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4편 부여夫餘 (1) #22

부여가 옮겨가는 사이 (3/8)

by 잡동산이

* 본래 여기서 이어지는 진辰과 한韓의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옮기고, 대신 여기서는 낙랑-군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편이 뒤에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편할 듯 해서 그리합니다.




세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부여의 움직임에 따라 현토-군이 옮겨가는 사이, 여러 군들이 있던 곳이 더하여져 마침내 이루어진 낙랑-군의 일입니다. 앞서 진-번-군이 없어지고 현토-군이 옮겨가는 사이 임둔-군의 영역을 아울렀던 일을 말합니다.




먼저 여러 가지로 말이 많은 자료 하나를 살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서 무제기 주석은 신찬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임둔-군과 진-번-군에 대한 구절들을 다시 인용한 무릉서라는 자료입니다.


한서 무제기 주석이 인용한 신찬의 말에 따르면, 무릉서는 임둔-군의 치治가 동이-현이었다고 하[AO:③-⑤], 그러한 동이-현은 장안에서 6,138리인 곳에 있었다[AO:⑥]고 적었습니다. 또한 무릉서는 진-번-군의 치가 잡-현이었다고 하[AO:⑧-⑩], 잡-현은 장안에서 7,640리인 곳에 있었다[AO:⑪]고 적었습니다.


AO 한서 무제기 주석: <① 신찬臣瓚이 ● 말하기를 "② 무릉서茂陵書가 ● (이르기를) '③ 임둔-군[臨屯-郡]은 ④ 치治가 ⑤ 동이-현[東暆-縣]인데 ● (동이-현은) ⑥ 장안長安에서 가서 6,138리이고(= 6,138리인 곳에 있고) ⑦ 15(개) 현들[縣]이다(= 15개 현들을 다스린다). ⑧ 진-번-군[眞-番-郡]은 ⑨ 치治가 ⑩ 잡-현[霅-縣]인데 ● (잡-현은) ⑪ 장안에서 가서 7,640리이고(= 7,640리인 곳에 있고) ⑫ 15(개) 현들이다(= 15개 현들을 다스린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①臣瓚●曰②茂陵書●③臨屯郡④治⑤東暆縣⑥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⑦十五縣⑧眞番郡⑨治⑩霅縣⑪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⑫十五縣>


이 자료는 임둔-군과 진-번-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지만,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이 무릉서는 사마상여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는 조선-한 전쟁에 앞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로 두어진 4개 군들 가운데 임둔-군과 진-번-군에 대해 알 수 없고 그러니 이 구절들을 믿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사마상여는 본래 조선-한 전쟁에 앞서 끝난 남월/동월-한 전쟁이 끝난 뒤의 뒷처리를 맡아 공을 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조선-한 전쟁은 훨씬 앞서부터 계획되었고,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치루어질 전쟁의 뒤처리에 대해 전쟁이 일어나기에 앞서 의견을 낼 수 있었고, 사마상여는 그러한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죽은 MC-116보다 앞서 한漢은 이미 팽오가 열었던 길을 통해 예에게서 항복을 받았고 그리하여 창해-군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오고가는 길이 시작되는 진-번과 길의 반대편 끝에 있던 예 그리고 예에 맞닿은 임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조선을 패배시킨 뒤의 뒤처리 - 어떻게, 어떤 곳을 중심으로 군들을 둘 것인지 미리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앞서의 기록입니다.


뒤에 조선-한 전쟁에서 그리하였듯이, 진-번-군은 땅을 지나 요동-군을 통해 멀리 돌아 이르렀으며 임둔-군은 제를 통해 바다를 지나 낙랑-군에 이른 뒤에 다시 이르렀습니다. 앞서 구절들이 장안에서 임둔-군 동이-현에 이르는 거리를 진-번-군 잡-현에 이르는 거리보다 멀다고 적은 것은 이러한 점을 오히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살펴보면, 각각의 군의 치가 있던 2개의 현들의 이름들이 나타나 있으니, 임둔-군 동이-현과 진-번-군 잡-현이 그것입니다. 이 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잡-현의 이름인 잡霅은 雨와 그 아래에 적은 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체자자전에 따르면 언言 다른 모양 글자로 一과 그 아래에 云을 적은 것이 있습니다. 이 글자를 雨의 아래에 言을 대신하여 적으면 운雲의 위, 아래의 가운데에 一을 보탠, 운雲과 아주 가까운 글자가 됩니다. 이 운이라는 글자에 대해 한서 지리지는, 낙랑-군에 운-장이 있다[AP:④]고 적고 있습니다.


