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편 진辰 (2) #8

진-한의 여섯 무리들 (8/8)

by 잡동산이

소벌도리의 후손에 대해 살필 자료, 앞서 6개 부들의 우두머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잠시 이손에 대해 살핀 바 있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구절들[C-12), 그 앞 적힌 구절들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의 구절들 가운데는, 그 내용을 읽기에 앞서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C-16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처음 ② 파사-왕[婆娑-王]이 ③ 유손楡飡의 못[澤]에서 사냥하였고 ④ (왕)태자太子가 (왕을) 따랐다. ⑤ 사냥한 뒤 ● (왕, 왕태자가) ⑥ 한기-부[漢歧-部]를 지나니 ⑦ (한기-부의) 이손伊飡 허루許婁가 ⑧ 그들(= 왕, 왕태자)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⑨ 술자리가 ⑩ 무르익어 ⑪ 허루의 아내가 ⑫ 문을 미니 ⑬ (허루의) 작은[小](= 나이어린) 여자 아이가 ⑭ 나와 춤추었고, ⑮ 마제-이손[摩帝-伊飡]의 아내가 ● 또한 ⑯ 이끌어 그(= 마제의) 딸을 내보냈다. ⑰ (왕)태자太子가 ⑱ 보고서 그녀[之](= 마제의 딸)에게 기뻐하니, ⑲ 허루가 ⑳ 기뻐하지 않았다. ①初②婆娑王③獵於楡飡之澤④太子從焉⑤獵後●⑥過韓歧部⑦伊飡許婁⑧饗之⑨酒⑩酣⑪許婁之妻⑫推門⑬少女子⑭出舞⑮摩帝伊飡之妻●亦⑯引出其女⑰太子⑱見而悅之⑲許婁⑳不悅
C-17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왕이 ② 허루許婁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③ 이 땅은 ④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⑤ 대포大庖라고 하는데 ⑥ 네[公](= 허루)가 ⑦ 이곳에 ⑧ 가득한 먹거리, 좋은 술을 두고 ⑨ (우리에게) 잔치를 베풀도록 하니 ● (우리가) ⑩ 그것들[之]을(= 먹거리, 술)을 즐겼다.("라고 하였다.) ①王②謂許婁●曰③此地④名●⑤大庖⑥公⑦於此⑧置盛饌美醞⑨以宴●⑩衎之


이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앞서 살폈는데, 그 구절들 가운데에 허루게 준 주다가 이손보다 자리[C-12:①-②]라고 적은 구절들이 있고, 또한 주다를 뒤에 각-간이라고 하였다[C-12:③-⑥]고 적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17년 기사는 왕이 각-간 우오를 보냈다[C-18:③-④]고 적었으니, 위의 자료들이 적은 일은 탈해보다 앞선 유리 시기 또는 더 앞선 왕의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C-18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17년 ① 왜倭 사람들이 ② 목출-도[木出-島]를 침범하였다. ③ 왕이 ④ 각-간[角-干] 우오羽烏를 보내니 ● (우오가) ⑤ 그들(= 왜 사람들)을 막았지만 ⑥ 이겨내지 못하였다. ⑦ 우오羽烏가 ⑧ 그 일[之]로 죽었다. (脫解尼師今)十七年①倭人②侵木出島③王④遣角干羽烏●⑤禦之⑥不克⑦羽烏⑧死之


또한 서의 자료는 그러한 왕에 의해 주다가 된 허루를 이손[C-16:⑦]이라고 적었데 이손은 유리이사금 09년 정한 관의 17개 급들 가운데 하나니, 허루가 주다가 된 일은 유 시기 또는 그 뒤의 왕의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앞서와 더하여 보면 허루가 주다가 되었던 일은 곧 유리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음의 자료 첫머리 적힌 파사-왕이라는 단어는 본래 왕王이고만 적혀있 머리에 파사를 잘못 보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서의 자료를 살펴보요. 저 왕이 사냥하는데 왕태자가 따랐고[C-16:①-④], 사냥이 끝나고서 한기-부를 지나는데 이손 허루가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었다[C-16:⑤-⑧]고 적었습니다. 이어 술자리가 무르익자 허루의 아내가 문을 밀어내니 작은 여자아이가 - 허루의 나이어린 딸이 - 나와서 춤추었다[C-16:⑨-⑭]고 적었으며, 이어 또다른 이손인 마제의 아내가 그 딸을 내보내니 태자가 - 마제의 딸을 - 보고 기뻐하였다[C-16:⑮-⑱]고 적었습니다.


