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4편 부여夫餘 (1) #21

부여가 옮겨가는 사이 (2/8)

by 잡동산이

두번째로 이야기할 일들은 구려로 옮겨 머무르다가 뒤에 다시 그 서북쪽으로 옮겨간 현토-군에 대한 일들입니다. 이 옮겨감이 부여로 말미암은 것임은 이미 말하였는데, 그리하여 이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편은 한漢 때에 현토-군에서 북들, 피리들,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내려주었는데[AN-1:①-②] 이 사람들이 현토-군으로부터 옷들, 머리띠들을 받았다[AN-1:③-④]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 일에 고구려-현의 현령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AN-1:⑤-⑥]고 적었습니다.


AN-1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편: ① 한漢 때 ② 북들[鼓], 피리들[吹], 재주를 가진 사람들[技人]을 내려주니 ● 언제나 (사람들이) ③ 현토-군[玄菟-郡]으로부터 ④ 보며[朝] 입을[服] 옷[衣], 머리띠[幘]를 받았고 ⑤ 고구려(-현)[高句麗]의 (현-)령令이 ⑥ 그(= 사람들의) 이름[名]을 기록하는 일[籍]에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主]. ①漢時②賜鼓吹技人●常③從玄菟郡④受朝服衣幘⑤高句麗令⑥主其名籍


이 때에 물건들을 가져간 사람들 - 현토-군이 북들, 피리들과 더불어 내려주었던 사람들을 받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써서 하였던 일들에 대해 적은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동명왕편 주석입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이 북들, 뿔피리들을 갖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왕의 예를 갖추어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니 비류에서 오고가던 사신된 이들이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바였다[R-5:①-⑨]고 적었습니다. 곧 북들, 피리들의 쓰임새는 사신들에게 왕의 예를 갖추어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으니 현토-군에서 북들, 피리들을 준 상대는 당시 우두머리가 왕이라는 호를 쓰던 무리였습니다.


R-5 동명왕편 주석: <① 왕이 ● 말하기를 "② 국國의 일들로 ③ 새로 만들도록 하였지만 ④ 아직 북들[鼓], 뿔피리들[角]의(= 북들, 뿔피리들로 보이는) 위엄있는[威] 모습[儀]이 없으니, ⑤ 비류沸流의 사신된 이들이 ⑥ (나에게) 가고 오는데 ⑦ 내[我]가 ⑧ 왕王의 예禮로 (그들을) 맞아들이고 보내도록 할 수 없다. ● (그러함이) ⑨ 나를 가볍게 여기도록 하는 바[所]다."라고 하였다. ⑩ (왕을) 따르는[從] 신하 부분노扶芬奴가 ⑪ 나아가 ● 말하기를 "⑫ 나[臣]는 ⑬ 네[大王]가 비류沸流의 북들, 뿔피리들을 가지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 ⑭ 왕이 ● 말하기를 "⑮ 다른(= 비류-)국國이 감추는 물건들(= 북들, 뿔피리들)을 ⑯ 네[汝]가 ⑰ 어찌 가지고 있겠는가(= 가져 내가 가지도록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부분노가) ⑱ 마주하여 ● 말하기를 "⑲ 이것들은 ⑳ 천天의(= 천 사람인 내가) 주는 물건들이니 ㉑ 어찌 (네가) 가지도록 할 수 없겠는가? ㉒ 네[大王]가 ㉓ 부여扶余에서 힘들어하니 ㉔ 누가 ㉕ 너에게 일러 ● (말하기를) '㉖ 여기에 이르를 수 있다.'라고 하였겠는가? ● (그러나) ㉗ 지금 ㉘ 너[大王]는 ㉙ 10,000(번) 죽을 위험에서 몸을 빼내어 ㉚ 이름을 요遼의 왼편[左]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㉛ 이 일들은 ㉜ 천-제[天-帝]가 명령하여 ㉝ 그것들[之]을 하는 것이니 ㉞ 어찌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㉟ 이 때에 ㊱ 부분노扶芬奴 등 3명[人]이 ㊲ 비류沸流에 가서 ㊳ 북들을 가지고 왔다.> <①王●曰②以國業③新造④未有鼓角威儀⑤沸流使者⑥往來⑦我⑧不能以王禮迎送●⑨所以輕我也⑩從臣扶芬奴⑪進●曰⑫臣⑬爲大王⑭取沸流鼓角⑮王●曰⑯他國藏物⑰汝⑱何取乎●⑱對●曰⑲此⑳天之與物㉑何爲不取乎㉒大王㉓困於扶余㉔誰㉕謂大王●㉖能至於此●㉗今㉘大王㉙奮身於萬死之危㉚揚名於遼左㉛此㉜天帝命㉝而爲之㉞何事不成㉟於是㊱扶芬奴等三人㊲往沸流㊳取鼓而來>