AP 한서 지리지: ① 낙랑-군[樂浪-郡]은 ... ② 호戶는 62,812이고 ③ 구口는 46,748이고, ④ 운-장[雲-鄣]이 있고 ⑤ 현縣은 25다: ⑥ 조선(-현)[朝鮮], ⑦ 염감(-현)[䛁邯], ⑧ 패-수(-현)[浿-水], - ⑨ (패-)수水가 ⑩ 서쪽으로 가서 증지(-현)[增地]에 이르러 ⑪ 바다로 들어간다. - ... ⑫ 함자(-현)[含資], - ⑬ 대-수[帶-水]가 ⑭ 서쪽으로 가서 대방(-현)[帶方]에 이르러 ⑮ 바다로 들어간다. - ⑯ 점제(-현)[黏蟬], ⑰ 수성(-현)[遂成], ⑱ 증지(-현)[增地], ... ⑲ 대방(-현)[帶方], ⑳ 사망(-현)[駟望], ㉑ 해명(-현)[海冥], ... ㉒ 열구(-현)[列口], ㉓ 장잠(-현)[長岑], ㉔ 둔유(-현)[屯有], ㉕ 소명(-현)[昭明], - ㉖ 남-부-도위[南-部-都尉]의 치治가 있다. - ㉗ 누방(-현)[鏤方], ㉘ 제해(-현)[提奚], ㉙ 혼미(-현)[渾彌], ㉚ 탄열(-현)[呑列], - ㉛ 분려-산[分黎-山]이 있다. ● (분려-산은) ㉜ 열-수[列-水]가 나는 곳[所]이다. ● (열-수가) ㉝ 서쪽으로 가서 점제(-현)[黏蟬]에 이르러 ㉞ 바다로 들어간다. ㉟ 움직여 820리를 간다. - ㊱ 동이(-현)[東暆], ㊲ 불이(-현)[不而], - ㊳ 동-부-도위[東-部-都尉]의 치治가 있다. - ㊴ 잠태(-현)[蠶台], ㊵ 화려(-현)[華麗], ㊶ 사두매(-현)[邪頭昧], ㊷ 전막(-현)[前莫], ㊸ 부조(-현)[夫租] ①樂浪郡...②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③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④有雲鄣⑤縣二十五⑥朝鮮⑦䛁邯⑧浿水⑨水⑩西至增地⑪入海...⑫含資⑬帶水⑭西至帶方⑮入海⑯黏蟬⑰遂成⑱增地...⑲帶方⑳駟望㉑海冥...㉒列口㉓長岑㉔屯有㉕昭明㉖南部都尉治㉗鏤方㉘提奚㉙渾彌㉚呑列㉛分黎山●㉜列水所出●㉝西至黏蟬㉞入海㉟行八百二十里㊱東暆㊲不而㊳東部都尉治㊴蠶台㊵華麗㊶邪頭昧㊷前莫㊸夫租


앞서 살핀 바에 따르면 운雲은 본래 잡霅을 달리 적으며 一자가 잘못하여 누락된 것인데, 낙랑-군의 운-장 곧 잡-장이란 앞서 살폈듯이 위만이 들어와 머물던 상上, 하下의 장들[鄣](= 장들이 있는 곳)[1장 4편 B-(4):⑬]을 말합니다. 그것들이 있던 장소는 진-번-군이 두어진 진-번의 땅 가운데 남쪽이며 또한 낙랑-군 패-수-현의 물줄기 패-수의 북쪽 땅라고 하였으니, 군들이 맞닿아 있던 이곳이 진-번-군의 치가 있던 잡-현입니다.


이곳은 앞서 한이 진-번-군을 없애면서 더이상 진-번-군의 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한 뒤에 낙랑-군과 임둔-군의 동-부-도위가 두어지고서 다시 낙랑-군이 임둔-군을 아우르며 낙랑-군의 동-부-도위가 이어 옛 현토-군이 있던 곳에 대해 우두머리 노릇을 할 때에 이르러서는 낙랑-군을 따르게 되었지만, 현은 되지 않았에 그 이름이 낙랑-군의 현들 이름 가운데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만, 그 땅에 이어져 남쪽에 자리한 물줄기의 북쪽 땅[陽] 곧 잡양霅陽은 패-수에 맞닿아 있어 낙랑-군의 현들 가운데의 부部가 되니[AQ:③-④] 광운이 이것을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나타났던 잡양이라는 이름은 보다 뒤에 낙랑-군의 북쪽에서 일어난 일에 이어 사라졌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우기까지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AQ 광운: ① 잡霅 ... ● 또한 ② 장丈과 갑甲의 반절[切](= ㅈ + 압)이었다. ③ 잡양-부[霅陽-部]가 ④ 낙랑(-군)[樂浪]에 있었다. ①霅...●又②丈甲切③霅陽部④在樂浪




이어, 다음 글에서는 임둔-군의 치였고 뒤에 낙랑-군의 현이 되었던 동이-현에 대해, 그리하여 낙랑-군이 아울렀던 옛 임둔-군의 땅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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