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4편 부여夫餘 (1) #25

부여가 옮겨가는 사이 (6/8)

by 잡동산이

이제 임둔-군의 15개 현들 가운데 낙랑-군에서 찾지 못한 나머지 7개 현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지요. 그 단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들 가운데에 이미 나왔습니다. 무엇일까요?




앞서 삼국사기 지리지가 인용하고 있는 가탐의 고금군국지 구절을 통해 현재의 태백-산맥에 해당하는 단단-대-산령 서쪽 맥의 땅이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로 평양과 현토-군이 있는 옥저 - 북쪽의 예가 있는 땅을 잇는 길을 살피는 평-나-도독-부를 둘 때 낙랑-군과 임둔-군의 동-부에 도위를 두어 군사적으로 지키도록 한 것이 바로 맥 때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맥과 도위의 치가 있던 불이 곧 불내와의 사이는 계속 그리하였으니, 약간 뒤이기는 하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7년 09월 기사가 신라의 북쪽 변방을 침범하는 화려-현, 불내-현의 군사들을 맥-국의 군사들이 막아 싸웠다고 적은 갓에서 확인됩니다. MC+40/09의 일니다.


그런데, 이 기사의 구절들에는 사실 묘한 데가 있습니다: 맥의 군사들이 어째서 신라 변방을 침범하는 군사들을 막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를 알기 위해 다시 그 앞뒤에 나타나는 맥의 일을 적은 자료들을 찾아보면, 맥의 우두머리가 사냥한 짐승들을 바쳤다[J-3:①-③]고 적고 있는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9년 08월 기사가 있습니다. 이 일은 앞서의 일이 일어나고서 다시 2년이 지난 MC+42/08에 일어났습니다.


J-3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9년 가을 08월 ① 맥貊 우두머리[帥]가 ② 사냥하여 날짐승[禽], 들짐승[獸]을 얻어서 ③ 그것들[之]을 바쳤다[獻]. (儒理尼師今)十九年秋八月①貊帥②獵得禽獸③獻之


삼국유사는 기이편은 건호라고 달리 적은 연호 건무 28년 곧 같은 MC+42에 고려 곧 고구려 군사들이 와서 침범하였다[AS-1:①-②]고 적었지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해당하는 대무신왕 25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사를 적지 않고 있습니다. 곧 이 때에 침범한 것은 사실 고구려 군사들이 아니며, 다만 신라 사람들이 맥이 고구려를 따랐다고 여기고서 신라본기가 적은 맥 군사들을 고구려 군사들로 달리 적은 것입니다.


AS-1 삼국유사 기이편: (건호 18년) 이 해 ① 고려高麗 군사들[兵]이 ② 와서 침범하였다. (建虎十八年)是年①高麗兵②來侵


그러한 관점을 통해 보면, 이제 앞서 맥이 신라의 북쪽 변방을 침범한 이유를 알 수 있으니, 삼국유사 기이편은 천봉 05년 고려를 따르는 7개 국들이 와서 - 신라를 - 따랐다[AS-2:①-③]고 적었습니다. 앞서 맥을 고구려라고 적은 것을 통해 보면 이 때 곧 MC+18에 신라를 따른 7개 국들의 무리는 곧 맥이니, 그리하여 신라 변방에 머물던 맥이 MC+42에 신라의 변방을 지켰던 것입니다.


AS-2 삼국유사 기이편: 또한 ① 천봉天鳳 05년 무인(-년)[戊寅] ② 고려高麗의(= 고려를) 따르던[裨屬] 7(개) 국들[國]이 ③ 와서 따랐다[投]. 又①天鳯五年戊寅②高麗之裨屬七國③來投


그리고 신라는 이렇게 맥이 앞서 고구려를 따르고 있었다고 여겼기에, 뒤에 맥이 침범하자 맥이 앞서 따르던 고구려를 다시 따랐다고 여기고서 고구려 군사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침범한 맥이 사냥한 물건을 바치는 것을 보고서 그렇지 않음을 알아 고구려가 아니라 맥이라고 또한 적었습니다.


여기서 맥의 국들이 고구려를 따르던 국들이라고 한 것은 사실 신라가 그리 들은 것이며 여기에는 좀 다른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정들에 대해서는 뒤에 고구려 유리-명왕의 일들을 살피면서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신라를 따르기로 하였던 국들을 맥의 국들로 볼 수 있는 바 이 때 맥이 7개 국들에 - 국들이 있는 장소들에 나누어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맥 아닌 동쪽 변방 사람들과 맥 사람들이 침범하여 현토-군을 구려로 다시 구려 서북쪽으로 옮겼다고 적은 것이 보여주듯, 맥은 훨씬 앞서부터 구려와 멀리 떨어져 현토-군 - 옥저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그 서쪽에 바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키는 도위가 낙랑-군, 임둔-군 동쪽 땅에 있었는데 임둔-군을 아우른 낙랑-군 가운데에는 임둔-군의 7개 현들이 없고 그 동쪽 맥이 있는 곳에는 국들이 있는 장소들 7개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키는 도위를 동-부에 둔 까닭도, 임둔-군 가운데 7개 장소들을 낙랑-군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임둔-군이 두어진 MC-107에서부터 현토-군이 옮겨가는 MC-74의 사이에 임둔-군의 동쪽 7개 현들을 두었던 곳이 군사적으로 맥의 손에 넘어갔었기 때문입니다.


곧 맥의 7개 국들이 바로 본래 임둔-군의 15개 현들 가운데 임둔-군을 아우른 뒤의 낙랑-군 땅에서 찾을 수 없는 7개 현들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본래는 고구려를 따랐지만 그러지 않고 신라의 북쪽 변방에 이르렀던 우두머리를 통해 신라를 따랐으며, 낙랑-군의 동쪽을 거느리는 불내-현과 화려-현의 군사들이 침범하자 그들을 쳐서 깨트렸던 것입니다.




이제 남은 현 이름들은 이제 염감과 남신 그리고 낙도 뿐입니다. 사실 염감은 제외한 나머지 2개 이름들은 보다 나중의 일들이기는 한데, 다음 2개 글들에서 랑-군의 큰 흐름에 대해 모두 정리하고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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