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벌도리의 후손에 대해 살필 자료는, 앞서 6개 부들의 우두머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잠시 이손에 대해 살핀 바 있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구절들[C-12), 그 앞에 적힌 구절들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의 구절들 가운데는, 그 내용을 읽기에 앞서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C-16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처음 ② 파사-왕[婆娑-王]이 ③ 유손楡飡의 못[澤]에서 사냥하였고 ④ (왕)태자太子가 (왕을) 따랐다. ⑤ 사냥한 뒤 ● (왕, 왕태자가) ⑥ 한기-부[漢歧-部]를 지나니 ⑦ (한기-부의) 이손伊飡 허루許婁가 ⑧ 그들(= 왕, 왕태자)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⑨ 술자리가 ⑩ 무르익어 ⑪ 허루의 아내가 ⑫ 문을 미니 ⑬ (허루의) 작은[小](= 나이어린) 여자 아이가 ⑭ 나와 춤추었고, ⑮ 마제-이손[摩帝-伊飡]의 아내가 ● 또한 ⑯ 이끌어 그(= 마제의) 딸을 내보냈다. ⑰ (왕)태자太子가 ⑱ 보고서 그녀[之](= 마제의 딸)에게 기뻐하니, ⑲ 허루가 ⑳ 기뻐하지 않았다. ①初②婆娑王③獵於楡飡之澤④太子從焉⑤獵後●⑥過韓歧部⑦伊飡許婁⑧饗之⑨酒⑩酣⑪許婁之妻⑫推門⑬少女子⑭出舞⑮摩帝伊飡之妻●亦⑯引出其女⑰太子⑱見而悅之⑲許婁⑳不悅
C-17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왕이 ② 허루許婁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③ 이 땅은 ④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⑤ 대포大庖라고 하는데 ⑥ 네[公](= 허루)가 ⑦ 이곳에 ⑧ 가득한 먹거리, 좋은 술을 두고 ⑨ (우리에게) 잔치를 베풀도록 하니 ● (우리가) ⑩ 그것들[之]을(= 먹거리, 술)을 즐겼다.("라고 하였다.) ①王②謂許婁●曰③此地④名●⑤大庖⑥公⑦於此⑧置盛饌美醞⑨以宴●⑩衎之
이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앞서 살폈는데, 그 구절들 가운데에 허루에게 준 주다가 이손보다 윗 자리[C-12:①-②]라고 적은 구절들이 있고, 또한 주다를 뒤에 각-간이라고 하였다[C-12:③-⑥]고 적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17년 기사는 왕이 각-간 우오를 보냈다[C-18:③-④]고 적었으니, 위의 자료들이 적은 일은 탈해보다 앞선 유리 시기 또는 더 앞선 왕의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C-18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17년 ① 왜倭 사람들이 ② 목출-도[木出-島]를 침범하였다. ③ 왕이 ④ 각-간[角-干] 우오羽烏를 보내니 ● (우오가) ⑤ 그들(= 왜 사람들)을 막았지만 ⑥ 이겨내지 못하였다. ⑦ 우오羽烏가 ⑧ 그 일[之]로 죽었다. (脫解尼師今)十七年①倭人②侵木出島③王④遣角干羽烏●⑤禦之⑥不克⑦羽烏⑧死之
또한 앞서의 자료는 그러한 왕에 의해 주다가 된 허루를 이손[C-16:⑦]이라고 적었는데 이손은 유리이사금 09년 정한 관의 17개 급들 가운데 하나이니, 허루가 주다가 된 일은 유리 시기 또는 그 뒤의 왕의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앞서와 더하여 보면 허루가 주다가 되었던 일은 곧 유리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처음의 자료 첫머리에 적힌 파사-왕이라는 단어는 본래 왕王이라고만 적혀있던 첫머리에 파사를 잘못 보탠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앞서의 자료를 살펴보지요. 먼저 왕이 사냥하는데 왕태자가 따랐고[C-16:①-④], 사냥이 끝나고서 한기-부를 지나는데 이손 허루가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었다[C-16:⑤-⑧]고 적었습니다. 이어 술자리가 무르익자 허루의 아내가 문을 밀어내니 작은 여자아이가 - 허루의 나이어린 딸이 - 나와서 춤추었다[C-16:⑨-⑭]고 적었으며, 이어 또다른 이손인 마제의 아내가 그 딸을 내보내니 태자가 - 마제의 딸을 - 보고 기뻐하였다[C-16:⑮-⑱]고 적었습니다.
