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편 한韓 (2) #6

새로운 곳에서 (3/4)

by 잡동산이

다음, 스사노-오에 앞서 이야기할 아이의 이름은 히루코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일들을 적은 일본서기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이름들만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사실 다른 이름들 못지않게 중요한 아이의 이름입니다.




일본서기는 츠키[月-神]에 대해 이야기한 뒤에 이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히루코라는 아이를 낳았다[C-14:①]고 적었습니다. 히루코는 앞서 이야기한 히루메라는 단어 가운데 보이는 '히루'에, 여자를 뜻하는 '메' 대신 남자를 뜻하는 '코'를 더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루메는 日孁으로, 히루코는 蛭兒로 적은 까닭에, 소리내 보지 않고 그 공통된 부분을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C-14 일본서기: 다음으로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① 히루코蛭兒를 낳았다. ● 비록 ② 3해를 지내기를 끝냈으나(= 3해를 지내고도) ③ (히루코의) 다리는 ● 여전히 ④ 곧아지지[立] 않았다. ● 그리하여 (이자나-기, 이자나-미는) ⑤ 그[之](= 히루코)를 아마天의(= 아마를 오고가는) 이와-쿠스[磐-櫲樟](= 돌같이 단단한 녹나무로 만든) 후네船(= 배)에 태우고[載], ⑥ 바람을 따라 ⑦ (배를) 놓아주어 ⑧ (히루코를) 버렸다. 次①生蛭兒●雖②已三歲③脚●猶④不立●故⑤載之於天磐櫲樟船⑥而順風⑦放⑧棄


히루코는, 히루메라는 이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뛰어남을 가진 여자 아이를 이른 단어라고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뛰어남을 가진 남자 아이를 이른 어입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히루메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적은 것과 달리 히루코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적지 않았고, 적은 글자조차 그런 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적습니다.


살펴보면, 일본서기가 적은 바 히루코를 낳았다는 절은 히루메와 츠키를 낳았다는 절 뒤에 적혀 습니다. 그러나 또한 일본서기 인용한 어떤 기록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미와시라를 돌아 다시 만난 일을 적고 바로 이어 둘이 부부가 되어 먼저 히루코를 낳았다[B-2:①-③]고 적었습니다.


B-2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이윽고 ① 남편, 아내가 되었고 ② 먼저 ③ 히루-코[蛭-兒]를 낳았다. (一書曰)遂①爲夫婦②先③生蛭兒


곧 일본서기는 히루메를 낳은 해와 츠키를 낳은 해를 지나서 그 다음 해에 처음 히루코를 낳은 듯이 그의 이야기를 적는 순서를 바꾸었지만 히루코의 이야기를, 3해가 지났다[C-14:②]고 적은 구절로 시작하는 것이 보여주듯이 히루코는 히루메보다 먼저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서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각각 다른 길로 열도를 살피고서 만난 뒤에 바로 태어난 아이가 히루코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를 거머리 같은 아이[蛭兒]라고 적은 것이나, 그 뒤에 히루메를 낳기에 앞서 아이 가지는 곳이 되도록 하였던 아와-치 물가의 쿠니를 이름지으며 즐겁지 않았던 바를 생각하였다[C-5:①-⑦]고 적은 구절은 아이가 태어남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에게 기꺼운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이자나-미가 한동안 이자나-기와 떨어져 움직이고서 바로 낳은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곧 이자나-기는 히루코를 이자나-미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가진 아이가 아닌지 의심했고, 앞서 살피지 않고 지나간 둘의 말다툼이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일어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본서기는, 이자나-미의 아이들 가운데 이자나-기의 아이가 분명한 히루메와 그 뒤의 아이들과 히루코를 달리 적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멀리하던 아이 히루코는 3해가 지나서야 그 부모 이자나-기, 이자나-미에게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돌보는 사람 없는 가운데 힘들게 자라 뛰어남을 잃었고, 이것을 일본서기는 아이의 다리가 곧아지지 않았다 - 잘 서지 못하였다[C-14:③-④]고 적었습니다.


그리하였으나 둘은 서로 다투는 까닭이 되었던 아이를 보듬어 키우는 대신 없었다고 여기기로 하고 아이를 버렸습니다. 이 일을 일본서기는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아이를 후네船 곧 배에 태우고는[載] 바람 따라 놓아주어 - 배가 멋대로 가도록 내버려두어 - 버렸다[棄][C-14:⑤-⑧]고 적고, 그 뒤 아이의 일을 적지 않았습니다.