이 무리가 누구인지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곧 동명왕편 주석은, 부분노가 비류의 북들, 뿔피리들을 동명-성왕이 가지도록 하겠다[R-5:⑫-⑬]고 말하였다고 적고 또한 부분노 등 3명이 비류에 가서 북들을 가지고 왔다[R-5:㉟-㊳]고 적었으니, 왕이라는 호를 쓰던 우두머리 곧 비류-왕이 다스리던 비류가 이 때에 현토-군에서 북들, 피리들, 재주있는 사람들을 받아 왕의 예로 주변에 위엄있는 모습을 보였던 무리였습니다.


앞의 이야기는 현토-군에서 주었던 북들, 피리들을 비류-국은 가지고 있고 뒤에 구려 사람들이 들어와 머물던 흘-승골-성에 도읍하였던 고구려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현토-군이 물건을 주었던 시기는 구려에 - 흘승-골-성 가까이 - 잠시 머물다가 다시 구려 서북쪽로 옮겨 머물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곳은 바로 비류-국의 서쪽이니 물건들내려주었던 사람들이 비류-국 사람들이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현토-군이 자리잡은 곳은 구려 서북쪽이었는데, 앞서 그곳에서 물건들을 비류에 내려주고 그 가운데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 일에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사람이 고구려-현의 현령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현토-군이 구려 서북쪽으로 옮기면서, 구려에 있을 때의 고구려-현을 없애고 그 서북쪽 비류 가까이에 새로 두었던 것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편은 이어, 뒤데 사람들이 잘난체하고 멋대로 하며 다시 현토-군에 이르지 않았다[AN-2:①-③]고 적었습니다. 곧 비류-국이 동명-성왕의 고구려를 따르게 된 뒤 태도를 달리하였던 것이니, 그 현토-군이 동쪽 계에 성을 쌓고 물건들을 두자 서 그곳의 물건들을 가졌다[AN-2:④-⑦]고 적었으나 결국 현토-군에 이르렀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AN-2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편: ① 뒤에 ● (사람들이) 점점 ② 잘난체하고 멋대로 하며 ③ 다시 (현토-)군郡에 이르지 않아 ● (현토-군이) ④ 동쪽 계界에 작은 성城을 쌓고 ⑤ 보며 입을 옷들, 머리띠들을 그(= 성) 가운데에 두니 ⑥ 해마다[歲時] ● (사람들이) ⑦ 와서 그것들[之](= 옷들, 머리띠들)을 가졌다. ①後稍②驕恣③不復詣郡④于東界築小城⑤置朝服衣幘其中⑥歲時●⑦來取之


그리고 이러한 까닭에, 고구려가 도읍을 위-나 곧 비류로 옮긴 유리-명왕 때에 이르러 왕이 혼인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漢에서 온 사람들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적은 기록의 시기를 먼저 바로잡고 이야기하여야 하기에 유리-명왕의 일을 이야기할 때에 차근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현토-군의 일들은 그 동쪽에 자리잡고 있던 비류-국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이며, 뒤에 동명-성왕이 일으킨 고구려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편이 적고 있는 것은, 그 뒤 결국 비류-국이 동명-성왕이 세운 고구려를 따랐고 그리하여 그 5개 부들 가운데 1개 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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