자료 첫머리에 파사라는 이름을 잘못 보탠 바를 따르면 태자는 그 다음 왕인 기마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다른 구절들은 기마의 왕비 애례-부인[C-19:①-②]이 갈문왕 마제의 딸이었다[C-19:③]고 적었습니다. 바로잡은 바를 통해 다시 보면 태자는 파사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유리의 다음 세대고, 태자와 혼인한 여자의 아버지 마제는 유리와 같은 세대입니다.
C-19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기마-이사금의) (왕)비妃는 ② 금-씨[金-氏]인 애례-부인[愛禮-夫人]이었다. ● (애례-부인은) ③ (금-씨인) 갈문왕葛文王 마제摩帝(= 마제-갈문왕)의 딸이었다. ①妃②金氏愛禮夫人●③葛文王摩帝之女也
유리에 대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그 아버지 남해가 죽게 되어서는[C-20:①-③] 유리, 탈해의 성인 박-씨, 석-씨를 성으로 가지는 사람들 가운데 나이많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서 왕의 자리를 잇도록 하였다[C-20:④-⑩]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또한 남해가 죽은 뒤에 유리와 탈해 가운데 1명이 곧바로 왕이 되는 대신 처음에는 유리가 탈해에게 그 자리를 미루었다[C-21:①]고 적었습니다.
C-20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옛날 ② 남해南解가 ● 장차 ③ 죽게 되어서는 ④ 아들 유리儒理, 사위 탈해脫解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⑤ 내가 ⑥ 죽고 ⑦ (그) 뒤에는 ⑧ 너희의 박朴, 석昔 2(개) 성들[姓]이(= 성들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⑨ 나이많음[年](= 나이많은 사람)이 우두머리[長]가 되어 ⑩ (왕의) 자리(位]를 잇도록[嗣] 한다."라고 하였다. ①昔②南解●將③死④謂男儒理壻脫解●曰⑤吾⑥死⑦後⑧汝朴昔二姓⑨以年長⑩而嗣位焉
C-21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가) ① (탈해에게) 그(=왕의) 자리를 미루었다[推讓]. ② 탈해가 ● 말하기를 "③ 신 같은 사람의 도구[神器], 큰 보물[大寶]는(= 국國)은 ④ 남다를 것 없는[庸] 사람이 맡는[堪] 것이 아니다.⑤ 내가 ● 듣기를 '⑥ 뛰어나고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⑦ 많은 이들[齒]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 시험삼아 ⑧ 떡이 ⑨ 그것을(= 이들을) 삼키도록 하자."라고 하였다. ①推讓其位②脫解●曰③神器大寶④非庸人所堪⑤吾●聞⑥聖智人●多齒●試⑧以餠⑨噬之
미루는 것은 본래부터 그 자리를 유리가 맡을 수도 있었기에 그러한 것이니, 유리의 나이는 탈해보다 많거나 같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해가 국을 맡기 어려움을 말하면서는 나이많음이 아니라 뛰어나고 슬기로움[C-21:⑥]을 들었는데 이것은 나이많음이 탈해가 유리에게 미룰 이유로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유리는 탈해보다 나이가 많거나 같았는데 나이가 많지는 않았으니, 탈해와 같은 나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유리이사금 34년 왕이 죽은 뒤에 탈해가 왕으로 섰고 이 때 나이가 62였다[C-22:①-⑤]고 적었으니, 유리의 나이는 유리이사금 01년에 29(= 62 -33)였습니다. 이 해는 MC+24에 해당하니, 나이 30인 해부터 30해 동안에 해당하는 유리와 같은 세대 사람들의 주활동시기는 MC+25[+30)가 됩니다. 이것은 마제의 주활동시기이기도 합니다.
C-22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탈해-이사금이 ② (왕으로) 섰다. ③ (이) 때 ④ 나이가 ⑤ 62였다. ①脫解尼師今②立③時④年⑤六十二
주활동시기가 MC+25[+30)인 마제라는 사람에 대해서 앞서 자료는 애례-부인이 마제-갈문왕의 딸이었다[C-19:③]고 적었습니다. 그 해석에서는 애례-부인이 기마-이사금의 부인이 아니라고 보아 성을 김-씨가 아니라 금-씨라고 하였습니다만, 아직 그러함을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았기에, 그 구절들을 가지도 마제의 성이 금-씨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제의 성을 담은 다른 자료가 있습니다. 앞서 살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주석이 인용한 위략이 적은 바 염사의 착의 이야기에는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을 적은 후한서 동이열전 한편 구절이 그것입니다.
