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4편 부여夫餘 (1) #24

부여가 옮겨가는 사이 (5/8)

by 잡동산이

앞서 07-대방이 06-둔유의 남쪽에 자리하였다고 하였는데 둔유屯有는 임둔臨屯이라는 군 이름 가운데 보이는 둔屯이 있었던 곳이니 07-대방을 비롯하여 그러한 낙랑-군의 남쪽 땅은 낙랑-군의 남쪽에 있던 임둔-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앞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둔유라는 이름의 현을 기준으로 삼아 남쪽 땅을 나누어서는 대방-군으로 하였다[AH:③-④]고 적었으니, 대방-군은 바로 옛 임둔-군이 있던 곳에 뒤에 만들어진 군입니다.


진서 지리지는 이러한 대방-군에 대해, 그 현들이 대방, 열구, 남신, 장잠, 제해, 함자, 해명이라는 이름의 현들이었다[AR:④-⑨]고 적었습니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나머지 장소들 가운데에서 08-열구, 09-장잠, 10-해명, 12-제해가 모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AR 진서 지리지: ① 대방-군[帶方-郡]은 ② 다스리는[統] 현縣이 7이고, ③ 호戶는 4,900이다: ④ 대방(-현)[帶方], ⑤ 열구(-현)[列口], ⑥ 남신(-현)[南新], ⑦ 장잠(-현)[長岑], ⑧ 제해(-현)[提奚], ⑨ 함자(-현)[含資], ⑩ 해명(-현)[海冥]이었다. ①帶方郡②統縣七③戶四千九百④帶方⑤列口⑥南新⑦長岑⑧提奚⑨含資⑩海冥


앞서 목간은 12-제해를 대-수가 바다로 들어가는 장소인 13-함자보다 앞서 적었는데, 13-함자부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며 장소를 적었으니 그 앞의 12-제해는 13-함자에서 남쪽 곧 13-함자에서 대-수를 통해 이어지는 07-대방보다 남쪽에 있던 장소입니다. 그러니 12-제해는 둔유보다 남쪽 있던 장소였고, 뒤에는 대방-군에 보다 앞서는 임둔-군에 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08-열구는 열-수에 가까운 장소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곧 07-대방 뒤의 08-열구, 09-장잠, 10-해명은, 목간이 열-수가 바다로 들어가는 장소인 04-점제보다 뒤에 적은 - 보다 남쪽에 던 06-둔유보다 남쪽에 있 장소인데 또한 열-수 가까이 있었습니다. 곧 열-수가 04-점제에 이르기에 앞서 지나, 06-둔유보다는 더 남쪽인 장소 동쪽에 있었 것이며, 열-수는 그을 지나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쩍은 이러한 열-수의 흐름 아래 지도에 실제로 나타나 있습니다. 열-수는 현재의 대동-강에 해당하는데, 그 큰 흐름은 서쪽으로, 남쪽으로 가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리하는 곳이 점제-현 신사비가 있는 은천-군, 용강-군의 남쪽 땅입니다. 그곳에 이르기에 앞서 열-수는, 현재의 송림을 지나서금 남쪽으로 내려오고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서는 서쪽으로 가서 바다로 들어고 있으니, 앞서 이야기한 것이 이것입니다.


열-수가 바다로 들어가기까지


그러니 열-수가 남쪽으로 내려왔던 곳 가까이에 앞서 말한 08-열구가 있었 그 곁에, 북쪽으로 06-둔유보다는 남쪽에 09-장잠, 10-해명이 있었던 것이에 이 이름들을 가진 곳들의 현들 모두가 뒤에 대방-군의 현들이 되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들 또한 한참 동쪽에 있던 12-제해라는 소와 마찬가지로 보다 앞선 시기에 임둔-군에 해당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자리하고 있던 03-07 뒤로 이어지는 08-10가 반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자리하고 있던 것을 보면, 반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자리하고 있던 13-18 뒤로 이어지는 19-20는 또한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19-동이는 18-탄열보다 남쪽에, 20-잠태는 19-동이보다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8-탄열은 현재의 대동-강이 시작하는 분려-산이 있는 북쪽 산줄기 가까이 자리하였는데, 그런 곳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기에 현들을 여럿 둘 필요가 없습니다. 때문에 19-동이는 18-탄열의 한참 남쪽에 자리하였는데, 이어지는 남쪽의 20-잠태에 보이는 잠岑은 앞서의 09-장잠長岑과 이어지 것이니 곧 08-열구보다 북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에 가까운 서쪽 땅에 20-잠대가, 그 북쪽, 현재의 남-강 가까 땅에 19-동이가 자리하 여기가 임둔-군의 치治였습니다.




