑫異母兄弟也>
그러나, 비서라는 물가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하-백의 딸과 당시 단-군 - 왕검의 후손인 단-군의 아들 부루가 해부루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단-군의 시간축을 다루는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듯이 단-군의 다스림이 끊어지고 자취가 사라진 시기는 MC-77후이며, 이 시기는 해부루가 다스리던 MC-118[+30)보다 뒤에 해당하기에 렇습니다.
그렇다면 단-군의 아들 부루와 부여-왕 해부루는 정말로 같은 사람이었을까요?
앞서 요에 대해 달리 이르는 제+요+도+당-씨라는 구절이 호+이름+(본래 머물던 곳)+(봉하여진 곳)+씨로 구성된 것임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또한 웅이 내려왔던 곳을 단이라고 하고 곰 같은 여자와 혼인하여 낳은 왕검을 처음 머물던 곳의 이름을 써서 단-군이라고 하였으니, 부루가 처음 머물던 곳은 그 아버지가 내려와서 어머니와 혼인하였던 비서 곧 부여입니다. 그리하여 앞서와 같이 적으면 부루는 곧 (?)+부루+부여+(?)-씨입니다.
그런데, 요를 적은 구절의 당은 봉하여진 곳이면서 또한 그곳에 본래 있던 무리의 이름입니다. 이렇게 대개는 장소의 이름을 무리의 이름으로 삼기 마련이지만, 뒤에 발의 땅에서 일어난 비류-국의 왕 송양이 스스로 선[仙/鮮]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하였던 것에 보이듯이, 발의 땅에 들어와 자리잡은 조선 사람들은 그 무리 이름을 머무르는 땅 이름인 부여가 아니라 조선, 줄여서 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무리의 우두머리 하-백의 딸과 단-군이 혼인한 것은 웅이 단의 곰 같은 여자와 혼인하여 그곳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한 것과 같이 그 무리의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웅이 그 땅의 여자에게서 얻은 아들을 뒤에 단이라는 무리 이름을 써서 우두머리 - 단-군으로 삼았듯 단-군 또한 그 땅의 여자에게서 얻은 아들 부루를 선이라는 무리 이름을 써서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앞서 구절은 곧 (?)+부루+부여+선-씨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조선을 줄여 적은 선鮮은 다른 모양[異體]의 글자인 觧를 써서 달리 적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觧은 해解의 다른 모양의 글자이기도 하였고, 뒤에 觧와 解 가운데 바른 글자[正字]는 解라고 여겨 고쳐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鮮을 달리 적은 觧가 解로 적혔으니, 앞서 구절은 곧 (?)+부루+부여+해-씨입니다.
그리고서, 제+요+도+당-씨를 줄여 당-요라고 줄여 이야기하듯이 줄여 이야기하면, 앞서의 구절 (?)+부루+부여+해-씨는 곧 해-부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부여-왕 해부루는 본래 단-군이 발의 서쪽 땅 - 비서의 하-백의 딸과 혼인하여 얻은 아들이었고 비서 곧 부여에서 자라서 뒤에 조선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앞서 구절의 (?)는 우두머리의 호인 왕입니다.
부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부루와 그 아버지 단-군의 관계가 왕검과 그 아버지 웅의 관계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통해 부여의 시작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또다른 이름이 무리 이름으로 남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