자료 첫머리에 파사라는 이름을 잘못 보탠 바를 따르면 태자는 그 다음 왕인 기마니다. 이러한 까닭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다른 구절들은 기마의 왕비 애례-부인[C-19:①-②]이 갈문왕 마제의 딸이었다[C-19:③]고 적었습니다. 바로잡은 바를 통해 다시 보면 태자는 파사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유리의 다음 세대고, 태자와 혼인한 여자의 아버지 마제는 유리와 같은 세대입니다.


C-19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기마-이사금의) (왕)비妃는 ② 금-씨[金-氏]인 애례-부인[愛禮-夫人]이었다. ● (애례-부인은) ③ (금-씨인) 갈문왕葛文王 마제摩帝(= 마제-갈문왕)의 딸이었다. ①妃②金氏愛禮夫人●③葛文王摩帝之女也


유리 대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그 아버지 해가 죽게 되어서는[C-20:①-③] 유리, 탈해의 성인 박-씨, 석-씨를 성으로 가지는 사람들 가운데 나이많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서 왕의 자리를 잇도록 하였[C-20:④-⑩]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또한 남해가 죽은 뒤에 유리와 탈해 가운데 1명이 곧바로 왕이 되는 대신 처음에는 유리가 탈해에게 그 자리를 미루었다[C-21:①] 적었습니다.


C-20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옛날 ② 남해南解가 ● 장차 ③ 죽게 되어서는 ④ 아들 유리儒理, 사위 탈해脫解에게 일러 ● 말하기를 "⑤ 내가 ⑥ 죽고 ⑦ (그) 뒤에는 ⑧ 너희의 박朴, 석昔 2(개) 성들[姓]이(= 성들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⑨ 나이많음[年](= 나이많은 사람)이 우두머리[長]가 되어 ⑩ (왕의) 자리(位]를 잇도록[嗣] 한다."라고 하였다. ①昔②南解●將③死④謂男儒理壻脫解●曰⑤吾⑥死⑦後⑧汝朴昔二姓⑨以年長⑩而嗣位焉
C-21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가) ① (탈해에게) 그(=왕의) 자리를 미루었다[推讓]. ② 탈해가 ● 말하기를 "③ 신 같은 사람의 도구[神器], 큰 보물[大寶]는(= 국國)은 ④ 남다를 것 없는[庸] 사람이 맡는[堪] 것이 아니다.⑤ 내가 ● 듣기를 '⑥ 뛰어나고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⑦ 많은 이들[齒]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 시험삼아 ⑧ 떡이 ⑨ 그것을(= 이들을) 삼키도록 하자."라고 하였다. ①推讓其位②脫解●曰③神器大寶④非庸人所堪⑤吾●聞⑥聖智人●多齒●試⑧以餠⑨噬之


미루는 것은 본래부터 그 자리를 유리가 맡을 수도 있었기에 그러한 것이니, 유리의 나이는 탈해보다 많거나 같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해가 국을 맡기 어려움을 말하면서는 나이많음이 아니라 뛰어나고 슬기로움[C-21:⑥]을 들었는데 이것은 나이많음이 탈해가 유리에게 미룰 이유로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유리는 탈해보다 나이가 많거나 같았는데 나이가 많지는 않았으니, 탈해와 같은 나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유리이사금 34년 왕이 죽은 뒤에 탈해가 왕으로 섰고 이 때 나이가 62였다[C-22:①-⑤]고 적었으니, 유리의 나이는 유리이사금 01년에 29(= 62 -33)였습니다. 이 해는 MC+24에 해당하니, 나이 30인 해부터 30해 동안에 해당하는 유리와 같은 세대 사람들의 주활동시기는 MC+25[+30)가 됩니다. 이것은 마제의 주활동시기이기도 합니다.


C-22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탈해-이사금이 ② (왕으로) 섰다. ③ (이) 때 ④ 나이가 ⑤ 62였다. ①脫解尼師今②立③時④年⑤六十二




주활동시기가 MC+25[+30)인 마제라는 사람에 대해서 앞서 자료는 애례-부인이 마제-갈문왕의 딸이었다[C-19:③]고 적었습니다. 그 해석에서는 애례-부인이 기마-이사금의 부인이 아니라고 보아 성을 김-씨가 아니라 금-씨라고 하였습니다만, 아직 그러함을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았기에, 그 구절들을 가지도 마제의 성이 금-씨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제의 성을 담은 다른 자료가 있습니다. 앞서 살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주석이 인용한 위략이 적은 바 염사의 착의 이야기에는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을 적은 후한서 동이열전 한편 구절이 그것입니다.