히루코의 부모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해당하는 세대의 주활동시기는 MC-70[+30)이니, 그 다음 세대인 히루코는 주활동시기 MC-40[+30)인 대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시기 가까운 주활동시기를 가지던 대에 해당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던 곳의 일을 적은 기록들 가운데, 세대에 해당하며 또한 본래 바다 건너 왜에서 왔던 사람 - 바로 히루코의 일을 적은 것이 있습니다.


그 기록이란 바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말하니, 그 가운데 삼국사기 혁거세거서간 38년 02월 기사의 구절들이 그런 일을 적었습니다. 곧 혁거세거서간 38년 02월 기사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본래 왜 사람이며, 박 같은 것을 허리에 매어 바다를 건너도록 하여 진-한에 왔다[D-1:①-⑨]고 적었습니다.


D-1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봄 02월) ① 호-공[瓠-公]이라는 이는 ② 그 피붙이[族], 성姓이 자세하지 않지만 ③ 본래 ④ 왜倭(= 왜에서 왔던) 사람이었다. ● (왜 사람이) ⑤ 처음 ⑥ 박 같은 것[瓠]이 ⑦ (사람의) 허리[腰]에 매어 ⑧ 바다를 건너도록 하였는데 ● (박 같은 것은) ⑨ (진-한에) 왔고 ● 그리하여 ⑩ (같이 온 사람을) 일컬어 ● (말하기를) ⑪ 호-공이라고(= 히루코라고) 하였다. (赫居世居西干三十八年春二月)①瓠公者②未詳其族姓③本④倭人●⑤初⑥以瓠⑦繫腰⑧度海●⑨而來●故⑩稱●⑪瓠公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혁거세가 오봉 01년 곧 MC-56/04, 나이가 13세였다[D-2:②-③]고 적었습니다. 그러니 혁거세는 주활동시기인 나이 30세에서 60세 사이가 MC-39[+30)인 세대에 해당하니, 앞서 이야기한 히루코 그리고 히루메, 츠키, 스사노-오와 같은 시기의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신라를 이야기하며 자세히 살피겠지만, 이 사람들이 아마 곧 한에 오고가던 일들이 혁거세 때의 일을 적은 기록들 가운데 여럿 보입니다.


D-2 삼국사기 신라본기: 전한前漢 선-제[孝宣-帝]의 오봉五鳳 01년 갑자甲子 04월 28일[丙辰] (시조가) ① (왕의) 자리에 올랐다[卽位]. ... ② (이) 때[時] ● (시조는) ③ 나이가 13이었다.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四月丙辰①即位...②時●③年十三


가서,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그리하여 바다를 건너 이렀던 왜 사람을 - 히루코를 - 사람들이 -공[瓠-公]이라 하였다[D-1:⑩-⑪]고 적었습니다. 호瓠 곧 같은 것은, 사람이 매인 - 실린 - 채 바다를 건넌 것 곧 배[船]를 왜 사람들이 이르던 후네라는 소리 가운데 첫소리 '호'를 달리 듣고서 그 소리를 적는 글자 호瓠를 써서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공公은 남보다 높은 사람, 코[子]를 이르는 소리를 달리 듣고 적은 것입니다.


곧 호-공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온 높은 사람을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히루코에 가까워 히루코가 이것을 자신의 호號로 삼으니, 뒤에 다시 같은 까닭으로 호-공이라고 스스로 이르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탈해-이사금 때에 대보가 되었던 호-공[D-3:②]이 그 사람데, 이 사람에 대해서 신라의 이야기에서 자세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D-3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02년 봄 01월 ① 호-공[瓠-公]에게 벼슬을 주니 ● (호-공이) ② 대보大輔가 되었다. (脫解尼師今)二年春正月①拜瓠公●②爲大輔




한/아마에 자리잡은 히루메, 하/아마에 머물다가 뒤에 따로 그 곁의 무리와 손잡은 츠키, 그리고 히루메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버려져 바다 건너 신라로 떠난 히루코까지 이자나-기, 이자나-미의 아이들 가운데 왜倭를 떠나 바다 건너 여러 곳들에 이르렀던 3명에 대해 살펴 그 태어나서 머무른 곳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1명은, 아마-테라스 - 히루메와 함께 다시 이야기하게 될, 스사노-오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장 1편 한韓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