그 산줄기 서쪽에 자리하였던 21-불이부터 현재의 함흥에 해당하는 25-부조까지는, 동북쪽으로 가서 22-화려, 23-사두매, 24-전막이 례로 자리하였습니다. 여기에 관련하여 설문해자는 예의 사두-국에서 면鮸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난다[M-3:③]고 적었데, 불이 곧 불내를 따서 와서 머물던 예를 그 앞에 불내를 더여 적어 불내-예라고 하였듯 예를 앞에 더하여 적은 사두 - 사두매부터의 무리입니다.


M-3 설문해자: ① 면鮸은 ② 물고기[魚]의 이름[名]이다. ③ 예薉의 사두-국[邪頭-國]에서 났다. ④ 어魚를 따르고 ⑤ 면免이 소리다(= 면이라고 소리낸다) ①鮸②魚名③出薉邪頭國④从魚⑤免聲


23-사두매, 24-전막, 그리고 25-부조는 앞서의 산줄기 동쪽 예의 땅에 머물던 무리들이니 삼국지 위서 이전 동옥저편이 도위가 단단-대-산령 동쪽의 7개 현들에 대해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다[G-5:⑥]고 적은 곳들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현의 이름은 3개인데 7개 현들이라고 적은 것은, 앞서의 자료가 옥저가 "모두[皆]" 현들이 되었다[G-5:⑨-⑩]고 적고 있듯이 처음에는 옥저 곧 부조에 해당하는 장소들이 여럿 있어 모두 각각 다른 현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G-5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한漢은 ② (옥저의) 땅[土地]은 ● 넓게[廣] 멀리[遠] ③ 단단-대-(산)령[單單-大-領] 동쪽에 있다고 여겼다. ● (앞서) ④ 나누어 동-부[東-部]로 하고 도위都尉(= 위들[尉]의 우두머리[都])를 두었고 ⑤ (도위의) 치治는 불내-성[不耐-城]이었는데, ● (뒤에) 따로(= 떨어진) ⑥ (단단-대-산)령 동쪽의(= 동쪽에 있는) 7개 현들에(=현들에 대해서도) 우두머리 노릇을 하니(= 하게 되니) ⑦ (이) 때 ⑧ 옥저沃沮가 ● 또한 ⑨ 모두 ⑩ (도위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현들[縣]이 되었다. ①漢②以土地●廣遠③在單單大領之東●④分置東部都尉⑤治不耐城●別⑥主領東七縣⑦時⑧沃沮●亦⑨皆爲縣


앞서 3개의 이름들을 적었는데 그들이 7개 현들이 되었으니, 부조 - 옥저에 해당하는 곳들은 본래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넷은 뒤에는 현들로 남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한서 지리지와 목간이 적은 바가 얻어지던 때에 이르러서는 1개, 부조-현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목간이 23-사두매에 앞서 적은 22-화려는 21-불이보다는 동북쪽에 그러나 단단-대-산령보다는 서쪽에 자리하고 있던 동-부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앞서 북쪽의 낙랑-군과 남쪽의 임둔-군의 동쪽에 있어 동-부-도위-부를 두었던 21-불이보다 북쪽에 자리하였는데, 21-불이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낙랑-군에 해당하습니다.




앞서 살펴본 임둔-군의 현들을 모아보면, 동쪽에 자리하였던 20-잠태, 19-동이가 있고 여기에 더하여 서쪽에 있던 07-대방, 08-열구, 09-장잠, 10-해명, 12-제해가 있습니다. 여기에 뒤에 남신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현을 두게 되는 11-소명을 더하면 모두 8개를 찾아낸 셈입니다. 무릉서가 적은 바 임둔-군 15개 현들 가운데 7개 현들이 낙랑-군에 더하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자취는 낙랑-군, 임둔-군의 동-부를 나누어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키는 도위를 두어야 했던 일을 통해 앞서 살핀 바, 단단-대-산령 동쪽의 예와 달리 그 서쪽에 있어 부여와 더불어 북쪽의 예가 있던 땅에 침범하여 한漢이 현토-군을 구려로 옮기도록 하였던 맥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잠시 고구려와 신라의 처음에 대한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러한 자료들을 살펴 임둔-군의 7개 현들에 대해서, 그들이 있던 장소에 있던 7개 무리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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