후한서 동이열전 한편은 먼저 MC+44에 해당하는 건무 20년 한韓 -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염사의 착은 진-한의 우-거수였으니 여기 적은 한韓은 마-한이 아니라 진-한을 이르는 것입니다. - 사람이었던 염사 사람 소-마제가 낙랑-군에 이르러 물건을 주었다[M-1:①-③]고 적었습니다. 마제와 같은 세대 유리의 주활동시기를 MC+25[+30)라고 하였는데 MC+44는 여기에 해당하는 시기 마제가 있던 곳인 진-한에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M-1 후한서 동이열전 한편: 건무 20년 ① (진-)한韓 사람인 염사廉斯 사람 소-마제[蘇-馬諟] 등이 ② 낙랑(-군)[樂浪]에 이르러 ③ (물건을) 주었다[貢]. ● (낙랑-군이) ④ (그 물건을) 광무(-제)[光武]에게 바치니[獻] ● (광무-제가) ⑤ 소-마제를 봉하였고[封] ● (소-마제는) ⑥ 한漢 염사-읍-군[廉斯-邑-君]이 되었다. 建武二十年①韓人廉斯人蘇馬諟等②詣樂浪③貢●④獻光武●⑤封蘇馬諟●⑥爲漢廉斯邑君


이 자료의 마제는 그러나 이제까지 신라의 마제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큰 이유는 세간에서 이름 가운데 諟를 '시'라는 현재의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로만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만, 諟는 是의 소리를 그 소리로 하는데, 諟는 帝의 소리를 그 소리로 하는 글자 諦 대신 적을 수 있는 글자[通假字]이니, 諟의 옛 소리 가운데는 帝의 현재 소리 '제'로 이어진 옛 소리가 또한 있었습니다.


더구나, 是의 소리를 그 소리로 하는 또다른 글자 堤 또한 사람의 이름을 적으며 쓰였는데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堤上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을 현재 읽을 때에 堤는 '제라고 읽지 ''라고 읽지 않 것을 보면, 사람 이름에 쓰인 글자에서 是의 소리는 '시'라는 현재의 소리가 아니라 '제'라는 현재의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그러니 앞서 馬諟는 현재의 소리 '마제'이어진 옛 소리로 읽는 이름을 적은 것인데, 그렇게 적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장소, 활동하던 시기 또한 그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달리 적은 摩帝라는 단어로 적은 이름을 가진 사람의 그것과 같으니, 둘은 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하고서 보면 그 앞에 소蘇가 있는 바 이것은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소벌도리에게서 이어진 그 후손의 성 소-씨 곧 금-씨로 적기로 한 그 성姓입니다.


MC-95[+30) 소벌도리 (고-허-촌)

MC-65[+30) ?

MC-35[+30) 소-××

MC-5[+30) 소-×× : 남해와 대립

MC+25[+30) 소-마제 (고-허-촌 > 한기-부)




이제 앞서 자료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마제를 이손[C-16:⑮]이라고 적은 구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왕을 만난 곳은 또다른 이손 허루가 잔치를 베풀던 한기-부에서였으니, 이 때보다 앞서 MC+4 남해를 따르지 않을 뜻을 보인, 소벌도리의 후손이던 고-허-촌의 우두머리는 마제보다 1세대 앞선 세대에 해당는데, MC+25 곧 유리이사금 02년 그 자리를 마제 대신 정-씨가 맡도록 하였고 마제는 한기-부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다만, 아직 신라 초였기에 뒤에 일을 벌인 최-씨가 그리하였듯이 진골의 자리까지 잃지는 않았으며 다만 가까이 있던 한기-부로 옮기고서, 그는 6개 부들의 우두머리들의 관의 급인 이벌손보다는 1급 낮은 이손 자리를 맡아 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정-씨가 자리를 잃게 되었던 염사의 착이 일으킨 일을 나서서 마무리지음으로써 유리에게 믿음을 얻었으며 그리하여 다시 왕과 가까이 하고 그 딸을 왕의 아들과 혼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고-허-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던 소벌도리에 대해 그 후손인 소-씨 성을 가졌던 사람들에 대해 살폈는데, 뒤에 나올 이야기 또한 몇 가지를 미리 풀어놓았습니다. 허루의 이야기도 더 해야하지만 일단 여기서 끊고, 진-한의 6개 부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에 이어 하기로 하지요.


그리하여 이제, 다음 글부터는 지절 01년 진-한 6개 부들의 우두머리들이 모인 시기로 돌아가서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의 이야기를 함께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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