후한서 동이열전 한편은 먼저 MC+44에 해당하는 건무 20년 한韓 -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염사의 착은 진-한의 우-거수였으니 여기 적은 한韓은 마-한이 아니라 진-한을 이르는 것입니다. - 사람이었던 염사 사람 소-마제가 낙랑-군에 이르러 물건을 주었다[M-1:①-③]고 적었습니다. 마제와 같은 세대 유리의 주활동시기를 MC+25[+30)라고 하였는데 MC+44는 여기에 해당하는 시기 마제가 있던 곳인 진-한에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M-1 후한서 동이열전 한편: 건무 20년 ① (진-)한韓 사람인 염사廉斯 사람 소-마제[蘇-馬諟] 등이 ② 낙랑(-군)[樂浪]에 이르러 ③ (물건을) 주었다[貢]. ● (낙랑-군이) ④ (그 물건을) 광무(-제)[光武]에게 바치니[獻] ● (광무-제가) ⑤ 소-마제를 봉하였고[封] ● (소-마제는) ⑥ 한漢 염사-읍-군[廉斯-邑-君]이 되었다. 建武二十年①韓人廉斯人蘇馬諟等②詣樂浪③貢●④獻光武●⑤封蘇馬諟●⑥爲漢廉斯邑君
이 자료의 마제는 그러나 이제까지 신라의 마제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큰 이유는 세간에서 이름 가운데 諟를 '시'라는 현재의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로만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諟는 是의 소리를 그 소리로 하는데, 諟는 帝의 소리를 그 소리로 하는 글자 諦 대신 적을 수 있는 글자[通假字]이니, 諟의 옛 소리 가운데는 帝의 현재 소리 '제'로 이어진 옛 소리가 또한 있었습니다.
더구나, 是의 소리를 그 소리로 하는 또다른 글자 堤 또한 사람의 이름을 적으며 쓰였는데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堤上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을 현재 읽을 때에 堤는 '제라고 읽지 '시'라고 읽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 이름에 쓰인 글자에서 是의 소리는 '시'라는 현재의 소리가 아니라 '제'라는 현재의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그러니 앞서 馬諟는 현재의 소리 '마제'로 이어진 옛 소리로 읽는 이름을 적은 것인데, 그렇게 적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장소, 활동하던 시기 또한 그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달리 적은 摩帝라는 단어로 적은 이름을 가진 사람의 그것과 같으니, 둘은 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하고서 보면 그 앞에 소蘇가 있는 바 이것은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소벌도리에게서 이어진 그 후손의 성 소-씨 곧 금-씨로 적기로 한 그 성姓입니다.
MC-95[+30) 소벌도리 (고-허-촌)
MC-65[+30) ?
MC-35[+30) 소-××
MC-5[+30) 소-×× : 남해와 대립
MC+25[+30) 소-마제 (고-허-촌 > 한기-부)
이제 앞서 자료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마제를 이손[C-16:⑮]이라고 적은 구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왕을 만난 곳은 또다른 이손 허루가 잔치를 베풀던 한기-부에서였으니, 이 때보다 앞서 MC+4 남해를 따르지 않을 뜻을 보인, 소벌도리의 후손이던 고-허-촌의 우두머리는 마제보다 1세대 앞선 세대에 해당하는데, MC+25 곧 유리이사금 02년 그 자리를 마제 대신 정-씨가 맡도록 하였고 마제는 한기-부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다만, 아직 신라 초였기에 뒤에 일을 벌인 최-씨가 그리하였듯이 진골의 자리까지 잃지는 않았으며 다만 가까이 있던 한기-부로 옮기고서, 그는 6개 부들의 우두머리들의 관의 급인 이벌손보다는 1급 낮은 이손 자리를 맡아 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정-씨가 자리를 잃게 되었던 염사의 착이 일으킨 일을 나서서 마무리지음으로써 유리에게 믿음을 얻었으며 그리하여 다시 왕과 가까이 하고 그 딸을 왕의 아들과 혼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고-허-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던 소벌도리에 대해 그 후손인 소-씨 성을 가졌던 사람들에 대해 살폈는데, 뒤에 나올 이야기 또한 몇 가지를 미리 풀어놓았습니다. 허루의 이야기도 더 해야하지만 일단 여기서 끊고, 진-한의 6개 부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에 이어 하기로 하지요.
그리하여 이제, 다음 글부터는 지절 01년 진-한 6개 부들의 우두머리들이 모인 시기로 돌아가서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의 이야기를 함께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